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의 지체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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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의 지체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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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이야기] 강관철 / 제주장애인야간학교
강관철 / 제주장애인야간학교
강관철 / 제주장애인야간학교

'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이란 책을 읽었다. 강연도 하고 글도 쓰는 김예원 변호사가 쓴 책이다. 김예원 변호사는 태어날 때 사고로 오른쪽 눈을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그런 사연 때문이었을까? 김예원 변호사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지금까지 장애인, 아동 등 사회적 소수자를 지원하는 공익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책과 작가를 소개한 이유는 김예원 변호사가 활동하면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경험들이 우리가 한 번쯤은 꼭 되새겨 볼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래의 세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 장면을 빌려 이야기를 해 본다.

[장면 하나]

김예원 변호사가 한 번은 책 제목을 보고 자녀들에게 읽어줄까 말까 주춤하다가 고민 끝에 읽어 준 책이 있다. 그 책의 제목은 「노트르담의 꼽추」였다. 꼽추는 지체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아이들이 단번에 물었다. “엄마, 꼽추가 뭐예요?” 엄마는 먼저 지체장애인을 설명했다. 꼽추란 단어가 지체장애인이란 말이 없을 때 썼던 옛날 말임을 덧붙인 후 이젠 그런 말은 쓰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알려줬다. 엄마는 책 제목을 다시 읽었다. “노트르담의 지체장애인”.

[장면 둘]

작가의 큰 아이가 유치원에서 책 한 권을 받아왔다. 제목부터 목에 걸렸다. 「파리에서 온 미망인」. ‘미망인(未亡人)’은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할 사람인데 아직 죽지 못하고(마지못해) 살아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역시나 아이가 뜻을 물었다. 엄마는 “응, 이 책은 제목이 좀 잘못된 것 같아. 예전에 쓰던 말이라 엄마가 요새 쓰는 말로 바꿔줄게.” 매직으로 미망인 세 글자에 엑스 표를 긋고 옆에 큼직하게 썼다. “파리에서 온 돌싱”

우리는 주변에서 욕이나 혐오 표현을 쉽게 듣는다. ‘병신’, ‘계집’, ‘니애미’, ‘검둥이’ 등. 특히, 혐오 표현 중에는 장애를 비하하는 말이 많다. ‘귀머거리’, ‘벙어리’, ‘절름발이’, ‘앉은뱅이’, ‘병맛’, ‘정공(정신 공익)’ 이라는 표현 등. ‘결정장애’, ‘선택장애’, ‘성격장애’, ‘안면인식장애’ 같은 말도 장애를 대상화하거나 희화하는 말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연예인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미친 맛”이라 표현하거나 멋진 풍경을 보고 연신 “미쳤다”라고 말한다. ‘미쳤다’란 자막까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미치다’란 단어는 부정의 의미가 강하다. PD, 출연자, 편집자는 이런 말과 자막이 정신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조금 더 범위를 넓혀보자. ‘다움’이라는 말은 또 어떤가? ‘여자다움’, ‘남자다움’. 우리는 특정 집단이나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을 담은 말을 아무런 비판 없이 쓴다. ‘○린이’라는 말도 요즘 많이 보인다. ‘요린이’, ‘헬린이’, ‘주린이’. 이런 단어를 보면서 참신하고 귀엽다고 반응한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 말들은 아동을 부족하고 서툰 미숙한 존재로 본다는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그 사람의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여성, 아동, 성적 소수자 등을 혐오하고 비하하는 말이 넘치는 세상이다. 내가 무심코 뱉은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나의 의도치 않은 말로 다른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을까? 오늘 내가 했던 말을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에게는 존중의 말이 필요하다.

[장면 셋]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친구의 자녀가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인데 아이가 빵집에 갔다 와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했다. 빵집 메뉴에 ‘앉은뱅이밀 빵’, ‘앉은뱅이밀 쿠키’가 있었기 때문이다. ‘앉은뱅이밀’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자라온 토종 밀이다. 빵집 사장님은 ‘앉은뱅이밀’로 빵과 쿠키를 만들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단다. 빵집 사장님에게 따지고 물을 일이 아니었다. 변호사님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썼다.

● 제 목 : ‘앉은뱅이밀’ 품종 이름 변경을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 글쓴이 : 김예원

● 수신인 : 농업진흥청

● 내 용

안녕하세요. 저는 장애인권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중략) 친구의 자녀가 지체장애인인데 이름이 ‘앉은뱅이밀 빵’을 보고... (중략) 앉은뱅이는 지체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말입니다... (중략) 많은 고민 끝에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앉은뱅이밀’이라는 이름을 더 귀엽고 더 건강한 단어로 바꾸는 것을 고려해 주시면 안 될까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세 시간 뒤에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민원을 신속히 검토했는데 타당한 지적이라 다른 말로 바꾸겠다는 내용이었다. 변호사님은 이 내용을 페이스북에 공유했고 내친김에 ‘앉은뱅이밀’을 대신할 이름도 모았다. 순식간에 100개가 넘는 이름이 달렸다. ‘알찬밀’, ‘꼿꼿밀’, ‘올곧밀’, ‘늦찬밀’, ‘단단밀’ 등 밀의 겉모양 보다는 성정(性情:사람의 성질과 마음씨)을 중심으로 이름이 붙었다. 이름 후보들을 정리해 농촌진흥청에 전달했다. 청 내부 토의를 거치고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앉은뱅이밀’은 ‘앉은키 밀’이란 새 이름을 얻었다.

나는 ‘앉은키 밀’ 이야기로 ‘관심’을 말하고 싶다. ‘인권과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작은 관심’ 정도면 어떨까? 사소한 일을 살피고 의견을 내고 생각을 모으는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유난 떠는 일로 보일 수 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눈치를 보기도 하고 ‘나 하나 이렇게 한다고 달라질까?’라는 불편한 마음과 타협하기도 한다. 관심을 갖자. 관심을 가지면 내 주변 사람의 이야기가 보이고 그 이야기에 공감하게 된다. 공감은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의 연대가 되어 사회를 변화시킨다. 관심의 씨앗이 공감과 연대의 줄기를 만들고 변화의 열매를 맺어 사회를 움직이는 과정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서로에게 건네는 존중의 말과 관심들이 켜켜이 쌓이면 그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다시 한번 ‘노트르담의 지체장애인’을 기억하자.

※ 참고 도서: 김예원, 『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 웅진지식하우스, 2022, p.160~175

※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의 내용을 인용, 발췌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출판사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또한, 출판사의 요청으로 상기 도서가 『사람을 변호하는 일』(2024)로 전면 개정되어 출간되었음을 덧붙입니다. <강관철 / 제주장애인야간학교>

<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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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2024-07-09 20:08:22 | 118.***.***.20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셍각 납미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잘 읶었습니다.

노란오리 2024-07-09 13:07:42 | 39.***.***.36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저희 딸과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동화책 제목에 대해 이야기 해봤는데 그 생각이 나네요~ 인권을 위해 뭔가 대단한걸 해야하는게 아니라 이렇게 비평적인 시각을 갖고 이야기 해보면 좀 더 성숙한 사회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