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오늘]<11>주전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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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11>주전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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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집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니 너무 개운하다. 일어나 대충 씻고 나니 배가 출출하다. 부엌에 나가 뭐 먹을 게 없나 하고 찾는데 식탁 위에 검은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 이거 뭐예요? 먹어도 되는 거예요?”
“어, 그거 어제 오일장 갔다가 조카들이 하도 재촉해서 사온 거야 먹어도 된다.”

접시에 적당량을 넣고 내방으로 와서 컴퓨터를 하면서 먹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뻥튀기 먹었던 기억이 아득하다.

요즘은 대형마트에 가면 없는 것이 없고 돈만 있으면 계절에 상관없이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살 수 있다.

주전부리가 흔치 않았던 나의 유년시절엔 고작해야 동네 구멍가게 정도였지 마트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에 뻥튀기 장수나 엿장수가 동네 아이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뻥이요 ~ 뻥튀기” 목청 좋은 아저씨의 목소리가 골목 저편에서부터 들려오면 동네 친구들은 그 아저씨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어떤 친구는 아저씨가 뻥튀기를 조금 나눠주면 덥석 받아들고는 어디론가 뛰어 들어가 혼자서 다 먹을 때까지 나오지 않고, 다 먹고서야 나와 다른 친구들 것을 빼앗아 먹기도 하였다.

한번은 우리 동네에 뻥튀기 아저씨가 와서 뻥튀기가 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았는데, 쌀, 옥수수, 콩 등 재료들이 담겨 있는 우유 깡통들이 여러 개 놓여 있고, 그 앞에는 검은 무쇠로 만든 커다란 절구통 같은 기계 안으로 그 재료들을 하나씩 넣고 불을 쬐며 돌리기 시작했다.

다 튀겨질 때쯤 아저씨는 ‘뻥이요. 뻥~’하고 우리들이 놀라지 않도록 일부러 더 큰 소리를 내어지르셨다. 아저씨는 능숙한 솜씨로 죽부인처럼 생긴 크고 둥근 철망을 그 기계에다 씌우고 뾰족한 쇠꼬챙이를 끼워 앞으로 잡아당겼다. 그러면 ‘펑’하는 소리와 함께 희뿌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그 조그맣던 알갱이들이 어느새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있는 게 아닌가. 철망 한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니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마치 뻥튀기 아저씨가 마술사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어떤 친구들은 철망 밖으로 튕겨져 나온 것을 서로 먼저 먹으려고 다투기도 하였다. 이제는 이런 풍경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가끔 오일장이나 재래시장을 가야 옛날 방식으로 뻥튀기를 파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요즘은 가끔 장터뿐만 아니라 인근 주택가 공터나 주차장 같은 곳에 조그마한 트럭을 개조해서 뻥튀기를 파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예전에는 무거운 무쇠 통을 직접 들고 다녔다고 하는데, 지금은 가스통을 장착한 차량으로 많이 현대화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먹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하려는 사람도 없어서 기계를 헐값에 처분하고 그만 뒀다는 뻥튀기 장수의 신문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이렇듯 요즘에는 먹을 것들이 풍부해서 이런 따위들을 먹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동생과 같이 할머니 댁에 가면 뻥튀기랑 기름과자라는 것을 동생과 서로 많이 먹겠다고 다투며 열손가락에 끼워먹고, 금방 튀겨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것을 입김으로 불어 식히며 먹었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때를 생각하다 보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며칠 전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아는 형님이랑 몇몇이서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식당 아주머니께서 뭔가를 들고 오시더니 “이거 맛 좀 봅써?”하며 우리 식탁에 놓으셨다.

“이거 뭐예요?”하며 보았더니 어릴 적 먹었던 ‘쉰다리’ 라는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컵에 따라 먹었는데, 새콤달콤한 맛이 어릴 적 먹었던 맛과 똑 같았다. 어릴 적에는 정말 많이 먹었었는데, 그때는 먹을 것이 귀할 때라 쉰다리를 내오면 조금이라도 많이 먹겠다고 달려들어 먹었다가 누룩을 발효시킨 음식이라 알딸딸하게 취하기도 하고, 하루 종일 배탈이 나 고생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때의 ‘쉰다리’가 요즘은 과학적으로 발효하여 만든 ‘요플레’라는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지만 예전에 먹었던 쉰다리 맛과는 영 다르다.

조금씩 먹다 보니 어느새 한 접시 다 비웠다. 다음 오일장엔 나도 따라 오일장에나 가야지...<헤드라인제주>

이성복 님은...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이성복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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