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실의 문학산책] (19) 이소(離巢)와 귀소(歸巢)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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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의 문학산책] (19) 이소(離巢)와 귀소(歸巢)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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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려 내기도 한다. 그래야 좀 더 따뜻하고, 성숙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의 풋풋한 삶을 사랑스런 언어로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 <수필가 최연실>

고흐의 풍경화 한 점을 보고 있는 것처럼 제주도가 유채꽃의 세상이었을 때, 나는 애월읍으로 이소離巢를 했다.

혼자 맞는 주말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식사는 딸이 보내 준 파우더로 대신한다. 우유 200mL에 코코아 분말 가루를 두 수 푼을 넣어 섞은 다음, TV를 켠다. 한 모금 들이키곤‘동물농장’이란 프로에 채널을 고정한다. 오늘은 유명 연예인 이정신이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을 방송하고 있다. 집 주변을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던 그가 길 위에 쓰러져 있던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새의 몸에 온기가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는 알고 있는 상식을 총동원해 정성스레 보살펴 주지만, 많이 아픈지 웅크리고만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제 몸에 날개가 달려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가 전문가한테 자문하니 새 박사는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이 새는 혼자가 아닌,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직박구리이니만큼 며칠 새로 짝이 찾아올 거라 알려준다.

며칠 후, 그는 베란다에 새로이 새집을 장만하고 새장에 직박구리를 넣어주었다. 지금, 그의 시선은 창밖 너머에 있다. 어디선가 날아 올 새를 기다리는 중이다. 십여 분이나 지났을까. 꼼짝하지 않고 웅크리고 있던 직박구리가 퍼드덕 날갯짓하더니 밖을 향해 울부짖는 게 아닌가. 베란다 밖에서도 “삑 이이익.”하며 목 놓아 울고 있다. 어느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일까. ‘왜 여기 이러고 있냐고,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하며 능청을 떨고 있다. ‘네가 둥지를 떠난 것 아니었어?’하며 질책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베란다 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부리로 콕콕 유리를 찍고 있다. 방송을 보고 있는 나도, 긴 한숨에 내 어깨가 한 자나 쳐져 있다.

누구는 직장 때문에, 누구는 좀 더 세를 불려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해 살고 있던 둥지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소를 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삭막한 빌딩 숲에서 길을 잃고 있었기에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제주도에 내려올 즈음에 나는 마음이 빈곤했다. 그 허전한 마음을 오름에게 위로 받고 싶었다. 첫해는 오름에 눈이 멀어 세월을 낚는 어부가 되었고, 두 해가 지나갈 무렵에는 마음속에 오름을 품었다. 들꽃을 담은 봄의 오름이 좋았고, 한여름의 뙤약볕을 곶자왈에서 또 다른 나와 씨름하며 보냈다. 육지에서 추수가 끝나갈 무렵, 억새를 벗 삼아 바람에 음표를 부쳐 노래하고 춤추다 보면 어느새 겨울 문턱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나목 위에 실타래처럼 늘어진 백설이 눈꽃송이 되어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으면 이 보단 더 좋을 수 없노라고, 잘살고 있노라고 내심 토닥이곤 했다. 그런데도 메울 수 없는 구멍에 바람이 들어와 여전히 옷깃을 여민다. 나를 고독하게 만들며 그 이유를 찾는 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직박구리 두 마리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아침 인사를 건네고 있다. 지난밤에 별일 없었니?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네가 있던 곳으로 귀소歸巢하라고. 부리로 창문을 콕콕 쫓는다. 잘 지내고 있는지 하루가 멀다 하며 찾아왔다. 이정신이 새장 문을 열자 새장에 있던 새가 안정을 찾은 듯, 퍼덕거리며 창공을 향해 날았다. 비상하는 두 마리 새의 날개가 솜털보다 가벼운 듯하다.

남편도 그랬다. 제주도에 나를 혼자 보내고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잦은 톡과 안부를 보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사유함도 깊어질 거로 생각했다. 그 덫에 갇혀 버린 채 지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삐걱거렸던 무수히 많은 날이 점점 퇴색되고 희미해져 간다. 아픔도 녹슬었는지 이젠 무뎌졌다. 그리운 이들을 두고 나는 무엇을 하는 걸까. 그래서일까. 이소할 때 따스했던 봄날의 볕이 바래만 가고 해年 도 저무는데 말이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이소와 귀소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하나가 아니었을까. 둥지라는 글자에 집착해 내 감정과 생각을 얼기설기 엮어 놓곤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미 오래전부터 내겐 집이 없었기에 이소와 귀소의 필요충분조건이 성립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나는 방랑자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올해가 가기 전, 마음에 집을 들여야겠다.  <수필가 최연실>

최연실 수필가ⓒ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갔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생활수필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 2018년 수필과 비평 등단
- 한국 언론인 총 연대 편집기자
- 서울 서부지부 원석문학회 회원
- 제주 백록수필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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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2022-12-23 18:35:07 | 112.***.***.220
이번글은 특히 더 와닿는것 같아요..눈보라치는 추운 겨울은 가족이 있는 따뜻한 집을 더욱 간절하게 하죠...저도 올 겨울엔 마음속에 따뜻한 집을 들여야겠어요(-_-)

기다림 2022-12-16 12:38:23 | 39.***.***.206
작가님은 참 귀여운 방랑자 인것 같습니다. 이번 연재글도 참 따뜻하네요. 다음호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