[이성복의 오늘]<21> 변화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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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21> 변화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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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단체 행사에 참가했다가 협회차량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도남을 거쳐 오는데, 파란색 플라스틱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는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라 그런지 반가움에 차가 한참을 지나는데도 시선을 떼지 못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느덧 2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내가 다니던 때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로 변해버린 학교.  요즘은 거의 모든 초등학교들이 열린 교육을 한다며 담쟁이 잎이며, 학교 주위를 둘러쌌던 튼튼한 돌담을 무너뜨리고 플라스틱으로 담을 대신 하는가하면 담의 높이를 아주 많이 낮춰 밖에서도 학교 운동장이 훤히 드러나 보이도록 하고 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그 당시 비포장도로에 경사가 심한 비탈길에 자리잡고 있어서 등하교 시에 보행하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 그나마 지금은 도로가 아스팔트로 잘 다져져 있어 보행에 큰 문제는 없다.

학교 정문 앞 도로는 일방통행로다. 우리가 탄 차량이 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들이 장난을 치면서 차량 앞을 이리저리 위험하게 가로 질렀다. 학교에서 체육활동을 했는지 학교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진 체육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세월은 흘렀지만 내 초등학교 후배들이다.

나는 다른 학교에서 5학년까지 다니다가 지금의 학교가 우리 동에 신설되는 바람에 졸업 1년을 남겨두고 도남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 동안 정들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뒤로 하고, 새로운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배려로 부모님과 함께 학교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교는 가파른 동산 위에 위치해 있었고, 아직 공사가 다 끝나지 않아서 각종 건설 장비들이 여기저기에서 운행 중이었다. 바람 불면 흙먼지가 가득했고, 비가 오면 빗물 고인 웅덩이가 사방에 널려 있어 지나다가 웅덩이에 빠지곤 했다.

난 전학을 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와 설렘보다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어린 마음에 ‘이 동산을 매일 어떻게 오르내리나’하여 한숨부터 절로 나왔다. ‘부모님께 졸라 1년만 전 학교에 더 다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등교할 때에는 아버지가 교실까지 데려다 주셨고,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날씨가 맑은 날이면 그래도 덜 힘이 드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몸이 불편한 나를 업고 교실까지 가야 하니 매우 힘드셨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다.

한번은 하굣길에 친구들과 동산을 조심히 내려가는데, 한 친구가 돌멩이 하나가 앞에 있어서 발로 툭하고 찼다. 그것이 빠른 속도로 내려가더니 하필 우리 학교에서 제일 체구가 좋고 말썽꾸러기이자 문제아인 친구 책가방을 정통으로 맞췄다. 그러고는 겁이 나서 얼른 내 뒤로 숨어버렸다.

말썽꾸러기 친구는 내가 그런 줄 알고 나에게 다가와 화를 내서 내가 하지 않았다고 해도 온갖 거친 욕설을 막 해댔다. 물론 싸우면 결과는 뻔하겠지만 나도 화가 나서 한판 붙을 태세로 나서자 친구들이 말렸다.
3~4일이 지난 후에야 그 진실이 밝혀져 나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나에게 그렇게 욕설을 퍼붓던 친구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6학년 3학급으로, 학생 수도 그렇게 많지 않은 소규모 학교였다. 학교 동산 한 쪽으로는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 밭과 조그맣게 채소 같은 농작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다른 한 쪽으로는 집들이 여러 채가 지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옛 풍경을 담은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내가 학교를 다닌 것이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아주 오랜만에 모교 건물 옆을 지나다 학교의 모습이 많이 바뀌어서 ‘내가 다니던 학교 맞어?’할 정도였다. 그때보다 학생 수도 많이 늘어나고 선생님들도 많이 계셨다.
그런데,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학교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있던 아파트들이었다.
그때만 해도 금방 기초공사를 하고 한 층, 두 층씩 올라갔던 건물들이 이제는 거대한 숲처럼 이뤄진 것을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학교 주변도 가파른 동산을 중심으로 양쪽이 모두 상가와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은 아침조회 때나 체육시간에는 선생님의 지도 아래 잠깐 동안 돌을 골라내거나 잡초 뽑는 자연정화 작업도 많이 했었다. 나는 열외였었지만 말이다.

지금도 가끔씩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그때의 추억들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나는 그 길을 보면서 비장애인 친구들도 올라가기 힘들어하는 저 가파른 언덕길을 힘들지만 장애인인 내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짧은 1년이지만 초등학교 시절을 무사히 마쳤고, 이제는 어느 정도의 역사와 전통을 갖춘 학교로서 자리 잡은 내 모교가 무척 자랑스럽다.

이성복 수필가 그는...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이성복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이성복 객원필진/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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