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시골마을 책방지기가 말하는, 그럼에도 '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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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시골마을 책방지기가 말하는, 그럼에도 '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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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질' 은종복 대표, 서울서 26년 인문사회과학 책방 운영 후 제주서 새 보금자리
"시골마을 책방은 '마을의 샘터'...독서는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일"
ⓒ헤드라인제주
지난 8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소재 독립책방 '제주풀무질'에서 은종복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 장소는 책방에서 5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은 대표의 살림집. ⓒ헤드라인제주

유튜브 하나면 원하는 정보를 단시간에 얻을 수 있는 시대.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것을 좇는 사람들에게 책 한 권을 엄밀히 독해하고 음미하며 세상을 다시금 짚어보는 일은 이젠 낭만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고지식하게 여겨지기만 한다.

이럴진대 30년 동안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 그것도 사회과학, 철학, 인문학 등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참 멀어진 장르를 고수한다는 것. 사람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오기일 수도,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용기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당사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작은 책방 하나가 마을의 샘터가 될 수 있어요. 책방에 와서 책도 사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살아가며 겪는 크고 작은 아픔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지요. 특히 인문사회과학 책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줘요. 하고 싶은 일이면서도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헤드라인제주> 취재진은 지난 8일 책 냄새로 아늑한 분위기를 풍기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소재 '제주풀무질' 책방에서 은종복(57) 대표를 만났다.

그는 서울서 26년 동안 풀무질 책방을 운영하다 지난 2019년 제주로 이주해 공간을 이어가고 있다. 섬으로 공간을 옮겨오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책방 곳곳에는 여전히 옛 흔적과 그의 한결같은 모습 그리고 책이 존재해야 이유들이 묻어있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돈 안 되는 '책'으로 증명하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나고 자란 은 대표는 평범한 청년들과 달리 졸업 후 취업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는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중후반에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부당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연일 데모하러 다녔다.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상상하며 소설을 쓰곤 했던 그의 목표는 '책방'이었다.

은 대표가 특별히 경계했던 것은 '돈'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잃어간 사람들, 그들의 눈을 멀게 했던 것이 바로 '돈'과 돈이 주는 '권력'이었다"며 "'돈'이 안 되는 것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로 '책'이었다.

그가 책 중에서도 특히 주목했던 장르는 인문사회과학이었다. 은 대표는 "책은 저마다 다른 힘을 갖고 있는데 인문사회과학 책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각하면서 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사는대로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세상은 굳어갔다. 학력, 자본, 개발이 중심이 됐다"며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독서고 특히 인문사회과학은 그것의 핵심을 찌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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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서울에서 책방을 운영하던 젋은 시절 은 대표의 사진. 제주책방 카운터에 걸려있다. ⓒ헤드라인제주

은 대표는 지난 1993년 4월 1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인근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인수했다. 가족과 주변 지인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은 대표는 '책'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확신했다.

책을 매개로 수많은 사람들을 모았다. 그는 "문학읽기모임, 철학모임, 환경책읽기모임, 녹색평론읽기모임 등 10가지가 넘는 모임을 주도했다. 책을 통해 모인 사람들의 관계는 다른 식으로 연결된 관계보다 특별한 것이 있었다"며 "생각을 공유하고 세상을 성찰했다. 뜻이 있는 사람들끼리 연대했다. 독서모임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나와 우리를 찾아가는 사다리 게임 같은 즐거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활동 반경과 장르가 계속 넓어졌다. 은 대표는 "풀무질책놀이터협동조합을 조직했고 대안화폐 만들기, 벼룩시장, 옛이야기들려주기, 어린이글쓰기모임 등 글과 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진 다 해봤다"고 말했다.

책방은 갈 곳 없는 학생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은 대표는 "학업으로, 개인사정으로 지쳐서 온 학생들부터 술에 잔뜩 취해서 온 학생들까지 온갖 청년들이 이곳을 오고갔다"고 했다.

이어 "책방 한켠 '풀방'에는 이불과 커튼, 전기난로도 있었는데 학생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공간을 내줬다. 그들이 물질적으로는 빈곤했을지 몰라도 뜨겁고 찬란한 꿈을 늘 품고 있었다"며 "학생들은 세상을 바꿀 주역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고 설명했다.

'돈'을 생각하지 않고 베풀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아낌없이 베풀었다. 하지만 그만큼 책방과 은 대표의 형편은 점점 기울었다.

◇26년 운영한 책방 인수인계..."결국엔 '돈'이었나 생각했죠"

"학생들이 책방에서 돈을 빌려갔죠. 저도 학교 다닐 때 그랬던 적이 있어서 학생들이 돈을 꾸러 오면 정성껏 봉투에 담다줬어요"

그렇게 한푼 두푼 건네준 돈이 수 십 만원, 수 백 만원이 됐다. 돈을 갚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많았다. 은 대표는 "책방 살림도 가뜩이나 어려웠는데 돈을 빌려간 학생이 책방에도 오지 않으니 사람도 잃고 돈도 잃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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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책방에서 책을 구경하는 손님들. 은 대표는 잠깐 들리는 손님들과도 거리낌없이 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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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을 빼곡히 채운 인문사회과학 서적들. 책 중간 중간에는 수십년의 세월을 견뎌 노랗게 변한 오래된 책들도 있었다. ⓒ헤드라인제주

그것이 책방을 포기하는 이유가 되진 않았다.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가치 있는 무엇을 찾기 위해 골똘히 책을 읽는 학생들을 볼 때면 은 대표는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돈의 무게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책을 매개로 모인 사람들도 놓칠 수 없었다. 독서모임에서 오고가는 대화, 삶을 성찰하는 얘기들은 결코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 쌓여가는 빚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모순적이게도 서울 책방은 일을 하면 할수록 은행 빚이 늘어갔다. 출판사에도 돈을 꾸게 됐고 나중에는 가족한테도 돈을 빌렸다. 빚이 어느 순간 억 단위까지 넘어갔다"며 "책을 팔아서 부자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빚쟁이가 될지는 몰랐다"고 설명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돈으로 지배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돈이 안 되는 책을 선택했던 은 대표. 26년간 보듬어온 5만권이 넘는 책,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뒤로 하고 결국 지난 2019년 경영난으로 책방을 인수인계했다.

◇제주 시골마을에 새 보금자리...책을 두고 펼쳐지는 가지각색의 '꿈'

책을 두고 삶의 기로에 섰다. "평생 책방만 해왔는데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고집 부려서 다시 책방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 대표와 아내, 아들은 서울이 싫었다. 가진 돈으로 서울에서 살 수 없었던 탓도 있지만 돈과 아등바등 씨름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서울이란 공간이 그들이 추구하는 삶과는 맞지 않은 점이 컸다.

어느날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서울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야해. 제주도로 가자" 그리고 아들이 말했다. "가서 다시 책방하자"

그는 지난 26년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들을 되짚었다. 다시 책방지기를 할 수 있을까. 서울이 아니면 괜찮은 걸까. 그럼에도 '책'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아무리 물어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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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대표가 진행하는 마을 독서모임. 연령, 성별, 직업, 학력 등 어느 것에도 제한을 두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각자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헤드라인제주

하지만 은 대표는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접하며 깨닫게 된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책이 정답을 내려주진 않았지만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슬기를 줬어요. 잠깐 좌절의 시간을 겪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죠"

은 대표와 가족들은 제주로 떠나왔다. '제주풀무질'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책방을 이어갔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서울에서는 돈과 권력에 반기를 들었다면 제주에서는 마을의 작은 "사랑방"이 되고자 했다.

그는 "제주에는 아름다운 마을과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았다. 아쉬웠던 점은 그것들을 연계할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며 "그래서 책을 함께 읽으며 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마을문화를 가꾸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시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중간에 두고 사람을 모았다. "선흘녹색평론읽기모임, 제주주경야독모임 등 5가지 모임을 운영하면서 거시적인 논의보단 저변에 있는 것, 마을과 마을사람에 대한 것, 제주다운 것과 나다움에 대한 얘기들을 하고 있다"며 "책을 두고 다양한 꿈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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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대표는 "제주에서는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자연을 읽고 받아들이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헤드라인제주

그는 "제주에서는 '읽는다'는 것의 의미가 좀 더 특별하고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한다"고도 말했다. "제주에서 살다 보니 하늘과 바람과 땅과 바다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살게 됐다. 책을 읽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것이, 그로부터 깨닫게 되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며 "제주에서는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자연을 읽고 받아들이는 일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은 대표가 가장 애정하는 책은 '우리들의 하느님'. 그는 "이 책은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어울려 살아야하는가에 대해 좋은 방향을 제시해준다"며 "나뿐만 아니라 현재 제주의 갈등상황을 볼 때 이곳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서는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에 있는 작은 책방이 사람을 살리고 사람이 마을을 살리면 그것이 책방의 가치가 된다"며 "15평 남짓한 시골마을의 작은 책방 '제주풀무질'과 2500권쯤 되는 책이 '그럼에도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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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8-12 17:16:09 | 122.***.***.140
발행으로 행정법상 조선 성균관 승계를 추가로 법제화. 성대 6백주년 행사때는 대통령.국무총리.교육부 장관 참석하였습니다.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교황윤허,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http://blog.daum.net/macmaca/1467

http://blog.daum.net/macmaca/733

윤진한 2021-08-12 17:15:17 | 122.***.***.140
불평등 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에도 맞지 않는게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임.해방후 미군정부터 국사 성균관(성균관대)교육을 시켜온 나라 대한민국임.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 승계 성균관대는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행정법.국제관습법으로 인정받고 있음.Royal성균관대.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패전국 일본 잔재이자, 불교 Monkey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어왔음

*성균관대로 정통을 승계하기로 하자, 미군정이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대 재정에 기여토록 하는 법을 추가로 만들어 주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대통령령으로 시작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발행으로

윤진한 2021-08-12 17:14:29 | 122.***.***.140
책은 마음의 양식입니다.한편, Royal성균관대는 太學등의 별칭있고,왕립대학이며, 대한제국의 皇대학 전통과 자격을 가지고 있음. 해방후의 주권없는 일제잔재 중심 비신분제 국립대학과는 성격도 다름. 카이로선언이후 프랑스.소련.폴란드등이 승인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법.국내법적 위상을 상기하고, 패전국 일본잔재로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어온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패전국 일본잔재로 적산재산 형태)를 국립대로 강행할때, 전국적인 반대와 서울대생들의 등록거부.자퇴등이 있었던 상황도 인식해야합니다.

국제법상 일본이 항복후,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한국영토에서 일본의 모든 주권은 없어왔음.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현행헌법 임시정부 구절(한일병합 무효, 을사조약등 불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