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실의 문학산책] (3) 어머니와 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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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의 문학산책] (3) 어머니와 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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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려 내기도 한다. 그래야 좀 더 따뜻하고, 성숙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의 풋풋한 삶을 사랑스런 언어로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 <수필가 최연실>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군락을 이루고 있을 거로 상상하며 북돌아진 오름에 올랐습니다. 벌써 많은 사람이 다녀갔는지 내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군요. 그 순간 ‘고사리는 아홉 형제다.’라는 말이 생각났어요.

찔레꽃 가시덤불 속에서 꼿꼿이 서 있는 통통한 고사리가 보이네요. 제법 굵직한 것이 아홉 형제 중에 맏형인 것 같군요. 그 옆에 다가가 앉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나가 아닌 둘이네요. 덤불을 헤치고는 고개를 깊숙하게 들이밀었습니다.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고 있노라니 고물고물 올라오는 작은 고사리도 있네요. 마치 그 모습이 두 달 전이나 되었던가요. 설날의 풍경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도란도란 얘기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큰 고사리 하나를 꺾었습니다. 남겨진 고사리가 서른 해 전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어머니처럼 홀로 서 있네요.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리워할 새도 없이 이집 저집 손주들을 돌보느라 바쁘게 사셨지요. 그런 어머니가 구순을 넘기고는 하루가 다르게 거동이 불편하셨지요. 얼마 전,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발을 헛디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한동안은 동생 부부가 어머니를 돌봤지만, 그것도 힘에 부쳤는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쳤어요. 정신이 온전하신 어머니를 어찌 요양원에 보낸다는 말인가요. 그 말을 들은 나조차도 용납하기 어려운데 어머니는 오죽할까요. 형제는 여럿이지만 다들 이유가 있었기에 우선 낮 동안 보살핌 서비스를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미국에 있는 큰 언니를 뺀 사 남매가 돌아가며 어머니를 돌보기로 했지요.

주중에 한 번 서울에 올라가서 어머니의 몸을 씻겨 드리는 게 내가 할 일입니다. 주말마다 올라가는 게 쉬운 것은 아니지만, 좁디좁은 목욕탕에서 어머니를 씻겨드리는 것은 더 힘들었지요. 어머니의 등가죽은 늘어날 때로 늘어져 있었으니 흐르는 땀의 절반은 눈물이었지요. 내가 우는 것을 모른 척하며 수분 빠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머니가 내 얼굴을 닦아 주네요.

“땀 좀 봐라, 엄마가 기운 차리면 안 와도 돼.”

“엄마, 목욕탕이 좁아 힘들어요. 상도동 있던 대중목욕탕 생각나요?”

젖 먹던 힘을 다해 고개만 끄덕이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다섯 살쯤 되었을까요. 한 달에 두 번 언니 둘과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다녔던 때가 생각납니다. 엄마는 딸 셋을 찬찬히 밀어주고 마지막으로 당신의 몸을 닦으시곤 큰언니에게 등을 맡기셨지요. 우리 셋은 서로 엄마 등을 밀겠다며 아웅다웅했고, 나도 그 틈에서 작은 고사리 같은 손을 움켜쥐면서 미는 시늉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빙그레 웃던 어머니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목욕을 마친 어머니가 서툰 꽃단장에 바쁘시네요. 볼에는 새하얀 로션이 하얀 나비가 되어 앉아 있습니다. 내 눈에는 지금도 연지 곤지를 찍은 새색시처럼 어머니가 화사해 보이는데 그런 어머니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요.

지난주에 꺾은 고사리로 조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냄비 바닥에 고사리와 무를 깔고, 손질한 갈치를 얹고, 마지막으로 전복을 올렸지요. 간장에 마늘을 듬뿍 넣고 갖은양념을 더 하니, 냄비 바닥에서는 고사리가 자작하게 조려지고 있네요. 어머니는 뇌출혈로 수술받은 후 후각을 잃었지만, 보글보글 끓는 소리에 방문을 밀고 있네요. 맛난 것을 잡수셔도, 고운 것을 봐도 별 반응이 없던 어머니가 고사리 갈치조림이 맛이 있었나 봅니다. 밥 한 그릇을 뚝딱 드시고는 이 말만 하시더군요. “넌 언제 서울 올 거야. 애들이 다 컸어도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해.” 어머니는 내게 더해주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는 듯. 아직도 내가 어머니 눈에는 다섯 살짜리 작은 아이였습니다. 그새 고단했는지 오수를 즐기고 계시네요.

가시덤불 속에 소리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고사리를 생각합니다. 모여 있는 것이 행복해 보입니다. 가진 것이 부족하면 좀 어떤가요. 그 고사리 덕에 잠깐이나마 입맛이 돌아온 어머니를 생각하며 나도 이제는 어머니의 삶을 닮고 싶습니다. 자식을 사랑으로 보듬고 살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으니까요.

덤불 속에 꼬불꼬불 올라온 고사리들이 같이 있어 행복하고, 함께여서 힘이 된다고 도란도란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수필가 최연실>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갔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생활수필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 2018년 수필과 비평 등단
- 한국 언론인 총 연대 편집기자
- 서울 서부지부 원석문학회 회원
- 제주 백록수필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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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 찡 2022-04-08 17:04:05 | 175.***.***.208
어머니란 존재의 힘과 연민... 글일 읽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쩜 이리도 아플까요. 문득 하던 일 멈추고 잠시 멍하니 하늘을 봅니다.

꼬꼬맘 2022-04-08 13:55:52 | 112.***.***.220
어머니와 고사리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상념 2022-04-09 08:18:47 | 175.***.***.190
홀로 사시는 어머니가 생각나네요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인생 2022-04-09 09:11:12 | 119.***.***.32
어렸을 때 고사리는 참 맛없는 야채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좋아집니다. 익숙해져갈수록 나이는 들고, 역할의 무게가 커질수록 부모는 점점 먼 길 갈 채비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