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고 잡초에 덮이고...일제 상흔 '제주 동굴진지' 훼손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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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고 잡초에 덮이고...일제 상흔 '제주 동굴진지' 훼손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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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가림막 등 시설물 전무...시민들 "흉물처럼 보여"
448개중 73개만 문화재 등록...375개는 사실상 방치
ⓒ헤드라인제주
지난 20일 오후 방문한 제주시 화북1동 별도봉에 있는 일제동굴진지. 이곳 진지갱도 상당수가 숲속 깊은 곳에 있었는데, 이정표, 안내판, 가림막 등 최소한의 시설물이 없는 것은 물론,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 사이에 초라하게 방치돼 있었다. ⓒ헤드라인제주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최후 방어를 위해 전략적 요새로 선택한 제주도. 이들은 섬 전체를 군사시설로 만들기 위해 해안가와 중산간 오름을 따라 수백 개의 동굴진지를 구축했다.

그런데 일제의 만행과 민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동굴진지 상당수가 현재 마땅한 보전대책 없이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굴진지 448개 중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는 것은 겨우 73개뿐으로, 이외 375개는 별다른 보전방안 없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헤드라인제주> 취재진은 지난 20일과 21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은 제주시 민오름, 별도봉, 도두봉 3곳의 일제동굴진지를 살펴봤는데, 대부분의 동굴들이 흘러내린 토사로 인해 입구가 매몰되거나 원형이 크게 훼손돼 있었다. 

또 최소한의 안내판이나 이정표도 없어 관리주체도 불분명했으며,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 더미와 관리되지 않은 잡풀들로 인해 그 모습도 매우 초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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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오라2동 민오름 정상에 있는 일제동굴진지. 흘러내린 토사로 입구 전체가 막혀 있는 모습.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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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전체가 막힌 민오름 동굴진지. ⓒ헤드라인제주

20일 오전 방문한 제주시 오라2동 소재 민오름에는 정상부쯤에 동굴진지가 하나 있었는데, 쏟아진 토사로 인해 원형 훼손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가까이서 살펴봐도 동굴진지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으며, 그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진지갱도의 용도로 구축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굴진지 바로 옆에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고, 체력단련시설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지나다녔음에도 그 누구도 관심갖고 주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성하게 자라있는 풀들과, 잡다한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모습, 그리고 이정표나 안내판 하나 없는 모습이 잘 가꿔진 주변 시설과 대조적으로 비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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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봉 깊은 곳에 위치한 일제동굴진지. 무성하게 자란 풀들 사이로 입구가 작게 보인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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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봉 일제동굴진지.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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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봉 일제동굴진지가 풀들에 가려져 있는 모습.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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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내부 모습. ⓒ헤드라인제주

이날 오후 살펴본 제주시 화북1동 별도봉의 모습은 더욱 심각했다.

별도봉에는 사라봉에서 알오름을 거쳐 이어지는 올레길 18코스가 조성돼 있는데, 드넓은 하늘과 웅장한 제주항이 한눈에 보여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곤 한다.

그런데 별도봉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이곳에 존재하는 일제동굴진지의 신세는 처량하기만 했다.

한국동굴안전연구소와 제주도동굴연구소가 지난해 6월 발간한 '제주도일본군 동굴진지(요새) 현황조사 및 증언채록 보고서'에 따르면, 별도봉에는 전진거점 용도로 구축된 동굴진지가 11개 있다.

그중 몇몇 동굴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속 아주 깊숙한 곳에 위치했는데, 모두 잡풀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쏟아진 토사와 썩어 내려앉은 나무들로 함몰될 위험이 매우 높아 보였다.

동굴 내부에는 오래전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있기도 했는데, 가림막 등 최소한의 시설물도 설치되지 않아 누군가 인위적으로 이곳을 훼손한다고 해도 모를 일이었다.

또 천장에서 떨어진 바위들이 동굴 내부에 즐비했다. 동굴의 보전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정비 및 시설물 설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단 하나의 이정표나 안내문도 설치되지 않아 시민들이 모르고 이곳으로 들어왔다가 길을 잃을 위험이 대단히 높아 보였고, 동굴들을 봤을 때도 어떤 곳인지 이해할 수도 없을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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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도두1동 도두봉의 동굴진지. 가림막은 있지만, 이정표나 안내문이 설치돼 있지 않다. 또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동굴을 가리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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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내부 모습. ⓒ헤드라인제주

21일 오전 방문한 제주시 도두1동 소재 도두봉의 동굴진지들은 가림막으로 입구가 봉쇄되어 있긴 했다.

이곳의 동굴진지들은 해안가로 이어지는 산책로인 봉우리 동남사면의 하단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일부는 지반 침하 등 낙석 위험이 있어 동굴안 진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까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정비나 관리는 안 되는 것으로 보였다. 가림막 너머 동굴 내부를 살펴보니 낙엽이 오랜 시간 쌓여있었고 지반 침하로 붕괴된 바위들이 곳곳에 널려있었다.

또 어떤 동굴진지는 이정표 없이 수풀에 둘러싸인 채로 가림막만 덩그러니 세워진 채로 방치돼 있었다.

별도봉에서 산책 중이던 마을주민 ㄱ씨는 "이곳에 진지동굴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아마 행정당국조차도 모를 거라 생각하는데, 민족의 아픈 역사를 이렇게 흉물처럼 보이도록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 부끄럽고 속상하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깜짝 놀랄 수도 있다. 안에 과자봉지, 술병 등이 있었던 것도 봤다"며 "후대에 부끄럽지 않게 하루빨리 보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두봉을 산책 중이던 마을주민 ㄴ씨 역시 "자연적인 현상으로 훼손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관리할 수 있는 것을 안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고 질타했다.

이어 "주민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오는 곳인데 그분들에게 제주가 이런 아픔이 있다는 것을 잘 알릴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며 "최소한의 정비는 주기적으로 해서 겉으로 봤을 때라도 상황을 잘 알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지금 모습은 처량하기만 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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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봉 일제동굴진지. ⓒ헤드라인제주

태평양전쟁 당시 패망 직전 일본은 최후 방어라인으로 제주도를 선택하고 섬 전체를 군사전략 시설로 요새화했다. 

그 과정에서 해안가와 중산간 오름을 따라 개미집 같은 진지갱도를 수백 개 구축했는데, 그 수는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448개(제주시 75개 지역 278개, 서귀포 45개 지역 170개)다.

이들 동굴진지에는 강제징용, 수탈 등과 같은 제국주의의 잔상과 섬사람들의 상흔이 남아있어 그 보존 가치가 매우 중요한데, 현실은 겨우 73개만 문화재로 등록돼 관리되고 있다.

이외 375개는 사실상 무방비 속에서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제주도 관계자는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나, 단순히 시설물을 설치하는 수준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들이 내재해 있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안내판이나 이정표 하나를 설치하는 것도 해당 구역 소유주와의 논의가 필요한 상황인데, 잘못했다간 소송까지 갈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라면서 "최근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지금까지 설치해온 인위적인 시설물들이 잘못된 보전 방식일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자연적인 현상으로 훼손되는 것, 동굴진지가 단단한 대리석 등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 등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대책 마련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백 개의 동굴진지를 전부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인력과 예산에 한계가 있다"면서 "급한 곳을 먼저 모니터링 하고 정비사업을 진행하고는 있으나 이 역시도 힘이 부치는 상황"이라고 했다.

해당 관계자는 "지역 사회와 유관기관들과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데 이 부분도 원활하지가 않다"며 "훼손되고 있는 동굴진지가 우리로서도 많이 안타깝지만 지금 당장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더 잘못된 방식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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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좋아요 2022-02-21 16:22:57 | 211.***.***.6
일본 놈들이 전쟁하려고 만들어 놓은 것을 왜 보존하고 문화재관리를 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