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일상이야기] (3)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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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일상이야기] (3)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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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 전에 모 방송국 라디오에 연결된 적이 있다. 그것도 제주 자체 프로그램이 아닌 전국적으로 인기 있는 오후 퀴즈 프로그램이었다.

유선전화로 정답을 맞추면 된다. 예선전을 거쳐 상대방과 토너먼트 형식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진행자는 두 명이다. 남자는 인기 있는 가수였고, 여자는 아나운서였다.

매일 듣다가 ‘저 정도면 최종 우승까지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무작정 도전했다. 막상 전화 연결되고, 진행자의 목소리가 유선전화기에서 들리자, 갑자기 긴장되고 떨리는 내 목소리가 라디오 전파를 탔다. 진행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된 마음을 풀기도 했다.

예선전 문제라 세 문제 중에 두 번만 맞추면 끝난다. 항상 정답을 말할 때에는 구호를 외쳐야 한다. 여자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로 문제가 시작되었다.

청취자 입장에서 편안하게 들었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술술 나오더니, 내가 직접 참여해 보니 머릿속에서는 정답이 맴도는데 입 밖으로 얼른 나오지 않는 것이다.

문제들은 일반 상식문제들도 가끔 나오지만 우리 주변에서 알아야하는 것들을 모아서 퀴즈 형식으로 출제한다고 했다.

예선 전 마지막 문제였다. 구호를 먼저 외치고 정답을 말해야 되는데, 긴장하다 보니 구호를 외치지 않고 정답부터 말해 버렸다. 그래서 기회가 다시 상대방으로 넘어가 상대방이 어부지리로 정답 맞추는 바람에 동점 상황에서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정말 아쉬웠다. 내가 다 알고 있는 문제들이었는데….

라디오뿐만 아니라 TV에서 방송되는 퀴즈 프로그램은 빼놓지 않고 즐겨 보는 편이다. 보면서 출연자의 입장에서 문제도 같이 풀게 된다.

어떤 때는 출연자가 정답을 맞히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 옆에 있으면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도 여러 번 있었다.

요즘에는 띄어쓰기, 정서법, 어휘와 관련된 문제들도 많이 출제되고 있다 보니 더 유심히 본다. 열 문제 중에 네다섯 문제 정도는 맞추는 편이다. 인터넷으로 방송국 사이트에 접속해서 다시 한 번 풀어보기도 한다.

한번은 조카들하고 같이 보고 있는데, 결승전 문제가 다행히 내가 알고 있는 문제들이 출제되어 전부 맞췄다. “와, 대단한 삼촌이네.”하며 조카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대고 기분이 좋았다.

소포가 왔다. 상자를 열어보니 시계였다.

며칠 전이었다. 책장 문을 열어보니 방송국 로고는 벗겨지지 않고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러나 낡은 초침과 분침은 이미 떨어져 나가 형태만 남아 있는 작은 벽걸이형 시계다.

이제는 그 자리에 새로운 시계가 걸려 있다. 그때 그 경품은 아니지만 시계를 볼 때 마다 퀴즈문제를 풀던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곤 했다. <수필가 이성복>

이성복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이성복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이성복 수필가 그는...]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지체장애 2급)으로,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연재를 통해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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