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탈시설화,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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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탈시설화,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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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 김기환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는다. 냉장고에 먹을거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간단히 요기를 하는데 없으면 집 근처 편의점에 가서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대신할 때도 있다. 그마저도 귀찮으면 그냥 굶고 출근한다. 퇴근 후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저녁을 먹는다. 그 후로는 운동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핸드폰으로 SNS, 유튜브 등을 둘러보다가 잠들곤 한다.’

미혼의 성인 직장인이 보여주는 평범한 삶의 모습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적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이런 일상은 소중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거주하고 싶은 곳에서 혼자 또는 원하는 사람과 함께 각자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권리를 가진다. 이것은 인권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이런 사소한 일상이 특별하고 유별난 일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는 이런 일상을 누릴 기회나 선택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한 방의 숙소에 3명~5명이 거주하거나 6명 이상 거주하는 비율이 전체 응답자의 87.5%이고, 다른 사람이 안보이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없고(24.8%), 샤워를 다른 사람과 해야 하고(55.2%), 식사와 간식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을 제한당하고 있기 때문에 먹고 싶을 것을 먹을 수 없거나(31.2%), 더울 때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33.6%) 겨울철에 방이 따뜻하지 않았다(13.2%)'

'TV도 마음대로 볼 수 없었고(24.4%) 필요할 때 외출이 불가능하고(38.9%) 이로 인해 시설 외부의 편의시설도 이용하지 못하였으며(36.6%) 기상과 취침시간(55.0%) 식사시간(75.4%) 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무엇을 할 것인가와 같은 일상의 모든 생활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28.8%)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대다수가 개인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71%), 휴대폰을 갖고 있더라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다(12.5%)'

위 내용은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에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거주인 설문조사 결과의 일부분이다.

‘거주시설은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인가? 나라면 저기서 살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다수의 거주인들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시설에 입소했고, 시설에서는 적정 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권리,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누릴 권리, 법률적 행위를 할 권리, 개인적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시설 거주인들은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 및 처벌·폭력·학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거주인의 42.6%가 시설에서 나가서 살고 싶다고 응답했으며, 그중 즉시 나가서 살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이 54.8%에 달하는 것을 볼 때, 이는 거주인에 대한 탈시설 정책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20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등 68인의 국회의원이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안 제2조 제5항에서 탈시설이란 장애인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개인별 주택에서 자립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정의했다.

특히 제32조의 장애인거주시설과 정신요양시설을 단계적으로 축소하여 10년 이내에 폐쇄한다는 것은 이 법률안의 핵심 내용이다. 이는 지금까지 장애인에 대한 시설중심 정책, 시설수용의 역사를 반성하고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권리,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거주의 자유를 비롯한 헌법 내 권리를 보장하는 의미를 지닌다. 결국 탈시설은 시설 장애인이 단순히 시설에서 지역사회라는 물리적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2021년 8월 2일 정부는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과 ‘장애인 권리보장법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국가 차원의 최초 발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너무도 늦은 첫걸음이다. 탈시설 요구가 일어난 지 13년, UN장애인권리위원회가 탈시설 전략을 개발할 것을 권고한 지 7년이 지났다. 또한 탈시설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42번째 국정과제였는데, 임기가 채 일 년도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로드맵을 발표했다. 정책의 연속적인 이행에 대한 우려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아쉬운 점들이 있다.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탈시설 로드맵은 시설 거주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거주시설 변환지원’을 골자로 한다. 현행 거주시설을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 중심의 전문서비스 제공기관으로 기능을 변환한다는 내용인데 그 동안 장애계가 우려했던 ‘시설 폐쇄가 아닌 기능 개편’이 그대로 담겨있다.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에 담긴 10년 이내 시설폐쇄와는 정반대의 정책이다. 법안을 발의한 정혜영 의원은 “장애인 탈시설 지원의 정의를 ‘시설을 변화시키는 일련의 지원정책’으로 명시해 오해의 소지가 있다. 탈시설은 시설서비스의 재편이 아니라 UN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한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생활 권리 실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기존 장애인 거주시설을 지역사회로 옮긴다거나 서비스 기능을 개편해 명칭을 바꾸는 것은 결코 탈시설이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탈시설은 주거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롭게 살아갈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실현되는 출발점이다.

“미국의 경우, 거주시설 안에 치과, 내과가 있는 작은 의원급 또는 2차 병원 수준으로 의료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또한 중증장애인 1명당 5명의 종사자가 3교대로 지원하는 구조다. 그럼에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삶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탈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점을 유념해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강정배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연구부장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김기환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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