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平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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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平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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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 2020년 봄

오늘은 무슨 말을 할까. 하루를 열심히 먹고 운동하고 먹고 운동하고 씻고 청소하고 이따금 음악을 듣고 이따금 SNS를 보고 이따금 실없는 농담을 하고, 그리고 길고 긴 엄마와의 수다, 이따금 여전히 텅 비어서 기괴했다는 동생의 드라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하루에 매시간 정해진 약들을 잊지 않고 챙겨 먹고 티브이를 보면 지겨워서 다큐멘터리나 보다가 시들해지고 뭔 설거지를 그렇게 전투적으로 열심히 하느냐는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어디엔가 몰입해 버려서 옆에서 부르는 소리를 자꾸만 못 듣고 그런 나를 평생 봐 온 가족들은 그런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주고, 길고 긴 환기를 하고도 모자라 여전히 창을 열어두고 방을 데우고, 비염 때문에 방안 혼자 있지만, 마스크를 끼고, 비슷한 시간대에 SNS에 접속해서 잡문을 쓰려 하는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내일부터 또 비가 내릴 예정이라 한다. 비가 그친 수요일에는 슈에무라 샤프닝을 핑계로 잠깐 외출해도 괜찮을까. 대구는 차츰 나아지고 있는 걸까. 나는 다음, 다음 주라도 내 일상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넘어가더라도 죄책감을 안 느껴도 될까. 언제쯤이면 과도한 불안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대구에서 머물다가 어딜 가든지 “대구에서 왔어요.”하고 말하고 다녀야 할까. 그래야 양심적인 국민의 자세가 될까. 무엇인가 서류 신청을 위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나는 정말, 이제는 급한데, 사월이 될 때까지는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 멈춰있어야 할까. 가라앉겠지 하고 희망을 품으면 다시금 터지는 집단감염에 사월이 된들 대구는 무사할까.

- 2021년 늦봄

오늘도 수많은 알람이 울렸다. 그 울림의 많은 장소가 유흥주점이었다. 클럽도 있었다. 작년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모 클럽에서 코로나가 터졌다고 전국이 들썩였다. 비난이 쏟아지고 혐오가 난무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이후 계속되는 이성애자 남성이 주로 간다는 유흥주점에서 번지는 집단감염에 대해서는 그런 비난이 쏟아지지 않는다. 티브이를 보니 오늘은 이주민 여성이 있는 주점에서 감염이 되었다고 그들 행위의 불법성과 거주의 불법성을 계속해서 보도하는 게 보였다. 그곳에 가서 비인간적으로 여성을 만지고 여성을 거래했을 한국 성인 남성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다. 오직 주점, 여성, 불법체류만 강조되었다. 여성들의 건강과 두려움은 안중에도 없다. 지하 주점에서 집단 파티를 열었다고 집중 비난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커지는 두려움과 지겨움, 가난의 상황은 분노를 키워서 역시 사회적약자일수록 몰매를 맞을 확률은 높았다. 비장애원주민성인남성일수록 거센 비난의 자리에서 비겨가서 안온하게 일상을 유지한다. 코로나로 인해 증가한 20대 여성 자살률에 대해서는 숨 막히게도 조용하다. 분노하는 사람은 한 줌이고 분노하는 순간 꼴페미가 된다. 세상이 청년의 빈곤을 이야기할 때 여성의 빈곤은 보이지 않았고, 여성은 청년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러니 코로나로 인해 빈곤과 우울함이 가파르게 치솟는다 한들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오직 문제 상황에서만, 저처럼 유흥주점에서 혹은 성매매업소에서 ‘살아’가는 여성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만 ‘불법’이란 이름으로 호명되며 비난을 모조리 받아낼 것이다. 그때도 그 여성들에게 생계와 건강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으며 지원하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그들도 시민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습지를 지나는 듯 위태롭다.

감염도 비감염도 빈곤과 소외를 겨냥하는 현실인데 왜 곳곳에서 개인을 몰아치기에만 급급할까. 사재기는 소위 평범한 비장애인들만 하는 걸까. 그러니까 그건 나쁜 걸까. 최근에 산, 아직도 배달되지 않는 두루마리 휴지를, 늙으신 어머니의 불안 때문에 또 사게 되면서, 생각보다 늘어지는 역병의 시간 속에서, 노인 장애 등등 몸의 움직임이 어려운 사람들이, 무거운 두루마지 휴지, 일상에 꼭 필요한 두루마리 휴지를 미리 쟁여 놓는 게, 더 무거운 쌀과 간편한 라면을 비축해 두는 게, 들 수조차 없이 더욱더 무거운 생수 묶음을 사 두는 게, 정말 나쁜 걸까. 개개인을 훑기보다는 매양 보이지 않는 일종의 일반에 과도하게 주목하며 왜 곁에 보이는 무수한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지 않는가. 정치는, 비판은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가. 여전히 이 모든 것은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는 풍경인가.

- 2021년 현재

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헤드라인제주
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헤드라인제주

시민의 다수는 여전히 자신들이 지난해 받은 코로나로 인한 차별을 다른 사안으로까지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한다. 광주의 눈물을, 제주의 눈물을 기억하지 못한다. 세월호를 교통사고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클럽이나 유흥주점의 코로나 역시 불법과 합법으로 나눠 생각한다. 불법은 법적 의미보다는 자신들의 편견으로 빚어낸 관념인 경우가 허다하고 행여 불법이라 하더라도 인간이면 마땅히 누려할 권리에 침을 뱉는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할 말은 많은데, 할 말을 찾지 못해서 목이 아프다.

아프리카 어떤 부족은 슬프면 마음이 아프다, 가슴이 아프다 하지 않고 목이 아프다고 한다는 걸 어디서 본 적이 있다. 눈물을 꾸역꾸역 참으며 버틸 때 가슴 이전에 목구멍이 아프던 경험을 기억해 낸다. 무엇이 더 관념적이고 무엇이 더 현실적인 건지 나는 자꾸만 잊는다. 생각을 멈출 수 없어서 곁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설거지를 전투적으로 하는 이유는 이렇게 생각이 끊임없이 숨은 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숨은 말은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해서 글로도 숨어버린다. 마치 울음을 참는 목구멍 같다.<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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