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앞 통행로, 주차차량들 차지...사라진 보행로에도 '나 몰라라'
어린이 통학안전 위협...불법 주정차 신고해도, "위반 아니다" 묵살
ㅇ'보행로 없는' 위험한 도로,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일까, 알고도 모른척 하는 것일까.
제주시청 직장어린이집 앞 도로(동광로 6길) 일대에서 보행자들이 차도로 내몰리는 아찔한 상황이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다. 도로 양쪽 가장자리에 차량들이 주차하면서 보행 통행로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시 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시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보행자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통로를 확보하려는 시도조차 없다. 더욱이 보행로를 가로막는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해 시민들이 신고하더라도 묵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헤드라인제주> 취재를 종합하면, 왕복 2차로인 동광로 6길은 제주시청과 연결되면서 차량 통행량이 많은 곳이다. 중간 지점에는 영유아를 보육하는 제주시청 직장어린이집이 위치해 있다. 상하수도과 등의 시청 별관도 자리하고 있다.
많은 공무원들이 매일같이 이용하는 도로로도 꼽힌다. 출.퇴근을 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일대에 식당들이 밀집돼 있어 점심시간에는 크게 붐비는 곳이다.
그러나 이 도로는 보행자들이 위험을 느끼는 강도가 매우 큰 곳으로 꼽힌다. 보행자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도로의 차도 노면표시 양옆 가장 자리의 작은 통로가 있기는 하지만, 그곳은 온종일 주차된 차량들로 가로막혀 있다.
인근 주택가 시민들은 차도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침 등교시간대, 이곳은 차도로 내몰린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혼자 학교로 가는 아이들은 주차된 차량을 피해 차도로 갔다가, 차를 피해 다시 가장자리로 갔다가 하는 상황을 수차례 반복해서야 이 도로를 빠져나갈 수 있다. 부모와 함께 길을 가는 아이들도 상황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통학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주 취재진을 만난 학부모 고모씨(36. 제주시 이도2동)는 "아침에 아이를 혼자 보내려면 너무 걱정이 되어서 횡단보도와 통학로가 있는 곳까지는 항상 같이 가고 있다"면서 "차가 지나다니는 곳은 제외하더라도, 길가 양쪽으로 볼라드를 박아서라도 통행로를 만들어주면 될텐데, 왜 안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아이들도 위험하겠지만, 어른인 저도 이 길 가려면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도로변에는 차들이 주차해 있고 차도로 가면 운전자가 빵빵 거리고,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보행자 책임이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시청 상하수도과 사무실이 바로 옆이고, 공무원들 자녀가 있는 직장어린이집까지 있는 곳인데, 보행로가 없다는게 말이 되나"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동광로6길 동쪽 블럭에 거주한다는 시민도 "정문 앞은 요즘 무슨 공사가 한창이어서 알아보니 인도를 넓힌다고 한다"면서 "사람 다닐 공간 하나 없는 이곳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도로 다이어트'다 뭐다 떠들고 있으니, 누구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주차금지' 팻말에도...불법주차 신고하면..."위반 아니다" 묵살
현장을 확인한 결과, 이곳 도로의 가장 큰 문제는 도로 가장 자리 황색 점선이 표시돼 있는 지점과 상가건물 사이 공간에 차량들이 주차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점 때문으로 나타났다.
차량이 주차하지 않는다면, 이 공간을 보행로로 활용할 수 있음에도, 행정당국은 '주차금지' 팻말만 설치한 후 차량들이 주차하도록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시민들이 보행로를 가로막고 있는 주차된 차량들에 대해 신고를 하더라도 "위반이 아니다"며 묵살하기 일쑤다.
시민들에게 이러한 내용을 들은 후 취재진이 실제 보행로에 세워진 차량을 촬영해 안전신문고를 통해 신고한 결과, 제주시에서는 지난 5일 '불수용'이라는 처리결과를 회신했다.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주시는 "민원내용은 '보도 불법 주.정차 차량' 단속에 관한 것으로 이해된다"면서도, "현재 도내 차량증가 등으로 모든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여건이다"고 설명했다.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 구체적 이유로는 '연석 등으로 차도와 보도(인도)가 구분되어 있는 상황에서 보도를 침범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즉, 이곳은 차도 가장자리를 황색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을 뿐, 연석이나 볼라드 등이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태료 부과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주시의 설명대로라면 직장어린이집 주변의 도로 가장자리에서 보행자 통행을 가로막으며 주차를 하더라도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실상 행정당국이 보행자의 통행을 현저히 위협하는 무질서 주차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주며, 오히려 무질서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그럼, '주차금지' 팻말은 왜 세워둔 것일까.
제주시 교통부서 관계자는 "행정당국에서 단속할 수 있는 기준은 (주차금지) 표지판보다는 차선이 우선이다"면서 "직장어린이집 앞은 주차금지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나, 도로교통법 32조의 규정에 따라 (노면 가장자리가) 황색점선으로 되어 있고 (연석 등으로 차도와 보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아) 단속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도로교통법 32조 1항은 "교차로·횡단보도·건널목이나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의 보도"에 대해 주차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으로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단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속 대상이 아니라면서도, '주차금지' 표지판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어느 부서에서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 공무원들도 다 아는 문제...그럼에도 왜 '보행로 구역' 설정 안하나
아이러니 한 점은, 이러한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공무원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시청은 구내식당이 없는 관계로, 매일 점심시간대에는 많은 공무원들이 식당 등으로 이동할 때 이 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공무원들 역시 보행자로서 통행에 불편을 수시로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길 가장자리에 연석 또는 볼라드 등을 통해 보행로 확보에 나서지 않는 것일까.
최근 이 도로 구간에서는 노면 포장 공사가 진행됐다. 그러나 포장공사가 완료되자 종전과 마찬가지로 황색 점선표시만 한 후 마무리됐다. 보행로 구간 설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시 관련부서를 통해 파악한 결과, 올해 재포장 공사 과정에서도 '보행로' 확보에 대해서는 제대로운 검토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행로 구간 1.5m를 확보할 수 없는 점, 주변 상가의 반발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 등을 들었다. 보행자의 안전보다는 상가의 반발이 더 두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이치에 맞지 않다. 용문로에서 용담2동주민센터로 이어지는 길은 도로가 협소하고 양 옆으로 상가가 즐비함에도 볼라드 설치 등으로 차도와 보도를 구분하고 있다. 이곳 역시 주차가 매우 힘든 곳이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안전한 통행을 위해 보행로를 설정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집중 취재가 이뤄지자, 이도2동주민센터 관계자는 뒤늦게 "관계부서와 협의한 후 보행로 확보 문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정문 앞 구간은 '도로 다이어트'...보행자 불편 심각한 별관쪽은 '뒷전'
한편, 시청 정문 맞은 편 도로(동광로2길)에서는 차도를 줄이고 인도를 늘리는 일명 '도로 다이어트' 공사가 한창이다. 왕복 4차선인 도로를 2차선으로 줄이고, 차도가 줄어든 만큼 인도와 녹지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곳은 보행자 불편은 없었던 곳이나, 시민들에게 쾌적한 녹지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당장에 보행자 불편이 심각한 별관쪽 동광로6길은 최소한의 보행로 확보도 나 몰라라 방치하고 있다. 한 블럭 사이를 둔 제주시청 연결도로의 명과 암이 갈리는 순간이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