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관악제 여름행사를 마치며 개막식에 대한 미학적 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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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관악제 여름행사를 마치며 개막식에 대한 미학적 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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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황경수 /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2022년 8월 8일 제주 아트센터에서는 제27회 제주국제관악제 개막식이 열렸다. 코로나를 뚫고 준비한 것이었다. 합창이 무대를 장식하지 못했고, 많은 수의 연주자들이 자리를 같이 하지는 못했지만 임대흥 선생이 지휘하는 제주 윈드 오케스트라가 개막식 주요 공연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게 했다. 
  
본 글에서는 개막식을 관람하고, 필자가 연구하는 틀 중의 하나인 다음의 틀로 제주국제관악제에 대한 미학적 소견을 적어보고자 한다. 이 공연은 유트브에 “제27회 제주국제관악제 개막공연”이라는 이름으로 올려져 있다. 

1) 감각적 미와 관조적 미 : 플라톤

제주국제관악제 개막식은 예술의 본질을 관조하는 관조미, 우리의 감각에 호소하는 감각미를 동시에 겸한 공연이었다. 한국의 순수음악인 판소리와 민요의 선율을 서양음악을 통해서 표현하였다. 판소리의 서양악 반주는 동양과 서양의 감각선율을 충분히 활용하는 공연이었다. 뮤지컬이 가능한 판소리 가수 고영열을 출연시켜 그 표현을 해낸 것이다. 판소리의 순수와 서양의 감각의 변증법적 만남의 조화로운 장소였다.    
  
판소리출신 뮤지컬 가수 고영열과 카운터 테너 존노와의 ‘아리랑’공연에서도 판소리, 뮤지컬과 대중음악의 향을 모두 느낄 수 있게 했다. 순수와 감각의 변증은 계속되는 모습이었다. 제주국제관악제라는 축제의 경우 지나친 순수와 관조의 미, 이 둘만을 추구기는 어려운 일이고 보면 순수예술가의 예술성을 통해 감각의 미를 표현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기획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 반성과 진리유도, 그리고 공진 : 아리스토텔레스 

제주국제관악제의 개막식 연주의 주를 이룬 두 팀 중 첫 팀인 제주 윈드 오케스트라는 공진을 위한 구성이었다. 지역내의 공기관예술단체의 단원들이 참여하고, 전문예술가이지만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자유예술가들이 같이 참석하도록 구성되었다. 제주국제관악제 개막식은 제주국제관악제의 수준을 보여주는 공연일 수 있고, 제주국제관악제의 수준을 평가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기도 한다.  
  
윈드 오케스트라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은 기관에 소속된 연주자와 자유예술가들의 연합으로 만들어도 가능하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시운영되는 상설기관이 아니지만 지금의 제주 윈드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제주도의 재원으로 가능하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국제관악조직위가 지역내 각 파트별 훌륭한 연주자들의 리스트들을 파악하고 있다는 장점과 제주도내 공기관예술단체들도 국제관악조직위와 협력체계가 이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3)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역할 : 디드로 

국악의 숨겨진 멋을 드러내게 하는 공연이었다. 제주 윈드 오케스트라의 느영나영 곡 연주도 그러했다. Frank Ticheli의 작곡이었다. 느영나영 주제에 의한 곡이었다. 서양 작곡가가 국악의 맛을 드러나게 한 곡이었다. 악기편성의 다양한 변화, 조용한 트럼펫으로 시작해서 혼으로, 플륫과 클라리넷으로 그리고는 전체가 모여들게 하는 편성이었다. 조용한 목관이 중심으로 서로 주고 받고 한참 동안의 난장을 펼치다가 점차 혼이라는 악기를 매개로 금관으로 이어지고 목관은 밝음의 추임새를 지속한다. 후반부에는 곡의 속도가 2배로 3배로 확장되면서 느영나영이라는 곡과 제주의 예술의 풍요로움을 노래한다. 서양분들도 우리 국악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표현해낸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예술의 역할에는 한계가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코리밴드의 백조 서곡은 브라스로써 백조의 호수의 백조를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해주었다. 많은, 화려한 백조들이 나타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브라스로 표현해주었다. 코넷의 연주는 기존 풀편성의 오케스트라에서는 볼 수 없는 느낌이다. 누구도 믿기 어려운 피콜로 트럼펫의 솔로 연주는 과연 브라스 최고의 경지 수준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오보에나 잉글리시 호른이라 여겨질 정도의 섬세하고 목관적 소리였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감히 보이지 않았던, 느끼지 못했던 것을 보고 느끼게 해준 공연이었다.         

4) 숭고와 감정의 미, 비탄미 : 버크

 아리랑 공연은 남성의 저음이 주는 비탄미를 맘껏 표현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슬픔의 연결을 전조를 통해서 표현하고, 그 위를 카운터 테너가 올라간다. 판소리 저음 가수가 이를 받쳐준다. 숭고함속에서 비탄을 느끼게 한다. 전체의 기저로 자리잡은 판소리 가수의 비탄미는 아쟁과 대금을 만나는 것과 같은 비탄의 아름다움이었다. 남성의 낮은 음과 판소리 창법을 통한 가늘고 높은 음이 만나면서 한과 애절함을 동시에 표현한다. 어느 누구든 어떤 슬픔이라도 빨이들일 것 같은 공연이었다.   
  
아리랑이라는 선율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한의 가사를 덧붙여 한 민족이 역사적으로 흐르는 비탄미를 표현하려 했다. 편곡자의 한이 가사를 통해서 기존의 ‘아리랑’에 새로운 색을 보태었다. 그래도 비탄의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서양 음악을 연주한 코리밴드에서는 흐루겔 혼의 연주로써 Only in Sleep라는 곡에서 비탄미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악기의 선율로 보여준 것이다. 가사가 없이도 음악은 모든 정서를 보여줄 수 있듯이(디드로의 ‘언어를 뛰어넘는 예술의 역할’과 같은 맥락) 브라스로서 우울과 비탄미를 보여주었다. 연주 후 지휘자가 흐루겔 혼 연주자와 깊은 허그를 한다. 이 또한 그 우울과 비판미를 안아주는 모습이었다. 따뜻함으로 비탄미의 잔향을 느끼게 하는 퍼포먼스였다.     

5) 순수미, 쾌의 배제 : 칸트

후반부 공연한 영국의 코리밴드(Cory Band)의 브라스 악기들의 순수한 연주는 브라스 장르의 순수함을 충분히 표현하는 공연이었다. 다만 쾌를 배제하고, 순수를 추구한 공연 자체가 브라스 공연 관람이라는 최고의 쾌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칸트도 순수를 추구하는 것이 결국은 그 분야의 최고의 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었고, 궁극적 쾌를 추구하려면 순수를 먼저 추구하라는 언명인 듯 하였다. 

6) 아름다움과 정신 강조 : 헤겔

고영열의 판소리와 존 노의 카운터테너의 콜라보레이션은 많은 박수 속에서 아름다움과 서양과 국악이 만날 수 있고 협력할 수 있다는 정신을 보여준 부분이었다. 입장부터 관중의 환호를 불러내었다. 소리의 아름다움은 물론 과거의 공연을 통해서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제주국제관악제에서는 윈드 오케스트라가 이러한 판소리와 카운테 테너를 품어내고, 그 속에서 서양악과 국악의 훌륭함을 정신이라는 프레임으로 표현하는 장면이었다.  
  
한국 음악의 정신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의 판소리는 서양음악, 브라스의 반주, 금관악기, 서양의 발성 등과 만나서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앙상블의 정신이 협력이고 보면, 우리의 판소리는 모든 장르에 협력적인 정신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7) 감각적 가상을 이상화와 정신화 : 헤겔

서양악과 국악을 연결시켜 각각의 감각적 가상을 활용하여 관악과 제주의 노력을 이상화하고 정신화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제주도립교향악단 등의 편곡을 담당하면서 제주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이문석 작곡자가 쓴 곡은 서양악 중 윈드 오케스트라가 우리의 악기 태평소의 반주를 맡게 함으로써 국악의 감각적 성격과 서양의 윈드 오케스트라편성을 연결시켜,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전통의 아름다움을 장르를 넘나들면서 추구하는 정신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고영열의 판소리와 서양악 윈드 오케스트라와의 만남도 우리의 국악정신을 이상화하는 모습이었다. 덧붙어 고영열의 판소리적 접근과 준 노의 카운터 테너적 접근을 연결시킴으로써 동서양의 감각적 가상들을 존중하면서, 그 위에 연결되는 이상, 정신을 묘사하고자 하는 공연이었다.      

8) 실존과 의지 : 니체

기존에는 도립이라는 기존 단체의 참가를 기정사실화했던 공연이 ‘제주 윈드 오케스트라’를 재소집하여 주도하게 한 것은 큰 의지의 표현이고, 실천을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코리밴드의 공연은 우리에게 많은 실천과제를 남겨주는 공연이었다. 필자가 느끼는 과제들을 보면, 인구가 많으면 브라스 소리는 좋아질까? 지휘자가 좋으면 브라스 소리는 좋아질까? 전공자들을 모으면 브라스 소리는 좋아질까? 편곡실력이 좋으면 그 악단의 브라스 소리는 좋아질까? 다양한 악기들을 참여시키면 브라스 소리는 좋아질까? 등등의 문제제기였다.
  
느낀 점은 국제관악제조직위원회가 관악계의 유리창, 대문이 되어서 이러한 최고수준의 밴드를 자주 모셔와야 한다는 것이다. 느끼고, 의지가 생기고, 그 의지가 클수록 실천과정이 현실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벌의 비행’이라는 곡과 같은 테크닉으로 백합의 춤을 코넷으로 연주하는 수준이었다. 테크닉의 최고경지 수준을 보여주었다. Only in Sleep에서는 흐루겔 혼의 곡 중 솔로로 좌중을 평정한다. 합창을 위한 편곡에서 응용한 느낌이다. Blending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악기의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앙상블 자체의 테크닉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보면, 코리밴드의 공연은 다양한 측면의 최고수준을 보여주었다.   

9) 해방된 지각 유도 : 베르그송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국악의 서양악과의 만남은 국악과 서양악의 해방을 유도하는 장을 마련하였다. 최근의 ‘융복합’이라는 단어와 ‘4차 혁명’이라는 용어를 풍미하기전까지는 다른 장르와의 콜라보나 한 장르의 다른 장르로의 변형적 움직임은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제주국제관악제는 다양한 곳에서 기존 엄격한 규칙으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지각하게 하는 퍼포먼스들이 많다. 
  
국악의 기존 틀에서의 탈피, 덧붙여서 그 국악이 서양악과의 만남 등을 통해 서너개의 해방의 문을 거치고 제주국제관악제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사례라할 수 있다. 제27회 국제관악제의 경우 개막식에서는 ‘국악’이 서양악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의 클래식의 세계화를 시도한 느낌이었다. ‘K 클래식’이라고 할 만했다. 우리의 클래식이 우리의 국악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벗어나서 서양으로 향할 때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한번 더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내에서 먼저 큰 박수를 유도해야 하겠다. 이번 제주국제관악제는 이러한 역할의 전령으로써 첫 일을 시작한듯했다.       

10) 창조의 저항성 : 들뢰즈

판소리 사랑가의 윈드 오케스트라 반주는 판소리와 서양음악의 모든 경계를 넘어뜨리고 만나는 모습이었다. 기존의 틀과 경계에 대한 끝없는 저항이었다. 그 결과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모습이었다. 외국에서 참가한 사람들의 느낌을 듣고 싶을 정도로 창의적이었다.    
  
이문석 선생의 태평소와 윈드 오케스트라를 위한 ‘취풍류’의 공연은 순수를 추구하려는 예술가들의 맥락에 큰 저항의 모습을 보여준 공간이 되었다. 10여분간의 공연이었다. 형식의 저항, 내용의 저항이었다. 그 누구도 지루하다거나 냉소적 입장을 가지고 보지 않을 공연이었다. 이러한 긍정성이 담보된 연유는 이 사회가 걱정하는 클래식의 대중화, 클래식에 대한 유연한 시도가 가져오는 우려 등의 문제를 인식하면서 작곡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경수 /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황경수 /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또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태평소와 윈드 오케스트라의 콜라보와 최고의 궁합을 보여주었다. 시각적으로도 그렇고, 음계적으로도 서양음계에 조금도 벗어남이 없이 전체를 이끌어가는 태평소, 끝없이 긴 호흡으로 윈드 악기들의 최고의 장점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클래씩의 엄격한 형식성에 대한 큰 저항으로써 각 장르의 예술을 한 차원 승화시킨 모습이었다. 

이제 제27회 제주국제관악제의 여름 행사는 막을 내렸다. 이런 글들이 작은 의견으로 작용하여 많은 용기를 줄 수 있길 바라고, 미래 방향설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황경수 /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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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2022-08-21 05:02:51 | 118.***.***.208
글읽다가 잘못된정보가 있어 수정요청드립니다. 소리꾼 고영열과 함께 아리랑 부른 존노는 카운터테너가 아닌 테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