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일부 진보정당의 정치인들을 제외하면, 여야 정치인들이 거의 보수적인 경제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보수적인 경제관이란 기업과 개인의 경제적 활동을 촉진하기 위하여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는 정책, 즉 작은 정부(Small Government)를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작은 정부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세금을 감면해 주고 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하여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하면, 가계는 소비를 증대시켜 기업의 매출을 증대시키고, 기업은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면서 고용을 증대시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기업들이 경제적 자유가 주어진 상태에서 경쟁하게 되면 생산과 제도의 혁신이 이루어져 경제는 건전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사기업들(Private Firms)의 비즈니스(Business)를 우선시하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그들이 떨구어 트리는(Trickling Down) 것을 가지고 삶을 영위하면 된다는 극단적 사고를 깔고 있다.
진보정당을 제외한 야당의 정치인들은 대개가 극보수적인(Extremely Conservative) 정치인과 중도 보수적인(Moderate) 정치인으로 나누어지고, 여당의 정치인들은 대개 중도 보수적인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의 도입을 주창하는 여당의 유력대선주자를 마치 극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간주하면서, 궁극적으로 나라의 재정을 훼손하는 인기영합주의자(Populist)라고 치부하고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야당의 극보수적 성향의 정치인들은 ”대장동 개발사업 등에 공공 부문의 개입을 반대하고“ 주당 “120시간의 노동이 가능하도록” 노동법을 개정하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 불량식품이라도 사 먹을 선택의 자유”를 주고, “주택청약 저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상속세를 무차별하게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중도성향의 보수 정치인들은 극보수 정치인들의 주장만큼 과격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기본소득의 도입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시장경제를 주창하는 미국 공화당의 보수적 정치인들은 경제학자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의 경제 이론을 숭상하고 있다. 하이에크는 정부가 어떤 경우에도 경쟁적 시장경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산업생태계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정부의 개입은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하지 못하고 부작용만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본소득(Basic Income)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수적 성향의 미국 정치인들은 하이에크의 이러한 주장을 외면한 채 정부개입을 최소화한 시장경제의 효율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보수성향 정치인들의 주장이 타당한가? 이들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사람들보다 비즈니스 즉 기업이 먼저라는 생각을 깔고 있다. 이것을 영어로 축약하여 표현하면, ”Business the first, people the second“이다. 국가를 경영(?)한다는 것은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확연하게 다르다. 기업 경영의 목적은 그 기업의 사적 이윤(Private Profit)을 창출하는 것이지만, 국가경영(?)의 목적은 기업과 개인을 포함한 공동체의 선을 증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자유경쟁 시장체제는 필연적으로 재화와 용역시장의 독과점을 초래하고, 이렇게 형성된 독과점이 현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독과점을 넘어 기업들이 연합하여 소위 재벌을 형성하고 있다. 즉 산업생태계 내에 우월적 경기자(Dominant Player)가 등장하여 경제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때로는 여론을 조작하고(Manipulating) 자기들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정부에 로비하거나 강요하고 있다. 언론 뒤에 자본이 있고 자본 뒤에 검찰이 있다는 여당 대선주자의 주장, 곱씹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독과점과 재벌이 왜 문제가 되는가? 일부 기업들이 독과점 또는 재벌을 형성하여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그렇게 하지 못한 기업 또는 경제 주체들에 비교하여 막대한 비대칭적 교섭력(Asymmetric Bargaining Power)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막대한 비대칭적 교섭력을 이용하여 납품받는 중간재의 가격을 낮추어서 납품하는 업체들을 옥죄고 있다. 이들 독과점 기업들은 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설정하여 소비자의 이익(Consumer Surplus)을 갈취하고,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를 유치하기 위하여 높은 임금을 종업원들에게 주고 있다.
위에 전개한 경제적 논리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벌어진 심대한 임금 격차의 이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제거하면 된다는 야당 유력 대선 주자의 말, 필자는 이해할 수 없다. 정규직 내에서도 임금 격차가 일어나는 것이 구조적인 현실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비정규직을 가진 사람들이 정규직을 가지려고 하는 열망의 원인을 식별하지 못하는 대선후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보수적 경제관을 가지든 진보적 경제관을 가지든, 정치인들 모두 공산주의 계획경제를 부정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선호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공산주의 계획경제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우리나라와 북한과의 현저한 경제력의 차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북한 경제는 자본이 국가에 귀속된 상태에서 계획통제하에 있고, 우리나라는 사적 자본이 허용된 상태에서 대외적으로 개방된 자유 시장경제가 아닌가?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그 자체가 많은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 작은 정부(Small Government)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교정하지 못하고 날로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81년 공화당의 레이건(Ronald Reagan)이 집권한 이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시장경제체제가 궁극적으로 소득과 부의 심대한 격차를 가져왔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올해 초 민주당의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적 하부구조 확충과 사회보장을 강화하기 위하여 향후 10년 동안 약 4조 5천억 달러의 추가적 재정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재정계획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미국은 시장 자본주의 모형에서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는 서구적 복지모형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미국은 지금 큰 정부를 지향하는 길목에 있다.
하버드 대학의 보수적 경제학자 멘키우(Gregory Mankiw)가 최근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칼럼에서 미국이 유럽의 복지국가 모형 즉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복지의 확대를 위한 과세의 강화가 개인과 기업의 유인(Incentive)을 약화하여 경제활동을 둔화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의 1인당 소득이 미국보다 낮은 이유를 유럽의 복지국가 모형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럽이 미국보다 1인당 소득이 낮은 이유는 사람들의 연간 노동시간이 적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인당 소득수준이 조금 낮지만, 더 많은 여유시간을 갖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인생은 누구에게나 유한한 것이 아닌가?
한 나라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지 큰 정부를 지향하는지는 국내 총소득(GDP) 대비 일반적 정부지출(General Government Spending)의 비율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반적 정부지출이란 공공재(Public Goods)과 공공서비스 그리고 사회적 보호를 위한 지출(실업수당, 어린이 건강과 교육비, 노년층 보호)을 포함한다. <그림 1>은 서유럽과 미국, 일본과 우리나라의 GDP 대비 일반적 정부지출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GDP 대비 일반적 정부지출이 가장 큰 나라는 프랑스(France)이고 그 비율이 55.3%에 이른다. 미국은 38.3%, 일본은 38.7%이다. 우리나라는 31.3%이다. GDP에서 일반적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는 것은 GDP에서 사회보장을 위한 사회적 지출이 큰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는 사회적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1%(2019년), 미국은 18.7%(2019년), 일본은 22.3%(2017년) 그리고 한국은 12.2%(2019년) 이다.
일반적으로 서유럽은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를 표방하면서 작은 정부를 지양하고 큰 정부를 지향한다. 서유럽은 자원과 소득분배에 관하여 시장의 역할을 경시하지는 않지만,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 정부지출이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제 제도는 무엇을 지향해야 하나? 시장경제와 정부의 역할이 적절하게 조합된 제도를 잘 정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과 정부는 서로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와 같이 다음 정권은 서구형 복지국가 모형으로 경제체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것이 대선을 맞이하면서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보장을 과감하게 확대하는 보다 큰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 재정지출확대를 감당할 수 있는 조세개혁(조세 증대)이 필요하다.
아직도 보수적 경제관에 사로잡혀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를 교정하면서 공동체의 선을 지향하는 큰 정부가 들어서기를 소망한다. 주택청약 저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에게는 필자가 주장하는 사회보장확대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겠나 싶다. <김진옥 /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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