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라 팬더믹이전 이맘쯤 5월은 청보리축제로 발 디딜 틈도 없던 모슬포항 선착장이 한산했다. 입출항 등록을 마치고 표를 예매하고 배를 기다리고, 배에 올랐다. 오가는 배들이 거의 없는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뱃고동도 울리지 않고 거침없이 달린다. 저만큼 송악산과 모슬봉, 그리고 단산이 가물가물 사라질 때쯤 납작하게 엎어높은 접시의 섬이 나타난다.
특이한 모양의 섬, 낮은 구릉 하나없이 접시처럼 평평했다. 큰 파도가 몰아치면 잠겨벼릴 듯 위태로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더 없이 포근해 보였다. 바다에서 불어온 큰바람에 섬과 나의 몸이 일렁거렸다. 배에서 내려 얼른 밟아보고 싶었다. 청보리밭 사이에 샛길은 나에게 두팔을 벌리고 있으니 빨리와서 바람을 맞이하라고 부르는 모습이었다.
가파도는 서귀포시 대정읍에 속하는 126°16′, 북위 33°10′에 위치하고 있으며,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5.5㎞ 지점이고 송악산 해변에서 2.2km 떨어졌있는 제주 부속도서들 중 4번째로 큰 유인도이며,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도 본섬 중간에 있다. .
모슬포항에서 가파도 상동선착장까지는 배로 20분 소요된다. 면적은 87만1549㎡으로 약 26만평이다.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18홀의 골프장의 면적하고 비슷하며, 2020년 기준 226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동서길이가 1.5km, 남북길이는 1.6km이로서 헐레벌떡 숨차게 뛰어다니면 30분이면 다 돌아 볼수 있을 것 같다.
가파도는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무인도로 버려진 곳이었다. 하지만, 국유 목장의 설치를 계기로 마을이 들어섰다. 1751년(영조 27)에 목사 정연유가 소를 이 섬에 방목하면서 본격적으로 사람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무인도였던 가파도에 이때부터 다시 사람들이 살기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주민들은 실은 그 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1840년 영국의 두척이 가파도에 나타나 포를 쏘아대고 소를 약탈하는 사건이 발생 한 후 1842년(헌종 8)부터 인근 주민들에게 개간이 허락되면서 경주김씨, 진주강씨, 제주양씨, 나주나씨, 김해김씨 등이 '황개'와 '모시리' 일대에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안을 따라 가파도 올레길을 걷는다. 싱그러운 바다내음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다. 걷다보면 가파도는 해안가이지만 해안 절벽이 없고, 산과 숲이 높은 건물이 없음을 알 수 있다.가장 높은 곳은 높이 20m 정도이며, 구릉이나 단애가 없는 평탄한 섬으로 위에서 보면 전체적 모양은 가오리 형태를 이루고 있다.
고만고만한 낮은 지붕들이 있는 깨끗한 마을갈을 지나면 섬 가운데 넓은 들녘이 보인다. 이 넓은 들녘에서는 매년 4월이면 청보리 축제를 개최하며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제주 본섬에 알린다.
바다를 끼고 돌면 두시간이 족히 걸리고. 직선코스로 걸으면 한시간이면 볼 수 있다. 보리는 노랗게 익어가고 있고, 보리사이로는 무꽃이 한층 색을 자랑하고 있으며 형제섬과 산방산, 한라산을 한눈에 볼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된 계기가 된 곳이 가파도이다. 1653 년 네덜라드인 하멜이 제주부근에서 표류돼 조선에서 14년을 생활하다 귀국 후 발표한 <하멜표류기>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섬이다. <하멜표류기>에는 Quepart(케파트)지명으로 소개되었는데 옛 이름 개파도(蓋波 島)·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가파도는 다양한 지명을 가지고 있는데 섬 전체가 덮개 모양이라는 데서 따온 개도(蓋島)를 비롯하여, 개파도(蓋波島)·가을파지도(加乙波知島)·더위섬·더푸섬 등으로도 불리웠다.
가파도의 청보리는 200년 전 개간 허가 이후 함께 유입되어 오랜 세월 동안 가파도 주민들 삶의 터전을 지어주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때부터 지어온 보리농사, 청보리밭에는 지긋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하다. 물론 가파도의 주민 대부분은 어업을 전업으로 하지만, 토질도 비옥하다. 1960년대에는 가파도 참외가 제주에서 인기가 좋았다.
# 청보리가 바람에 일렁이고 있고, 그 바람은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가파도 청보리 축제는 2009년부터 개최되었는데, 연간 관광객 15만명이 다녀가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하였다. 즉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 10명중 1명은 가파도를 갔다는 이야기이다. 반대되는 급부로는 관광객으로 인하여 환경오염 처리비용이 가중된다는 사실이다. 관광업계에서는 관광비용 증가 등에 따른 관광객 감소 등을 우려해 반대 및 이러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금기시 돼왔다.
하지만 나는 가파도가 좋으며, 돈을 내서도 청보리 축제에 매년 찾아 올 마음이 있다. 내가 먹는 음식과 환경에 대하여 오염원인자 부담원칙에 의해 지불 할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방자치제도가 1995년 시행되면서 지역축제는 사회, 문화, 경제적 파급효과가 높다. 이렇게 아름다운 지역축제를 즐기면서 관광객의 입장으로 최소한의 환경부담금은 낼 용의가 있다.
# 제주 부속섬들만의 독특한 어형
하동마을 안길을 접어들어 포구 쪽으로 걸어가다 가파도 섬사람과 이런 저런 이야기 하던 도중 재미난 사실을 발견하였다.
섬사람들은 4면이 바다라는 공간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큰 섬인 제주도와의 접촉 없이 대부분을 섬 안에서 생활하여서 제주도의 부속 섬들과 비슷하지만 각자 섬들만의 독특한 어형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 오르지 마라, 보름(바람의 제주어) 하영 분다 : 금기의 공간
가파도 해역은 예로부터 거센 기류와 조류가 부딪쳐 나가는 수역이므로, 이곳을 지나는 외항선들의 표류와 파선이 잦았던 곳이다. 마을의 형성과 성장에 따라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의 안녕을 위하는 방향으로 공간을 형성하였다.
거친 자연환경에 순응하면서 혹은 맞서면서 마을의 존속을 위해 마을 신앙으로서 할망당과 제단집을 만들었다.
까메기 동산은 하동마을, 큰 왕돌은 상동마을에 위치하여 있고, 주변보다 높은 큰 바위가 금기 공간이며, 그 바위에 올라가는 행위를 해서는 안되는 거다.
까메기 동산과 큰 왕돌에 올라가며 파도가 거칠어지고 폭풍우가 몰아친다고 하여 마을 주민 뿐만 아니라 관광객도 올라가면 안된다. 올라가는 순간 마을 주민에게 들키다면 욕을 한 바가지 뿐만 아니라 당장 쫓겨 날 수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요즘 코로나로 인하여 제주살기 한달, 1년등 섬살이를 위해 관광객도 늘면서 금기도 하나씩 사라지고 있지만, 상동, 하동 마을 노인들은 지금도 낯선 사람들이 '큰 왕돌', '까메기 동산'에 오르는 것을 섬뜩하게 여기고 있다. 폭풍과 바람은 가파도 섬 주민들이 제일 두려워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물반, 고기반 / 탄소반, 디젤반
가파도 해역은 물살 흐름이 빠르기도 하지만, 전복, 소라등 패류는 물론이고 고등어, 방어, 자리돔 등이 씨알이 굵어서 고품질 상품으로 제주에서도 크게 각광을 받는다.
특히, 가파도 넙개 포인트에는 '벵에돔 자판기'가 있다는 말처럼 물반, 고기반으로 낚시꾼들의 핫 코스이다.
은둔의 섬인 가파도가 올레길과 생태관광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보리고개가 청보리 축제로 변신을 했다. 영적공간인 할망당과 까메기 동산, 큰 왕돌 공간도 올레꾼과 관광객에게는 신선한 문화로 다가온다,
여기에 2011년 10월브터 세계최초 탄소없는 섬을 만들다면 '가파도 탄소없는 섬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가파도의 전력부분을 100%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마을 안쪽 보리밭 사이에는 높이 30m의 거대한 풍력발전기 2기가 세워져 있다. 가파초등학교에는 소형풍력발전기과 태양광발전시설이 들어서고 전신주를 지중화 했다. 100여대의 전봇대가 사라져 가파도 경관 연출에 큰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 가파도 풍력발전기는 2기는 멈추어있고 폐기될 예정이다.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에 따져 해풍을 직접 맞을 수 밖에 없었던 가파도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였다. 낚시꾼만 찾던 섬이 올레꾼과 관광객이 수시로 찾는 섬으로 바뀌고, 생태관광으로 이름표를 바꾼 가파도이다. 추후 새로운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해 심사숙고하여야 진행이 되어야 할 것이다.
# 가파초등학교 : 신유의숙
마을 안길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이 초등학생들의 꿈을 키우는 곳은 이 섬 가운데에 꿈나무들의 가파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초등학교에는 돌하르방, 해녀조각상, 책을 읽는 소녀상이 있어 아기자기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설립자 김성숙 선생의 동상이 있다.
김성숙 선생은 1921년 4월 가파도에서 초등교육기관을 설립하였고, 신유년에 세운 학교이기에 신유의숙으로 명명하였다. 신유의숙은 조국독립과 주민들에 대한 문맹퇴치와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학교로 거듭나었고, 제주본섬에서도 가파도로 유학생이 올 정도 였다.
신유의숙은 신교육과 민족의식 배양의 고장으로 이어오다가 1946년 가파공립국민학교로 개교되었고, 그 결과 가파도에는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2021년 현재 교직원 8명에 학생 8명이 다니고 있다.
이제 가파올레 10-1코스를 끝내며 아름다운 제주를 조망한다. 제주에서 보는 가파도가 아닌 가파도에서 바라본 제주의 모습이 익숙하지 못해 어색하다. 가장 낮은 가파도에서 산방산과 송악산의 높은 풍경을 바라보고 한라산을 올려보고 있다.
이제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보이는게 특별하게 느껴지고 있다. 지금 내눈에 담기고 있는 이 풍경들은 며칠뒤면 또 한동안은, 어쩌면 평생을 살면서 다시 만질 수 없을 그림이 될 것이다. 내 가슴속에 한 켠에 꾹 꾹 눌러질터니........
하나 하나가 애틋하고 무엇하나 쉽게 지나치지 못 하겠다. <글=양용호, 사진=홍광표 포스나인 사진작가>
가파도에서는 사람이 풍경이다
허리에 매달린 납덩이와 함께 삶의 심연속으로 잠수하는 여자.
호흡을 참아내다 일 점 부포, 태왁을 끌어안고 숨비소리를 내지르는
바다의 여자들.
가파도의 해녀들은 그렇게 자맥질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꿋꿋하게
경작하고 있다.
격랑에도 굴하지 않는 작은 섬, 가파도에서는 사람이 풍경이다.
- 오성자 시인의 에세이 내용 중 일부-
제주에 대해 근거 없는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사람사는 곳이 다 그렇듯이 불평과 불만거리가 존재한다. 물가가 비싸고, 간혹 길거리에는 개 똥이 있어 지저분하기도 하고, 음식점에서는 투박한 어투의 인사로 맞이하는 주인장이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제주에 대한 매력도 마찬가지다. 불편함에 즉각적인 반응을 넘어서면 숨어있는 가치와 매력이 다가온다. 마음의 준비기 된 사람에게만 제주는 자신의 매력을 서서히 드러낸다. 제주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천천히 길을 걷는 사람에게만 오롯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골프 36홀 치고 횟집 방문 2박3일의 여정을 갖는 이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불평과 편견이라는 문지방을 넘어 제주의 진면모를 느껴보려는 사람만이 제주의 숨겨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청보리가 넘실되는것이 눈에 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