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준비하고, 땀으로 연주한 제주 고교동문 교류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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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으로 준비하고, 땀으로 연주한 제주 고교동문 교류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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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황경수 /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첫 연주회란 기록을 남긴 2022년 7월 28일 목요일 저녁, 제주 해변공연장 ‘제주 고교동문 교류음악회’는 땀으로 준비하고 땀으로 연주했다. 준비과정에서 다양한 변수들이 오고갔다. 긍정적인 변수들만을 모으고, 기획하고, 소통하고, 소집하고, 연습하고, 다시 모이는 준비과정에서 임원진을 비롯해서 학 학교의 모든 음악부 동문들이 땀을 많이 흘렸다. 연주한 오늘 필자도 땀 범벅이 되어서 눈을 못 떠 중간에 옷소매로 땀을 닦으며 연주를 했다. 그렇게 해보긴 처음이다. 땀이 각 학교의 음악 동문들을 하나가 되게 해준 연주회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은 반성부터 해보고자 한다.    
연주자가 스텝까지도 해야하는 척박한 상황이었다. 모든 구성원들이 스탭이었다. 사실 제주관악은 연주의 수준만이 아니라 메너와 스텝역량도 최고이다. 이번 연주는 그 내용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해변공연장 공직자들의 도움에 스텝진들이 특별히 지정되어 있지 않아도 큰 소리 한번 없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정리하고 이끌어내는 모습이었다. 이런 역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은 제주 관악만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다음 번에는 이렇게 고생한 후배들에게 맛있는 빵이라도 하나 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이 반성하는 부분이다.  
다음으로 아쉬웠던 점은 모든 구성원들의 스타일이 검정색이었다는 점이다. 호호호! 예산부족의 모습이기도 했고, 이런 부분에서 의견충돌로 피로감을 가지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과로 보인다. 내년에는 아니 다음 연주회에서는 다양한 색으로 각 학교의 색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무대복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다양한 화음도 예술이고, 무대에서 다양한 색의 사용도 공연의 중요한 한 분야가 될 것이라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안될까? 공공과 민간, 그리고 관악인 모두의 거버넌스적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라 하겠다. 
  
이번 연주회에서 직 간접적으로 느낀 점을 필자가 사용하는 열 가지의 틀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이번 동문들의 교류음악회는 ‘예술적 감각’을 추구하기보다는 연주자들간의 추억과 ‘감성적 미’를 추구하는 연주회였다. ‘관조적인 미’의 측면으로 해석을 한다면, 이번 음악회는 과거는 추억하되 미래를 관조하려는 음악회였다. 그동안 이 행사를 위해 준비하던 타 학교 동문 한 분이 저에게 와서 “내년에도 해야하는데 가능할지요?”라 물으신다.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의 모습이었다. 모이기도 어렵지만 예산도 쉽지는 않은 일이나 모두가 오랜 과거의 추억으로 긴 미래를 바라보려는 의지가 강한 모습이었다. 미래를 관조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둘째, ‘공진(co evolution)적 측면’에서는 전문연주가와 아마츄어 연주가들의 합주로 배우고, 서로의 존재를 인식케되는 연주회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좁은 지역이지만 자주 보고, 얼굴을 맞대며, 서로의 위치를 인지한다는 것은 그다음의 만남을 가능케 하는 문이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 연합 연주회는 큰 의미가 있다. 공진을 그렇게도 강조하던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중석에 왔다면 참 좋아했을 것이다.
  
셋째, 이번 연주회는 보이지 않던 동문회의 연합가능성을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예술은 모름지기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디드로의 주장)는 맥락이 있다고 하는바, 본 연주회가 제주지역의 고등학교 음악부 동문들이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내게 했던 것이다. 
  
넷째, ‘숭고미’와 ‘비탄미’의 측면에서는 본 연주회가 음악적으로 표현했다기 보다는 연주회 참여자들이 관악활동을 하는 과정의 괘적에서 느끼고 있는 숭고미와 비탄미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이런 음악회를 하게 되면 논의하게 되는 내용이 있다. 제주 관악발전을 위해 봉사하다 먼저 떠나신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악에서의 숭고미를 추구하는 순수예술의 영역을 노크하지는 않았다. 야외공연이자 추억을 더듬는 공연이기도 했고, 순수예술을 추구하기 보다는 연합이라는 가치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칸트가 강조하는 ‘순수’라는 측면에서는 본 연주회가 상업적 도구가 되지 않았다는 점과 풍족한 재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관되게 진행했고, 순수가치인 추억의 연대를 추구했다는 측면에서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쾌의 배제’라는 측면에서는 고교 음악부 동문들이 추구해왔던 교양적 활동이라는 점이 쾌의 배제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여섯째, 헤겔이 강조하는 어떤 ‘정신’을 담고 있을까에 대한 대답으로는 제주 관악의 정신을 담고자 했다고 답할 수 있다. 합주에는 합(合)의 정신이 담겨져 있다. 하나가 되기로 하여 시작한 합주정신에는 끈기와 인내, 양보와 협력, 예의와 배려, 단결과 동질감 등을 포함하고 있다. 관악합주에는 이러한 정신들이 통일되어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의식하지 못하나 합주가 끝나고 나면 그러한 정신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가 되어보려는 정신은 더 강화되어 간다.   

일곱째, 본 연주회가 어떤 ‘가상’을 구체화(이상화)하는 데에 기여했을까를 묻는 질문을 하면서, 그 답으로 지속화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제도화했고, 제주관악의 정체성을 또 다른 그릇으로 모아내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여건이 부족하다해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만들어 내었다. 
  
여덟째, 니체적 접근인 ‘실천’과 ‘의지’측면에서는 이번 연주만큼의 의지적 활동은 없을 듯하다고 할 정도로 강했다. 그 동안은 논의가 있었을 뿐이다. 다양한 루트에 의해서 제안이 있어왔으나 결국 각 학교별 동문들의 연주와 끝에는 연합으로 하는 연주의 모습의 틀로 결과화되었다. 의지와 실천의 결과물이다. 니체는 오늘 연주회 소식을 듣고 흡족함을 느끼고 계실 듯 하다. 
  
아홉째, 예술은 ‘해방’됨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본 연주회도 그동안 기획만했던 것에서 실천함으로서 그 고민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왔다. 닫혀진 고교별 경계를 서로 바라볼 수 있도록,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런 해방의 공간으로 유도했다. 악기의 공동사용과 공동배치 등을 통해서 유연함과 자유로움의 느낌도 가져왔다.

열 번째, 들뢰즈의 ‘창조의 저항성’이라는 틀에서 보면 본 연주회를 태생시키려는 많은 노력들을 이 저항성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연령주의와 그에 따른 권위주의를 탈피하려고 노력

황경수 /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황경수 /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했고(저항했고), 도토리 키재기식의 경쟁보다는 서로 감싸주기식의 의지로 본 연합연주회를 (저항해서)창조해낸 것이다. 과거의 안경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래도 그러한 과거의 행태에 머물러있지 않으려는 저항정신이 결국 큰 행사를 성공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번 제주지역 고교동문 교류음악회는 제주지역에 관악인구들이 활동하고 있었음을 드러나게 해주었다. 음악 동문들의 연대활동이 가능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다소 부족할 수도 있지만 지금 체계로도 이렇게 큰 행사를 치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인식케 해주었다. 6.25전쟁싯점에 시작된 제주 관악이, 근 70년을 지내오면서 오늘에 이르러 새로운 하부구조를 만들어내었다. “동문들이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황경수 /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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