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대어린이도서관 '철거' 강행?..."제주시, 지원한다면서 뒤에선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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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대어린이도서관 '철거' 강행?..."제주시, 지원한다면서 뒤에선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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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지원 방법 검토하겠다"면서 문서로 "이전 계획 제출하라" 압박
도서관 "지원은커녕 또다시 일방적 통보...앞뒤 다른 모습 기가 차"
아이들, 도의원에 편지로 "도와달라" 호소...제주시 "철거해야" 고수
제주시 연동경로당 전경.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은 경로당 2층에 자리잡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제주시 연동경로당 전경.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은 경로당 2층에 자리잡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헤드라인제주>가 지난달 14일 보도한 제주 설문대어린이도서관 철거 논란('아이들의 쉼터' 제주 설문대어린이도서관, 갑작스런 철거 통보...왜?)과 관련해, 제주시가 "지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지원할 계획"이라고 공언해놓고 지원은커녕 뒤에선 도서관에 이전 계획을 제출하라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취재진이 10일 오전 입수한 '공유재산 경로당(연동경로당) 원상복구 연기요청 의견에 대한 회신'을 살펴보면, 제주시는 도서관의 공간 사용을 '무단점유'로 규정하면서, 2층 공간을 이용해야 하므로 다른 장소로 이전할 계획을 이번달 말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취재진과 통화한 도서관 관계자는 "지원은커녕 제주시랑 제대로 협의 한번 해본 적이 없다"며 "또다시 일방적으로 이번달까지 공간 원상복구에 대한 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제주 최초 어린이도서관이자 작은 도서관인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은 지역 주민과 활동가들이 지난 1998년 설립한 사립 도서관이다. 2000년부터 제주시 연동경로당 2층에 자리를 잡고 운영되고 있는데, 20년 이상 수천 명의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애용하는 등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지난해 7월 제주시가 공유재산 실태조사를 하면서 해당 도서관이 허가를 받지 않은 채 경로당을 이용하고 있다고 봤고, 지난 5월 16일 도서관에 공유재산인 경로당의 일부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공간을 비우라고 통보하면서 촉발됐다.

하지만 도서관은 사용료도 매달 냈을 뿐만 아니라, 행정 공무원이 알선해 줘 이 공간을 이용하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수십 년을 사용해온 공간을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비우라고 통보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라고 반발했다. 

설문대어린이도서관에서 어린이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설문대어린이도서관에서 어린이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지역사회에서의 역할과 중요성을 꾸준히 인정받고 있는 도서관이 갑작스럽게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지난 달 26일 열린 제408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고의숙 교육의원(제주시 중부선거구)은 "같은 장소에서 20년 넘게 있었는데 행정이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무단사용이라며 비우라 한다는 것이 책임행정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이상헌 제주시 부시장 "공유재산 관리가 부족했다"며 "도서관이 새로운 장소를 구할 때까지 거기서 사용토록 하고, 가능한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제주시는 지난 1일 도서관에 '공유재산 경로당(연동경로당) 원상복구 연기 요청 의견에 대한 회신'을 통해 "오는 31일까지 이전 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반면, 약속했던 것처럼 도서관 이전을 위한 별도의 지원이나 협의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도서관을 다른 장소로 이전해야 함에 따라 2022.8.31까지 구체적인 이전 계획(이전 기간 등)을 제출해달라"며 "그러면 기간 연장에 대하여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제주시는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은 재산관리관으로부터 건물에 대한 사용허가를 받은 내역이 없다"며 도서관의 공간 사용을 "무단점유"라고 규정하는 한편, "건물의 사용용도는 노인복지회관(경로당)이며 당초 기부채납 목적대로 사용하여야 한다"며 철거 입장을 고수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 5월 갑작스럽게 철거 통보를 받았다"는 도서관의 주장에 대해 "일방적으로 나가라고 통보하지 않았다. 1년 전인 지난해 8월 도서관에 공간을 비워달라고 사전에 이야기를 했다"는 제주시의 해명도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회신 내용을 보면, 제주시는 "2021년 8월 초 도서관 관련 부서에서는 설문대어린이도서관에 (철거에 대한) 내용을 전달한 바 있다. 해당 문서를 바탕으로 2022.8.31을 기한으로 하여 2022.5.16 문서를 발송한 사항"이라고 했다.

지난해 8월에 철거 관련 내용을 어떤 식으로 전달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고, 동시에 공식적인 통보는 올해 5월에 했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이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독서프로그램. ⓒ헤드라인제주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이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독서프로그램. ⓒ헤드라인제주

도서관 측 관계자는 이날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지원은 무슨 지원이냐. 공론화된 이후 지원은커녕 도서관과 제대로 협의 한번 해본 적 없다"며 "관련 부서에서 찾아온 적도 없다. 앞뒤 다른 행태에 울분이 터진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회신을 받고 나서 너무 막막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만 하고 있다. 무작정 옮기라고만 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전문가를 만나 이 공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여쭤볼 건데 떠오르는 대책이 없다. 정책에 잘 반영하겠다고 했으면서..."라고 말 끝을 흐렸다.

이어 "이 지역의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최소한 연동을 벗어나선 안된다"며 "아이들은 도의원들께 도와달라고 편지를 쓰고 있다. 아이들의 간곡한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연동 소재 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ㄱ군(11세)은 편지를 통해 "저는 3살 때부터 엄마가 끌어주는 유모차를 타고 설문대어린이도서관에 갔다"며 "조부모님이 책을 읽어주시고 풀에 대해 알려줬다"고 했다.

이어 "작년에 혼자 집에 있을 때 지진이 났다. 너무 무서워서 우리 집 앵무새를 데리고 도서관에 갔다"며 "무서웠는데 설문대 선생님들이 위로를 해주셨다. 도서관이 이 자리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제주시는 여전히 경로당 자리가 협소하고 행정 절차상의 문제로 도서관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제주시 관계자는 "구두상이긴 하지만 1년 전 공간을 비워달라고 이야기를 했다"며 "바로 행정 집행을 하지 않고 유예기간을 준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공간을 원상복구하는 것이 행정 절차상 불가피하다"며 "경로당 공간도 협소해 도서관이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헤드라인제주>

ⓒ헤드라인제주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을 이용하는 초등학생이 쓴 편지.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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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 2022-08-11 21:56:27 | 122.***.***.71
앞과 뒤가 다른 행정이네요~
서명까지 참여했었는데~
지원한데서 조용했더니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