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살 봉 여사는 오늘도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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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살 봉 여사는 오늘도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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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김유경 작가 '구십도 괜찮아' 신간 화제
씩씩하고 멋진 시어머니 '봉 여사'의 유쾌한 일상

"아흔 살 봉 여사는 오늘도 출근합니다."

김유경 작가의 '구십도 괜찮아 : 아흔 살 봉 여사는 오늘도 출근합니다'
김유경 작가의 '구십도 괜찮아 : 아흔 살 봉 여사는 오늘도 출근합니다'

백세 시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노년의 삶은 어떠할지, 봉 여사를 통해 화두를 던지고 있는 제주 김유경 작가의 신간 '구십도 괜찮아'(남해의봄날 刊)가 화제다.

이 책은 오늘도 씩씩하게 출근하는 아흔 살 봉 여사의 유쾌한 일상을 담았다. 아흔에도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이 일터로 출근하며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봉 여사의 일상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묘사한다.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봉 여사는 다름 아닌 작가의 시어머니. 매일 경로당 간식 도우미 일을 하러 출근하는 구순의 시어머니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노년의 풍경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른 아침 출근 준비로 하루를 시작하는 봉 여사의 일상은 우리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열정을 불태우며 의욕적으로 일하고, 요가와 다이어트에 진심이며, 불금에는 축구 경기를 즐기며 뜨겁게 타오른다. 때론 사소한 일로 주변과 다투고 갈등이나 고민도 생기지만 “괜찮아!” 한마디를 외치고, 씩씩하게 하루를 보낸다. 

등에 가방을 바짝 올려 멘 봉 여사, 지팡이를 짚고 출근길에 나섭니다. 검버섯을 가리느라 목에 두른 스카프가 바람에 나풀나풀. 목적지는 경로당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앞에 보이는 건물이지요.
아흔 살의 봉 여사가 하는 일은 경로당 회원들의 간식 도우미예요. 경로당에선 간식 대신 요기가 될 만한 간단한 요리를 해서 같이 먹습니다. 그 준비를 맡은 사람에게 수고비가 나오는데 취직 열정이 남다른 봉 여사가 그걸 놓칠 리 없지요. 덕분에 경로당에서 최고령인데도 부회장 정 씨를 도와 일을 해 온지 두 해째. -'설레는 월요일'의 출근길 中

경로당을 나선 봉 여사, 물리 치료를 받고 내친김에 길건너 은행까지 들릅니다.
'지난달 월급이 들어왔을 텐데.....'
옛날엔 돈을 직접 세 보는 게 맛이었지만 요즘엔 봉 여사도 통장에 찍힌 걸 봐야 안심을 하지요. 거기 찍힌 숫자로 액수를 가늠해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고요.
통장을 창구 직원에게 내밀자 기계에 넣고 찌르륵찌르륵 숫자를 찍어 주는데요. 그 소리가 다 돈 들어왔다는 소리 같아 흐뭇해집니다.
"할머니, 노인 수당도 들어오고, 장수 수당도 새로 들어왔네요."
직원이 서글서글하게 말하며 통장을 돌려줍니다. 통장을 받아들고 들여다보는데 도통 알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그러려니 넘길 수 없는 봉 여사, 다시 직원에게 통장을 내미는데요.
"안경을 놓고 와서 그러는데 지난달 월급도 잘 들어온 거지요?"
"월급이요?"
직원은 동그래진 눈으로 봉 여사를 쳐다봅니다. 다시 컴퓨터 화면을 보더니 묻습니다.
"월급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노인회 3월 지급, 이거요?"
"아, 그렇게 써져 있어요?"
"네, 매달 그렇게 들어왔네요. 27만원, 이거요."
"아, 맞아요. 그거 월급"
봉 여사, 월급이란 소리에 좀 더 힘을 줍니다. -'아직은 화요일'의 일하는 보람 中

봉 여사의 일상 반경. 책 삽입 그림.

구십 년간 농축된 어르신의 지혜와 재미, 감동과 슬픔이 공존하는 봉 여사의 일주일 일상. '설레는 월요일', '아직은 화요일', '분주한 수요일', '고단한 목요일', '무사한 금요일', '반가운 토요일', '한가한 일요일'.

이 책은 철저히 봉 여사의 입장으로 노년의 일상을 서술하고 있다.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인 흰머리와 주름을 왜 감추고 싶어하는지, 밤이면 왜 쉽게 잠들지 못하는지, 아무리 조심해도 왜 보이스피싱의 위험에 노출되는지, 경로당에서는 왜 그리도 자식 자랑으로 시기와 질투를 하는지. 

이것은 비단 봉 여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웠던, 때론 짐작하지 못한 부모님의 솔직한 마음과 인생을 봉 여사의 목소리를 빌어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김유경 작가는 서른 해 가까이 어린이와 청소년, 학부모 등 다양한 사람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어르신들과 글쓰기를 할 때마다 절절한 그네들의 인생 이야기가 아무에게도 전해지지 못한 채 잊히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러다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에 시어머니와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그 생애를 온전히 듣게 되고, 아흔 살 넘어서도 여전히 일상에 충실한 시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면서 노년의 풍경을 생생하게 전하고 싶어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김 작가는 "책 속의 이야기는 구십 세 봉 여사가 실제 겪은 일을 재구성한 것으로, 너무나 사소하고 별일 아닌 일들로만 채워진 구십 세의 일상"이라며 "혹시 당신이 젊음에만 열광하고 있다면, 왜 사는가 묻지 않고 성취에 맹목적으로 온몸을 내던지는, 그래서 더 공허감에 몸서리 치고 있다면, 봉 여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각자 구십의 노년을 미리 경험해 보라 제안하고 싶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글 쓰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며, 읽고 쓰는 일로 삶을 채워가고 싶다고. 김 작가의 첫 책으로 '제주에서 크는 아이'가 있다. 

도서출판 남해의봄날. 정가 1만5000원.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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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 2021-10-14 18:11:38 | 39.***.***.136
책이 무척 궁금해지네여
제주도 작가여서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