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걷고 걷다 '제주'까지 온 유쾌한 청년들, 이들이 그리는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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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길' 걷고 걷다 '제주'까지 온 유쾌한 청년들, 이들이 그리는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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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멍'팀, 걸어서 인천~제주까지..."길 위에서 나와 세상 알아가"
제주 길 걷다 강정마을.제2공항 등 '평화' 활동 주목
바다 건너 제주-오키나와-타이완 평화 띠 잇는 '공평해 프로젝트' 준비
ⓒ헤드라인제주
나와 세상을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마주하기 위해 낯선 길 위에 올라 한발 한발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길멍'이라고 부른다. <헤드라인제주> 취재진은 지난28일 오후 서귀포 월평포구 바다 인근에서 길멍 멤버 중 수산(왼쪽)과 자리타(오른쪽)를 만났다. 이들이 끊임없이 길 위를 걷는 이유, 제주까지 오게 된 사연, 그리고 이들이 꿈꾸는 삶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헤드라인제주

우리는 매일 정해진 길 위에 오른다. 직장과 학교, 집을 오가고 계획적인 삶, 체계적인 미래를 그린다. 유례없는 전염병이 세상을 덮쳤고 사람들은 더욱 모험보다 안정을, 낯선 길보다 익숙한 길을 걷는다.

나와 세상을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마주하기 위해 낯선 길 위에 올라 한발 한발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길'에서 '멍'때린다는 의미에서 이들은 스스로를 '길멍'이라고 부른다. 미래보단 현재, 안락한 의식주보단 함께 걷는 동료에 집중하고 안정보단 모험을 통해 삶을 이해한다. 나이와 거주지, 직업 등은 서로 묻지 않는다. 이름도 가명을 쓰곤 한다.

'길멍'은 지난해 6월 인천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남쪽을 향해 두 달을 걸었고 8월 제주까지 오게 됐다. 일 년이 더 지난 지금도 이들은 이곳 저곳을 걷고 있다.

"향후 바다를 건너 타국에서도 걸을 계획인 걸요"

정말인지 모두 항해사 자격증을 땄고 버려진 배를 직접 수리하기도 했다. 이젠 길 위를 벗어나 바다를 건널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느리지만 한발 한발 나아가길 멈추지 않는 이들은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헤드라인제주> 취재진은 지난 28일 오후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서귀포 월평포구 바다에서 현재 제주에 남아있는 길멍 멤버 자리타(26)와 수산(23), 늘보(29)를 만나 그들이 끊임없이 길 위를 걷는 이유, 제주까지 오게 된 사연, 그리고 이들이 꿈꾸는 삶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해맑게 웃으면서도 가볍지 않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와 세상을, 이 관계망을 천천히, 자연스럽게 알아가기 위해 걷기 시작했죠. 계획이 없기에 어디든 갈 수 있었죠. 인천에서부터 시작해 곳곳을 걷다 제주까지 오게 됐고 이 섬에서 '평화'에 주목하게 됐어요. 직접 수리한 배를 몰고 바다를 건너 타국에서도 평화를 외칠 계획이에요. 우리가 걸었던,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들과 흔적들이 평화의 띠를 이루길 바라요"

◇나와 세상을 알아가고자 했던 청년들, '낯선 길' 위에 오르다

지난해 5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에 청년 20명이 모였다. 나이와 거주지, 직업은 서로 묻지 않았다. 집도 전기도 물도 없는 외딴 섬에서 이들이 실험한 건 '제로베이스'에서의 삶. 코로나19, 기후위기 등으로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주거공동체, 자급자족, 그리고 느림을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제안하고 이를 실험했다.

"불멍캠프가 해산할 때였죠. 한 친구가 대구에서 볼음도까지 걸어왔었는데 몇몇은 그 친구를 따라 걸어가겠다고 했어요. 그것이 계기가 됐던가요, 그때부터 주기적으로 모여 여기저기 걸었어요. 불멍캠프가 '길멍캠프'로 이어졌고, 불멍캠프에서 고심하던 것을 길 위에서 논의하게 됐죠"

지난해 6월부터 본격적인 모험 길에 올랐다. 구체적인 행선지는 정하지 않았다. 발에 닿는 대로 걸어보자고 했다. 자신들을 '길멍'이라고 불렀다.

ⓒ헤드라인제주
길을 걷고 있는 자리타와 길멍 멤버들. 자리타가 환하게 웃으며 길멍이라고 쓰인 깃발을 흔들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헤드라인제주
길을 걷고 있는 길멍 멤버들. ⓒ헤드라인제주
제주에 도착한 길멍 멤버들이 환하게 웃으며  ⓒ헤드라인제주
지난해 7월 제주에 도착한 길멍 멤버들이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이들은 "누구는 도중 다른 길을 걷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합류하기도 했다. 길을 함께 걷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고, 예측하지 못한 것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탐색하면서 삶을 배워가고자 했다"며 "우리에게는 바깥의 무언가를 만나고 싶고 자기 정체성을 실험하거나 소위 '길을 잃고 싶은' 그런 욕구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의식주, 타인의 시선, 시간과 장소에 연연하지 않았다. 길 위에서의 우연적인 만남에 진심을 다했다. 낯선 것 속에서 '나'를 알아갔고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를 배워갔다. 속도, 안정, 관습으로부터 잊힌 소중한 것들이 많았다고 이들은 말했다.

이들은 "잘 곳도 먹을 것도 정해진 것도 없었지만 매일 필요한 모든 것이 구해졌다. 순간 순간이 벅차고 풍요로웠다"며 "물 한 모금, 산딸기 한 알, 쌀 한 공기, 나무, 그늘 등 모든 하나하나에 감사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날 살리고 있다고 느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촘촘히 연결됐다"며 "돈이나 노동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이어지는 관계가 생겼다"고 했다.

'길멍'에게 유일한 목표 또는 방향이라면 그것은 '남쪽'. 걷고 걷다 보니 어느새 전라남도 고흥까지 도착했다. 더 이상 걸을 곳이 없자 이들은 어느 한 곳을 응시했다. 지평선 너머에 있는 제주였다.

◇인천에서 제주까지 걸어온 길멍, 섬에서 '평화의 길' 주목하게 된 사연

제주에 가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이들은 버스킹으로 하루 만에 배값을 벌었다. 함께 걷던 7명은 다음날 제주로 떠났다.

제주에서도 남쪽으로 걸었다. 걸을수록 제주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과 여러 면에서 결이 비슷했다고 말했다. '걷기'는 '느림'이었고 천천히 들여다보는 제주의 자연은 풍요로운 순간들로 가득했다. 

"길 위에서 만난 제주사람들도 모두 좋았어요. 종종 불가피하게 히치하이킹도 했는데, 그때마다 들려주셨던 제주만의 사연, 아픔, 아름다움들이 육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어요"

남쪽으로 걷다 꽤나 오래 머물게 된 곳이 있다. 바로 서귀포 강정마을. 멤버 중 한명이 건너 건너 아는 지인이 있다고 잠깐만 신세를 지자는 것이 3일이 되고 일주일이 되고 몇 달이 훌쩍 지난 것. 길멍캠프는 얼떨결에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7명 중 일부는 다시 낯선 길 위로 나서겠다고 흩어졌지만 3명은 끝내 이곳에 남았다. 이곳을 떠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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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에서 평화공연을 하고 있는 주민들과 길멍 멤버들. 이들은 "길 위를 걸을 때면 평화로움을 느꼈고 앞으로도 평화 속에서 살고 싶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전쟁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며 매일 평화를 꿈꾸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척 감명 깊었고 연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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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구럼비 발파 추모행사 당시 해군기지 앞에서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자리타. ⓒ헤드라인제주

이들은 "길 위를 걸을 때면 평화로움을 느꼈고 앞으로도 평화 속에서 살고 싶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전쟁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며 매일 평화를 꿈꾸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척 감명 깊었고 연대하고 싶었다"며 "이 사람들이 사랑하는 강정천, 냇길이소, 멧부리, 강정바당, 구럼비 일대를 우리도 매일 따라 걸었고 결국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정을 구심점으로 삼으면서 제주 제2공항 등 '평화'가 필요한 곳을 향해 길 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평화의 섬 제주에서 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공동체의 와해, 지역민들 간 갈등을 느꼈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처음으로 계획이란 걸 세우게 됐는데, 바로 '공평해 프로젝트'.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오키나와와 타이완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평화'가 필요한 '섬'들의 연대를 위해 걷기로 한거죠. 길 위에 우리의 발자국이 평화의 띠를 이룰 거예요. 시작은 이곳 제주가 될 겁니다"

◇길 위를 벗어나 바다로...제주-오키나와-타이완 평화연대 '공평해 프로젝트'

강정마을의 '개척자들' 팀은 '공평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전초기지 이전에 평화와 자유의 섬이기도 한 제주, 오키나와, 타이완를 잇는, 연대를 위한 활동이다. 배를 직접 몰아 바다를 건너 오키나와와 타이완에서 평화를 외치겠다는 계획인데, 길멍팀이 최근 이에 합세했다.

힘을 모아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배 수리를 시작했다. 올해 3월에는 항해자격증도 땄다. 이후 수시로 바다에 나가 항해 테스트를 하고 있다. 우선 세운 계획은 2023년 출항이다. 이에 대해 이들은 웃으며 "그냥 논다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활동을 한다'고 해버리면 이름이, 일상이, 멤버가, 약속이 고정되는 느낌이다. 우리가 활동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저 불멍, 물멍, 길멍, 숲멍하면서 바다를, 마을을, 제주를, 서로를, 자신을 알아간 것"이라며 "항해하는 배는 그 흐름에서 만난 또다른 타자였고 느린 걷기와 열린 함께하기의 연장선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평화활동 역시 길 위에서 마주하게 된 순간"이라며 "앞으로 어떤 일이 찾아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강정을 구심점으로 삼아 평화를 말하고 행동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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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멍 멤버들과 강정마을 주민들이 '공평해 프로젝트' 배를 들어올리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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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수리하고 있는 길멍 멤버들과 개척자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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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는 자리타.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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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늘보(왼쪽)와 수산(오른쪽)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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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테스트를 하고 있는 길멍 멤버들과 강정마을 개척자들. ⓒ헤드라인제주

두 발로 길 위를 걷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듯, 즐거운 마음으로 평화를 노래하고 연대하는 것이 이들에게 무겁고 특별한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공평해 프로젝트가 보다 구체화되기 전까지는 강정에 머물 계획이라고 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제주의 아름다운 길과 평화의 순간들을 마주하면서 더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행복을 공유하고 연결할 거라고 말했다.

이들은 "제주는 오래전부터 '연결망'이 중요했던 곳이 아닌가. 왜곡된 부분도 일부 있겠지만 삼촌들 말씀 들어보면 예부터 물고기를 잡으면 노약자가 있는 집에 먼저 나누어줬다고 했다"면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사는,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 의식, 연결망이 강한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또 똥을 누면 돼지에게 가고 그것이 다시 거름이 돼 밭의 식물에게 가고 그렇게 순환하고 연결되고. 제주의 자연이, 제주 자체가 끈끈하게 연결돼 있더라"면서 "정말 직접 경험해보니 제주에서는 연결되는 감각들이 어느 곳보다 참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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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멍 멤버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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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인제주>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수산과 자리타. 자리타가 수산의 팔에 기대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이들은 또 길멍 자체가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지길 반복하는 물 같은 성격의 공동체였기에 앞으로도 자신들은 길멍일 수도, 길멍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미 길멍은 여기저기로 퍼져나갔다. 한두 달 전에는 제주에 있다 떠난 친구들이 불쑥 지리산에 모여 또 그쪽에서 걷기를 이어가기도 했다"며 "지리산이 아니더라도 이곳 저곳에서 재미난 실험을 꾸리는 친구들이 많다. 거창하게 말하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작당하는 곳들이랄까. 길멍을 통해 이어진 그런 '장'들과도 접점을 놓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이자 이방인, 동시에 제주에서 삶을 꾸리는 사람이자 앞으로도 길 위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삶을 꿈꾸는 자로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떻게 하면 길 위에서 여러 삶들이 피어나며 공존할 수 있을까? 그 삶들에는 제주에 살아가는 비인간 존재들도 포함되고. 이 질문을 길든 짧든 제주에 머물다 가는 누구나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더 좋겠죠. 같이 멍도 때리면서. 혹시 아나요, 우연히 길을 걷다 반짝이는 답을 찾을지도"<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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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비한 꼴통새끼들! 2021-12-01 14:00:35 | 1.***.***.178
북의 지령을 받아 투쟁벌이는 꼴통 쓰레기들이군!

제주인 2021-12-01 17:41:16 | 110.***.***.174
한심한 친구들 ~~~뭘위해시는가라고물으면 답답
걸으면 밥이나오나 죽이나오나 이세상 쓸모없는 기레기
강정 마을에 축내는 인간들

ㅇㅇ 2021-12-01 13:02:29 | 221.***.***.254
젊음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삶속에 잘 녹여 오래토록 이 사회에 청량함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2021-12-01 21:59:54 | 112.***.***.59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네요~~~ 이런 청년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