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22년 전 제주 변호사 살인사건, 피고인 살인혐의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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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년 전 제주 변호사 살인사건, 피고인 살인혐의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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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공소시효는 유효...살인 의심은 드나, 증명되지 않아"
"검사 추론과도 들어맞지 않아"...피디 협박혐의는 '유죄'

22년 전 제주에서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과 관련해 살인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7일 오후 2시 살인 및 협박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56)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방송국 피디를 협박한 부분(협박)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조직폭력배였던 김씨는 지난 1999년 8월쯤부터 누군가로부터 '골치 아픈 문제가 있어 이승용 변호사를 손 좀 봐줘야 겠다'는 말을 듣고 공범 손씨와 범행을 공모, 그 해 11월 5일 새벽 3시 15분쯤 제주시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노상에서 흉기로 이 변호사의 상반신 등에 상해를 입혀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선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에 대해 살인혐의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러나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윤곽이 잡힌 것으로 보였던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그림은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하게 됐다.

◇공소시효는 유효..."수사 피하려 국외 체류"

우선 쟁점이 됐던 공소시효 부분에 대해 법원은 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것으로 봤다.

법원은 김씨가 범행 이후 해외에 체류한 것은 이 사건과 관련해 사건이 미제로 종결될 때 까지 수사를 피하기 위해 국외에 체류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방송국 피디와 전화 통화에서 '(자신이 살인을 지시한)손씨가 공소시효 만류 2개월을 앞두고 자살을 했다'고 이야기 했다"며 "2013년 11월까지 이 사건 공소시효 만류에 대해 여러 차례 언론 보도가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김씨가 사건이 미제로 종결될 때까지 국외에 체류했다고 보여진다"고 밝혔다.

이어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시효는 2015년 12월4일로 연기됐고, 그 사이 형사소송법 신설개정으로 공소시효가 완성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배척한다"고 밝혔다.

원래대로라면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2014년 11월4일 만료되나, 김씨는 지난 2014년 3월부터 13개월간 해외에 체류한 상태였다.

법원이 김씨의 해외 체류를 '범행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공소시효가 연장됐고, 2015년 7월31일 시행된 일명 ‘태완이법(살인죄의 공소시효 폐지)’ 적용 대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검사 주장은 상당부분 추론...살인 혐의 증명 어렵다"

그러나 법원은 김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의심'만 있을 뿐 '증명'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선 "조사과정에서의 피고인 진술을 보면 김씨는 방송국 피디와의 통화에서는 '유탁파 두목으로부터 손 좀 봐줘라는 지시를 받고 실행에 옮겼는데 일이 잘못돼서 죽이게 됐다'고 진술했다"며 "이후 경찰 조사 단계에서 진술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이어 "검사는 방송국 피디와 통화한 내용이 신빙성이 있지만, '상해를 목적으로 범행을 했으나 살인은 목적이 아니었다'는 부분은 범행을 축소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며 "당시 통화 내용을 보면, 당시 피해자를 찌른 부위와 범행도구, 당시 보도되지 못했거나 수사기관이 파악하지 못한 부분도 있는 점 등 특정한 목적이나 강압 없이 자율적으로 말한 내용으로 증거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 "미행 과정, 실행과정에 대한 진술에서 '우리'라는 표현 많이 사용됐고, 당시 상황을 현장감있게 구체적으로 묘사했는데, 이에 비춰보면 피고인이 현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피고인 스스로 범행도구를 묘사하는 등 이 사건 범행에 깊숙이 관여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몸싸움이 있기 전, 주범이 피해자의 목에 칼날을 들이대면서 제압을 시도했다가 피해자가 저항해 몸싸움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주범이 처음에는 피해자를 제압만 하려 했다는 점에 가깝지, 곧바로 공격을 개시했다는 검사의 추론과는 들어맞지 않고, 오히려 피고인의 입장과 맞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검찰 출신에 변호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며 "피고인이 위험을 감수해가면서까지 피해자에 대한 살해 용의가 있어야 하는데, 범행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의심할만한 정황 뿐"이라며 "채택된 증거를 모두 살펴보더라도 피고인이 그 당시 나이트클럽을 운영했다는 것 밖에 없고, 성명불상자의 지시를 받았다는 주장과 피해자를 살해하려 했다는 주장 등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방송국 피디와의 통화 내용은, 검사의 주장과 같이 세상에 없는 손모씨를 범인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의 책임은 떠넘기려고 하는 것으로 의심은 된다"면서도 "공동정범으로 기소했으나, 검사가 주장한 상당 부분은 단지 가능성에 의한 추론이고, 일부 인정되는 사정만으로는 주범으로 파악할 수 없다.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고 기능적 행위를 충족하는 증거가 없어 이 부분(살인)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어렵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씨가 방송국 피디에 대해 문자메시지를 통해 세 차례 협박성 내용을 보낸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도 범행을 인정했고, 관련 증거도 유죄가 인정된다"며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27일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의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씨(55)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br>
27일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의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씨(55)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검찰 "피고인이 인터뷰 자청해 자백한 것...형사처벌 노력"

검찰은 김씨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것에 대해 1심 판결문을 검토한 후 항소심을 통해 범죄 사실을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제주지검은 1심 선고 직후 입장문을 통해 "피고인이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범행을 자백하는 임의성 있는 진술을 했다"며 "그 밖에 여러 관련자들의 증언과 물증 등 제반 증거와 법리에 비춰 범죄사실이 충분히 입증되는 것으로 판단해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1심 판결문 전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항소심을 통해 범죄사실을 충분히 입증하겠다"며 "범죄에 상응하는 형사처벌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편, 이용승 변호사(당시 44세)는 지난 1999년 11월 5일 오전 6시 48분께 제주시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도로에 주차된 차량 안에서 흉기에 수 차례 찔려 숨진채 발견됐다.

이 변호사는 서울대를 졸업한 후 서울지검, 부산지검 등에서 검사 생활을 했고 1992년 고향인 제주로 내려와 변호사로 일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당시 지역사회에서 이 사건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사건을 둘러싼 설도 무성했다. 

그러나 대대적 수사인력 투입에도 경찰 수사는 결정적 단서나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더욱이 지난 2014년 11월로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장기 미제사건으로 분류됐다.  

그러다 지난해 6월 27일 방영된 한 방송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살인교사를 했다는 결정적 제보 증언이 나오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방송에서 "살인을 지시했다"고 주장한 사람은 바로 이번에 살인혐의로 기소된 김씨였다.

김씨는 방송에서 살인교사와 관련해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폭력조직 두목의 지시를 받아 범행을 계획했고, 같은 조직원 중 한 명(손씨)에게 시켜 이 변호사를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방송이 나간 후 경찰은 곧바로 재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지난해 4월 인터폴에 김씨에 대한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이어 지난해 6월 23일 김씨가 캄보디아에서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국내로 송환됐다.

당초 경찰 수사단계에서는 '살인교사' 혐의가 적용됐으나, 검찰은 '살인죄'의 공모공동정범 법리를 적용해 '살인' 혐의로 김씨를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이번 1심 재판에서 직접적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면서,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항소심 판단이 주목된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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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이어도 2022-02-21 15:49:56 | 223.***.***.141
이렇게도 법망을 피해가는구나!! 개탄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