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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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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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 서울서 열린 퀴어퍼레이드 축제를 축하하며

컵이 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정신을 차리느라 애쓰는 중에 툭 하고 침대 테이블에서 컵이 떨어지더니 금 간 곳을 따라 깔끔하게 깨어져 버렸다. 잔 유리 조각들도 몇 개 되지 않아 바닥 정리도 쉬웠다.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이 가버려서 컵으로서의 쓸모를 잃은 아이였다. 금 간 유리컵은 그러나, 여전히 예뻐서 거기에 이런저런 것들을 담거나 꽂아 사용하면서 쓸모를 연장하고 있었다. 애썼구나…. 조각들을 싱크대로 옮기면서 생각했다. 그동안 버티느라 애썼구나. 마지막까지 너는 부스러지지 않고 금 간 선을 따라 깨끗하게 무너졌구나. 고마워. 고마워.

애초에 금이 간 이유는 내열 유리라 적힌 설명서를 믿고 뜨거운 커피 내려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컵은 열에 민감한 아이다. 그렇게 만들었으면서 세상에서는 아닌 듯 조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자신에 어리둥절한 채 그렇게 살아내야 했을 것이다. 힘들었을 거다. 견딜 수 있을 만큼 버텼을 거다. 그러니 이 약한 유리컵은 아무 잘못 없다.

아무 잘못 없다. 세상의 기준과 맞지 않다고 해서 쓸모부터 평가당하는 모든 것들은 아무 잘못 없다. 애초에 다른 존재였던 것을 같은 기준으로 찍어 누른 세상이 문제다. 그 기준이 다채로워야 하고 그 기준이란 게 마침내 소멸되어야 존재는 존재 그대로 살아가고 살아낼 수 있다.

7월, 서울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열린다. 세상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대중성이 희박하다고 후려쳐지던 존재들이 금이 가면 금이 간 대로, 이가 빠지면 이가 빠진 대로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가 여기에 있다.”라고 춤추며 노래하며 울며 웃으며 모여들었다. 기준이 견고할수록 탈락된 존재들은 무방비로 아파야 한다. 내열이 되지 않는 유리잔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너는 왜 견디지 못하느냐고, 너는 왜 내열이 안되느냐고 고집을 부리는 세상에 맞서서, 내 존재는 다른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던 존재들이 1년에 단 하루, 한 공간에 모여 서로를 얼싸안고 괜찮다고, 그동안 잘 버텼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자신들을 드러내는 날이다.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를 찾아 모여든 사람들은 다음날이 또 흩어져 세상 속으로 돌아간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다른 네가 문제이니, 고통을 감내하며 버티라고 바뀌라고 너는 쓸모없다고 비난을 퍼붓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시화가 중요한 이유는 소수자라 숨어지낸 이들이 세상에 존재함을 알리고 그들도 우리 사회 구성원임을, 헌법에 명시된 대로 국가가 보호하고 보장해야 할 인권을 가진 사람임을 상기시키는 데 있다. 그 가시화의 축제가 바로 “퀴어 퍼레이드”이다.

질병, 성별, 성적지향, 장애, 이주민, 노인과 아동, 노동자, 빈곤…. 거론하는 데만 해도 한참 걸리는 이 많은 사람이 소위 “세상” 속에 스며들어 살아가고 있다. 세상 기준에 탈락한 몸으로 살아내려 애쓰고 있다. 눈을 감는다고 사라지거나 걸러지는 존재들이 아니다. 모두가 다른 모습으로 다르게, 다른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날카롭게 조각나 깨어진 유리컵을 다시금 조심스레 손에 담으며 생각한다. 금 간 유리컵은 음료를 담지 못하니 제거해야 하는 것일까. 애초에 금이 가지 않도록 다양한 기준으로 관계 맺음을 이어갔어야 하지 않을까. 주변으로 밀어내며, 너는 무용하니 꺼지라고 말하거나, 너의 무용은 네 고집 때문이라 말하며 뜨거운 물을 계속 붓는 것은 폭력이다. 그 폭력에 맞서 노래하고 춤추는 축제의 장으로 이어지는 행진이, 웃음으로 울며 얼싸안고 걸어가는 그 길에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사랑은 어떤 모습 어떤 형태로든 그 존재를 기꺼이 서로가 받아내는 데서 시작하는 게 아닌가. 누가 금 간 유리컵을 비난하는가. 누가 금이 가도록 만들었는가. 누가 금이 가고 이가 빠진 것들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가.

존재는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거기에 의견은 필요 없다. 제도와 구조가 문제라면 그것을 바꿔야 한다, 저 다채로 와서 빛나는, 그러나 소수자라 약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가 아니라. <한정선/ 소수자 활동가 및 작가>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은...

한정선 / 소수자 활동가 및 작가 ⓒ헤드라인제주
한정선 / 소수자 활동가 및 작가 ⓒ헤드라인제주

'작은 사람'이란 사회적약자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 차별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성, 노인, 아동, 청소년, 빈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더 나아가 동물권까지 우리나라에서 비장애 성인 남성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구조적 차별과 배제의 현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제 하의 남성은 '맨박스'로 괴롭고 여성은 '여성혐오'로 고통을 받습니다. 빈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침범하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공장식 축산은 살아 있는 생명을 사물화하고 나아가 단일 경작 단일 재배 등을 통해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약자의 소수자성이 교차될수록 더욱 삶이 지난해지고 그 개별화된 고통의 강도는 커집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제가 겪고 바라본 대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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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수 2022-07-29 08:52:40 | 27.***.***.180
그렇습니다 ~~
한정선님 작가 소수 퀴어 퍼레이드 각자목 헌법 이라고
또한 누가 유리금 함이라 하셨는데 소위~ 저는 그냥 모든 만물은 창조 하나 또한 사물함 소수 유리 사람 곤충 바람 공통 된 삶 살아숨쉬는 생명 내가 먼저 실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