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교원과 100만 공무원에게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돌려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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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 교원과 100만 공무원에게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돌려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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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기고] ④ 문희현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장
문희현 / 전교조 제주지부장
문희현 / 전교조 제주지부장

지난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 기념일(학생의 날)을 맞아 중고등학생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고교생이 그린 ‘윤석열차’ 카툰과 중고교생 촛불집회 탄압 논란에 대해 학생들이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어느 중학교에서는 기후위기에 맞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어 채식급식을 주1회로 하자는 안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사회에 대한 관심 표명과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위해 직접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반갑기도 하고, 이런 청소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하다. 

그럼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권리는 보장되고 있는가? 
교사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사람이다. 설령 정부가 바뀌어 교육정책이 달라진다 해도 정권이나 그 누군가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정치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랜 기간 교사의 정치적 권리는 깡그리 무시 당하고 정치중립만을 강조해왔다. 원래 공무원의 정치중립 의무 규정은 공적업무 수행에 있어 특정 정치집단이나 세력을 대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를 역해석하여 공무원법, 공직선거법 등 각종 법률로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기본권 행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50만 공사립교원에게, 100만 공무원에게 정치기본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박정희 군사 정권이 교원·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박탈한 후 정치적 무권리자로 살아온 지 60년이 되었다. 교사·공무원은 정당에 가입하기는커녕 지지하는 후보에게 후원금을 내지도 못하며, 선거운동은 고사하고 후보의 선거공약에 대한 의견 표현조차 할 수 없다, 현직교사는 교육감이나 국회의원, 지방의원 선거에 입후보할 수도 없다. 2016년 총선 과정에서는 SNS에 정치 관련 기사를 공유했거나 ‘좋아요’를 눌렀다는 이유로 교사 70여 명이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당했다. 근무시간 외에 개인 SNS라는 사적 공간에 글을 올린 행위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사법처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교사·공무원은 공무를 수행할 때에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정하게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근무 외 시공간에서는 기본권의 주체인 시민으로서 권리 행사가 보장되어야 한다. 교사·공무원에게 24시간 내내 정치적 무권리 상태로 가만히 있으라 강요하는 야만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최근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만 18세부터, 정당가입은 만 16세부터 가능해져 고등학생에게도 참정권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킬 책임이 있는 교사는 정치적 무권리 상태이다. 고등학교에서는 정치 못 하는 교사가 정치하는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 못 하는 교사가 정치하는 고등학생을 민주시민으로 길러낸다는 것은 마치 요리를 하지 못하게 금지된 교사가 요리사들에게 요리 강습을 하는 것과 같다. 

 지난해 ILO(국제노동기구) 전문가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교사들에게 학교 밖에서 수업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정치활동까지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고용·직업상 차별철폐를 규정한 ILO협약 111호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밝혔고, 국가인권위원회도 2019년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법 개정을 정부에 권고하였다. 또한 2020년 10만 국민청원을 통해 교사·공무원 정치기본권 보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충분히 형성되었다.

 이제 교사·공무원 정치기본권 보장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교사·공무원의 근무시간 이외의 정치활동을 보장하고, 50만 교원과 100만 공무원에게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돌려주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 발 앞으로 이끄는 일이 될 것이다. <문희현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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