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실의 문학산책] (6)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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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의 문학산책] (6)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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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려 내기도 한다. 그래야 좀 더 따뜻하고, 성숙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의 풋풋한 삶을 사랑스런 언어로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 <수필가 최연실>

잠시 눈만 감았을 뿐인데 제주 공항에 착륙한다는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잠에서 덜 깬 몸을 추스르며 공항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핸드폰으로 연결된 음악을 듣습니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거짓말, 거짓말, 거짓말.>가수 이적의 노랫말이 나를 울립니다.

“엄마! 몸이 좋아지면 다시 집으로 올 거야, 그때까지 계셔요.” 남동생은 어머니를 달래며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입소한 지 두어 달이 지나도록 어머니는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셨지요. 아들의 말을 믿었던 어머니가 언제부턴가 나를 볼 때마다 ‘집에 언제 가는 거니?’ 하며 간절한 눈빛으로 속내를 드러내곤 했어요.

서울에 올라가서 어머니를 뵙고 올 때마다 동생 집에 가곤 했습니다. 요양원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쯤 떨어진 곳에 동생네가 살고 있습니다. 삼십 평 남짓한 빌라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지요. 오랫동안 동생 내외가 어머니를 모시느라 조카 둘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함과 고마움의 묵직한 두 개의 추가 자리하고 있었지요. 그날도 동생의 집에 들렀습니다.

승강기를 탄 동생의 숨소리가 깊어 보입니다. “누나! 먼저 들어가요. 담배 한 대 피우고 갈게요.” 그리고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동생은 옥상으로 올라갔어요. 나는 동생의 뒤통수에 대고 뭐 좋은 거라고 제발 끊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 마음을 알기에 말을 아꼈습니다. 현관문을 열자 금방 이사 온 집처럼 어수선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어머니의 옷가지와 쓰시던 물건들이 거실 한복판에 켜켜이 쌓여 있더군요. 옷 무더기 가운데 앉아 있는 올케의 손놀림이 분주하게 보였어요. 어머니의 방에 있어야 할 것들이 재활용 봉지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 순간, 내 심장 박동 소리가 빨라지고 있더군요. 오기 전에 귀띔이라도 해 줬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제 서야 꺼질듯하게 한숨 쉬던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언제 내려왔는지 동생이 주방에서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왔습니다. “누나! 커피 들어요.” 몇 번이고 동생은 내게 말했지만, 나는 넋 나간 사람처럼 서 있기만 했어요. 지난주만 해도 어머니가 적응하지 못하니 집으로 다시 모셨으면 하더군요. 나는 그런 동생이 고마워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고 싶었지요. 동생이 건네는 머그잔을 받아 들고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습니다. 다 식어버린 쓰디 쓴 커피는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았지요. 머그잔을 들고 어머니가 계셨던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갔습니다. 아직도 어머니의 온기가 침대에 머무는 듯합니다. 막내딸이 왔다고 웃던 것이 엊그제건만. 그날 내가 사드린 팥죽색 패딩을 입고 방문을 나가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뭐가 그리도 급하다고 정리해야 하는지. 그 순간, 내 두 마음이 서로가 옳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그래, 이해할 수 있어.”

“그래도 이건 아니지, 엄마가 살아계신 데….”

지금 동생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만다면. 우리 남매가 서로의 감정을 이 순간에 드러낸다면. 내 머릿속이 여러 갈래의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무겁더군요. 동생이 넓은 평수로 이사한다고 했을 때 도와주지 못한 게 미안했습니다. 동생에게 다음 이사 때에 꼭 보태겠다고 설레발을 치며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어느새 공항에서 출발한 차가 집으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지요. 아무리 숨을 몰아쉬어도 마음 한구석에 체증처럼 자리 잡고 있는 고통의 추가 오늘따라 왜 이리도 버거운지요. 내가 무엇을 했다고, 오롯이 어머니를 모신 동생에게 섭섭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내 마음이 이리도 미안한데 동생은 더 힘들겠지요. 핸드폰의 단축 번호를 눌렀습니다. 그리고는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라고. 다른 형제들이 비난하는 말을 하면 바람막이가 되어주겠다고 또 동생에게 나는 거짓말을 합니다. <수필가 최연실>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갔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생활수필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 2018년 수필과 비평 등단
- 한국 언론인 총 연대 편집기자
- 서울 서부지부 원석문학회 회원
- 제주 백록수필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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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 2022-05-27 15:04:52 | 106.***.***.186
언제 집에 돌아가는지...어머니의 간절한 눈빛이 그려져 가슴 저리네요...

무심한 세월 2022-05-27 12:36:31 | 110.***.***.252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여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좀더 젊었더라면 최 작가님의 거짓말의 아픔 이면을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