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도전을 선언하는 여야 잠룡들의 대선 슬로건은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대통령”과 “소득과 부의 격차를 줄이는 대통령”이다.
경제 성장 슬로건을 들을 때마다 이명박씨의 대선 슬로건 “747” 공약이 생각난다. 7% 실질 경제성장률, 세계 7위 경제 선진국, 그리고 국민소득 4만달러. 이명박씨가 내세운 것들 중 어느 것 하나 사후적으로 실현된 것이 없다. 성장을 기치로 내세운 이명박 정권(2008-2012)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3.2%로 성장률 목표치 7%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김대중 정권(1998-2002) 5.32%, 노무현 정권(2003-2007) 4.48%, 이명박 정권(2008-2012) 3.2%, 박근혜 정권(2013-2016) 2.98%, 그리고 문재인 정권(2017-2019) 2.6% 이다.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바는 보수 정권과 소위 진보정권 가릴 것 없이 성장률은 계속 하락하여 우리 경제가 저속성장궤도로 진입하였다는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일시적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저속성장의 궤도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경제성장에 관한 역사적 경험에서도 발견된다. 지난 135년간(1875-2010) 미국경제의 1인당 실질소득의 평균성장률은 연 2%이었다. 동 기간동안 정부부문이 주도하는 대대적인 사회간접자본(고속 도로망 건설, 철도와 고속 도로망 확장, 교육투자확대 등) 투자가 있어왔고, 자동차의 대중화와 IT(Information Technology) 산업의 출현 등 혁신적 산업의 진화가 일어나고, 여러 번에 걸쳐 크고 작은 경제위기와 경기불황을 겪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정권을 잡든 공화당이 정권을 잡든 정권에 무관하게 연 평균 2%의 속도로 경제는 성장하였다. 주지하듯이 미국은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이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지금도 고급두뇌들이 미국으로 가고 있다. 대학의 연구능력만을 가지고 대학순위를 판단할 때, 세계 상위 20위권 안에 들어가는 대학들 모두 미국내에 포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은 급격하게 일어나지 않고 경제는 연 2%의 성장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저속성장의 궤도에 진입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추세적 성장률이 얼마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단지 연 2% 정도의 성장을 앞으로 지속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짐작하는 근거는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일본 경제가 보여주고 있는 경제성장 패턴에 있다. 일본의 경우 1998년 이후 현재까지 GDP(국내 총생산 또는 소득) 대비 정부부채가 급격하게 증가되어 현재 235%가 되었지만 미국과 비슷한 성장궤도를 밟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와 일본은 산업의 발전정도가 엇비슷하고 대미 균형환율(구매력 평가환율)로 평가한 소득이 약 4만 4천 달러로 거의 같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경제적 환경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토대로 추정해 볼 때, 우리나라의 추세적 잠재성장률은 2%로 추정된다.
경제성장에 관한 역사적 데이터에 의하면 특정 대통령이나 특정 정파가 잠재적 경제성장률을 제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도한 경제성장을 미끼로 국민들을 현혹하지 말았으면 한다. 마치 요술방망이를 가지고 요술을 부릴 것처럼. 더욱더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벤트를 만들어 검증을 받지도 않은 세력이 구데타하듯이 정권을 잡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복지에 관한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는 소위 여야 정치지도자들을 보면서 경제원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일부 유력 정치인들은 자기들 스스로도 경제원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남들보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니 가소로울 수밖에 없다.
경쟁적 자유 시장경제체제와 개방경제 체제하에서 정부의 역할은 급속하게 변화하는 환경속에서 게임의 룰을 진화시키고 그것을 아주 스마트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우리나라는 정파에 특화된 정책에 무관하게 잠재적 성장률 2%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따라서 성장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복지국가 모형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제정책 방향을 사회보장 강화와 소득분배 개선에 두어야 한다.
누차 강조해 왔지만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수준은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37개국들 중에서 최하위권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경제력 수준은 일본의 1/3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10억 달러 이상 가진 자산가(Super Rich)의 수가 8명으로 일본의 7명보다 많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여 매우 열악하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아주 극심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야 정치권의 대선후보들은 소득분배와 사회보장에 관한 막연한 주장만 무성하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적당히 얼버무려 국민들을 기만하여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다.
여권의 유력대선주자인 이재명씨는 지난 21일 한겨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의 시대정신을 ‘공정’이라고 규정하고, “공정이라고 다 같은 공정이 아니다”라며 “윤석열은 과거지향적 공정, 이준석의 공정은 형식적 공정, 이재명의 공정은 미래지향적이며 실질적 공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여야 대통령후보들 중에서 가장 진보적으로 보이는 이재명씨조차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밥을 잘 짓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지어진 밥을 잘 나누어 주는 것이 시대정신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떻게 할 것인가? 소득분배를 개선하고 사회보장을 확대하여 복지국가 모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세제 개혁이 필수적이다. 이것을 통하여 국민부담률을 대폭 증가시켜야 한다. 여기서 국민부담률이란 조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조세부담률+사회보장부담률)이다. 이것은 조세부담률보다 포괄적으로 국민부담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이다.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은 2019년 현재 27.4%인데 반하여, 복지 선진국인 프랑스와 스웨덴은 각각 45.4%와 42.9%으로 우리나라보다 15%이상 높다.
복지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세제를 개혁하여 국민부담률을 높여야 한다. 이것은 국민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어서 대다수 사람들 특히 부자들에게는 인기가 없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여야 유력 대선주자들이 공정한 사회를 꿈꾸고 있으니 경제적으로 공평한 사회 실현을 위하여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세제 개혁의 청사진을 밝혀야 되지 않겠는가? 공정한 사회라고 하는 것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능하단 말인가? 이것을 해결할 수 없다면 공정사회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는 구호는 공염불일 뿐이다.
국민은 개나 돼지가 아니다. 성장우선주의 결과 성장의 열매인 소득과 부의 증가를 독차지한 자산가들이 동정삼아 떨구어주는 것을 받아먹는 그런 돼지나 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보장을 강화하고 소득 분배를 강화한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잠재적 성장률이 하락하지 않는다. 이것은 경제성장에 관한 역사적 데이터가 입증하고 있다. 소득분배의 형평과 사회보장의 강화는 사회적 융합을 촉진하고 대외 경제 충격에 회복력이 강한 경제적 안정성을 제고한다.
추상적으로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겠다는 말의 성찬을 중단하고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공정한 사회를 이룰 것인가를 여야 정치권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 고민해야 될 때인 것 같다. 현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김진옥/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세제개혁, 특히 부자들이 더많은 부담을 해야하는데 그게 고양이목에 방울달기이겠지요...
이 글을 통해 경제적으로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촛점을 맞춘 대선주자를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