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실의 문학산책] (9) 언덕 위에 집
상태바
[최연실의 문학산책] (9) 언덕 위에 집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려 내기도 한다. 그래야 좀 더 따뜻하고, 성숙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의 풋풋한 삶을 사랑스런 언어로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 <수필가 최연실>

#바비(이름)

부유하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은 고만고만한 오 남매를 키우느라 힘드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로 기억된다. 친구들에게 마네킹을 닮은 작은 금발 머리 인형을 자랑한 적이 있었다. 그 금발의 이름은 바비였다. 그날 이후로 매일 밤 나는 바비 인형을 분신처럼 끼고 잠들 곤 했다.

“여보세요? 저ㅇㅇ인데요. 연실 샘! 티브이 좀 보세요.”

“왜?”

그리고 몇 분 후, 단체 톡 방이 요란하다. 설마 하는 마음에 TV를 켜니 언덕 위의 우리 집이다.

애월읍에 집을 얻으려고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언덕 위에 알록달록한 여섯 채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연일 제주에 태풍이 북상한다고 방송하더니만, 결국에는 옆집에 직격탄을 날리고 지나갔다. 제주 날씨를 고려하여 옆집은 베란다를 새시로 칠갑했지만, 한 방의 원자폭탄 투하로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그 못된 녀석의 이름은 바비(태풍)였다.

홍천에서 돌아와 온데간데없는 옆집 베란다를 보니, 걱정하는 마음이 먼저인데도 나의 속물근성이 흘러나왔다.

“어머 이천만 원이 날아갔네.”

“글 쓴다는 사람이 하는 소리란 ...... 쯔 쯔.” 옆에서 남편이 혀를 찼다.

어릴 적, 바비 인형의 머리를 빗길 때마다 옥수수수염처럼 생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빗에 딸려왔다. 그때의 속 상해서 울었던 순수한 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 기억을 떠올리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불청객

내 집에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쳐도 이주에 한 번씩 찾아주는 불청객이 있다. 불청객이 조용히 왔다가 말없이 슬그머니 가면 좋으련만, 쓸데없는 잔소리만 심하니, 오지 않는 것이 부조인 셈이다.

태풍이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여기저기 손봐야 할 곳이 많았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으로 덜컹거리는 현관문 소리가 안방 창까지 전달되곤 했다. 바비(태풍)가 물러가고 난 뒤에 태풍 마이삭이 찾아왔다.

“당신! 집에 별일 없지요?”

“네.”

아침나절에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가 변심했는지 오후에는 굵어지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라치면 몸에 힘을 실어야 할 정도로 바람도 요란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리모컨에 손이 닿는 순간, 제주 중산간은 암흑으로 변했다. 처음으로 당하는 정전 사태다. 사방이 캄캄하니, 바람 소리는 더욱더 크게만 들려온다. 분신처럼 지니고 다녔던 핸드폰마저도 밥을 굶겼으니 어쩌란 말인가.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오로지 불청객 생각으로 간절하다. 간신히 목숨 줄을 부여잡고 있는 핸드폰의 불빛이 희미하다. 1번을 길게 눌렀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여기 정전이고, 핸드폰도 충전해야 하는데….”

“당황하지 말고 차에 가서 시동 켜요.”

나는 젖은 얼굴로 삼십 분 동안이나 운전석에 앉아있다. 미친 듯 바람이 불어대는 폭풍의 언덕, 남편만큼이나 든든한 존재가 또 어디 있을까. 조석으로 변하는 내 마음이 정전에 멈춘 TV처럼 쉴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고래 심줄처럼 질긴 것을 어찌해야 할까.

#텃밭

집에는 한 평 남짓한 텃밭이 있다. 춘삼월에 이사 와 밭을 일구고 혼자 먹을 만큼만 농작물을 심었다. 물만 잘 주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상추와 치커리, 한 번에 많은 수확의 재미를 맛보는 방울토마토, 노화 방지에 탁월한 가지 그리고 사과보다도 비타민C의 함유량이 많은 청양고추도 심었다. 그러나 이번 태풍에 꺾이고, 쓰러지고, 호박꽃은 벌을 만나지도 못한 채 사망하고 말았다. 봄 내내 나를 도와주던 우렁각시 친구들에게 수육 한 접시와 골뱅이무침으로 텃밭을 일구었는데…. ‘이 망할 놈의 태풍.’ 나도 모르게 욕이 저절로 나온다.

서울 집도 조그마한 텃밭이 있었지만, 어머님이 가꾸던 것이었기에 애틋한 마음이 덜 했다. 섬의 돌밭을 잘 만지고, 보듬어서 내 작은 소망을 실었건만 이번 바람에 꿈은 나뒹굴어지고 말았다. 태풍이 오기 며칠 전, 하루에 한 번 물 주는 것도 귀찮다며 ‘비 좀 오지.’ 종종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며칠 사이에 바뀌는 내 마음을 보니, 제주에서 산다는 것은 멀기만 하다. <수필가 최연실>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갔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생활수필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 2018년 수필과 비평 등단
- 한국 언론인 총 연대 편집기자
- 서울 서부지부 원석문학회 회원
- 제주 백록수필 문학회 회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제주댁 2022-07-08 14:38:48 | 112.***.***.220
잘 읽고 갑니다. 이번 여름은 또 어떤 태풍이 찾아올지..무사히 지나갔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