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 한 숟가락에 군기 바짝 든 풋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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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한 숟가락에 군기 바짝 든 풋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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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28) 어머니밥상에 켜진 촛불

더운 어둠과 시시덕거리며 밤잠을 설치다 찾아오는 아침이면 날이 새기도 전부터 이름 모를 새들이 부지런을 떨어대며 느긋이 늘어지는 게으른 늦잠을 방해한다.

날이 밝아오면서는 이름도 모르는 벌레 소리, 매미소리, 거기다 부지런의 고수인 청소차 아저씨들과 경비아저씨까지 합세해 자명종을 울려대는 통에 결국엔 비적비적 눈도 못 뜨고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일찍 하릴없는 사람이 되어 모처럼 새벽산책에서 만난 옹색한 비포장 길. 이제 겨우 찻길을 낸 듯 작고 조용한 시골마을.

도시 속, 시골이 공존하다...
집을 나와 봐도봐도 비슷비슷한 어느 골목길을 찾아들면 눈에 익은 얼기설기 제주도 특유의 돌담들, 돌담 안에 숨어있는 낮은 초가집 두 어 채, 그 사이에 우뚝 우뚝 커다란 몸집으로 앉은 알록달록한 양옥집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우리네 어머니의 정성. 우영밭.

그 안엔 별의 별것이 다 있다.
향긋한 유(들깨)의 향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풋풋한 부루(상추)대궁이 허름하게 서서 하늘을 향해 키를 키우며 잎사귀를 올린다.

늙지도 않은 늙은 오이(노각)가 젊음을 뽐내며 당당하게 키를 쑥쑥 키우고...
싱싱하고 톡, 쏘는 풋고추가 탱글탱글 매운 기가 시퍼렇게 든 군기로 빳빳이 선 초병마냥 서슬이 퍼렇다... 그 아랜 두둑이 올린 구덩이에서 뻗어 나온 풋풋한 호박잎들이 주인보다 더 주인행세를 하며 온 밭을 헤집어 가면서 얄미운 자세(행세)를 한다.

우영밭 담 돌을 따라 한 줄로 길게 늘어선 가냘픈 조릿대엔 올망졸망 파란 잎사귀 사이로 발갛게 익어가는 큼직한 토마토가 어린 자식의 흔치않은 간식거리로 키워지는가 보다...

알 굵은 가지가 보리밥 짓는 귀퉁이에서 폭 익어 슴슴한 나물로 앉고...
늙은 오이와 군기 바짝 든 풋고추, 향긋한 유잎(깻잎)을 한바구니 넘치게 따다 대충 숟가락으로 툭툭 잘라낸 늙은 오이를 된장과 식초 푼물에 털어 넣고 휘휘 저어 한 사발씩 놓고 앉아 켜켜이 짭조름한 간장에 재워 올린 유잎(깻잎)에 얼얼하게 매운 풋고추 찍어먹을 된장독에서 막 떠낸 구수한 된장 한 종재기(종지)면... 왕후장상의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어머니의 밥상은 먹기도 전부터 배가 그득해졌었다.

그런 조용하고 잔잔한 시골동네에 썩 어울리지만은 않는 높이의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들어서는 길목 입구엔 찻길을 사이에 두고 작은 귤 밭과 그 옆으로는 작지만은 않은 빈 땅이 잡풀이 무성한 채, 몇 년을 놀았다. 그렇게 황량하게 빈둥대던 땅을 작년부터 아파트의 어머니 몇몇 분들이 옛날 우리네 어머니가 집 앞 우영 밭을 일구듯, 감자며 고추에 부루(상추)들하며 심지어는 키 큰 해바라기와 옥수수까지 심어 놓아 하루가 다르게 하늘을 향해 쑥쑥 키를 키우며 오르는 모습에는 새삼스럽게 대견하다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예전 우리밥상은 그렇게 자연스럽고 의심할 여지없는 것들 이었다. 어머니의 정성과 마음이 든 손끝으로 거둬들여지는 그 먹을거리들로 우리는 아무 걱정 없는 밥상을 가득 차려 먹으며 살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는 점점 기력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여전한 늙은 손길이 애달파 눈꼬리 슬쩍, 훔치며 안타까움을 숟가락 수북이 떠먹으며 붉어지던 눈시울을 감추었던 기억들을 가진다.

하지만, 점점 대처(도시)로 나와 살게 되어버린 지금, 우리가 차려내는 밥상은 자연스러울 수만은 없는 것들을 어쩔 수 없이 올려야만 하는 시대를 살아가야만 하는 때까지 와 있다.  우리 밥상위에 쉽게 올리던 푸성귀들을 일일이 뒤적거리며 농약을 친 건가? 하는 의문을 달아야 하고, 몸에 유해한 첨가물이 든 것은 아닌지 눈 부릅뜨고 찾아봐야하고, 이젠 풀을 먹고 크는 소가 동존상잔의 비극으로 저의 형제들의 뼛가루가 든 사료를 먹고 큰 소인지, 아닌지를 소비자가 알아서 구분해 밥상을 차려야 하게 되어버렸다.

요즘은 무엇을 먹기가 두려워진다. ‘유기농재배’가 우리 먹을거리의 상품적 가치로서 크게 인식되어간다는 것이 사실은 ‘유기농재배’의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유해상품이 더욱 많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되는 현실에 허탈해지기도 한다.

날이 더워 나들이를 거의 작파하고 집안에 갇혀 지내면서 몇 달째 계속되고 있는 ‘촛불문화제’를 와이브로로 생중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 많은 느낌과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로는 살수차에 휩쓸리는 사람에 가슴이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문화제가 연일 되고 있는 지역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을 이들의 가벼워지고 있을 주머니에 안타까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눈에 익은 전동휠체어 두 대가 나란히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 ‘동등한 권리를 달라!’ 머리끈 동여매고 비장하게 외치는 것보다 우리네 일상 속에서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논의하며 시정을 요구하며 걷고 있는 그들과 함께 나란히 굴러가고 있던 그 전동휠체어 두 대는 평범한 중고등학생과 소수의 대중에 의해 시작된 ‘촛불문화제’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데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도 된다.

‘촛불문화제’
그것은 내 밥그릇, 내 아이, 내 부모만을 지키기 위한 이기주의에서 시작된 욕구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하는 자존감의 시작이다. 그 자존감은 누가 대신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만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국민의 자존감은 나라를 대표하는 막중한 책임을 어깨에 진 사람들이 국가간 외교협의의 자리에서 위축되지 않는 당당함을 보일 때 국민은 그들을 신뢰하고 전폭적인 지지의 힘을 더해준다.

오늘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언제쯤이면 온 국민이 안타깝게 외치며 밝히고 있는 이 뜨거운 ‘촛불’의 의미를 그들이 받아 안아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는 ‘촛불심지’를 내리는 날이 오게 될까... 여전히 오늘도 인터넷으로 ‘촛불문화제’를 지켜보는 내 심장엔 하루빨리 촛불을 끌 수 있게 해달라는 기원을 담은 또 다른 의미의 촛불을 밝혀본다.
 

강윤미씨 그녀는...
 
   
▲ 강윤미 객원필진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하지만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훈훈하게 해 줍니다.

그 의 나이, 이제 마흔이 갓 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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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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