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 제주 전통 옹기에 깃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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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 제주 전통 옹기에 깃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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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대장.도공장.질대장.굴대장 '협동'으로 제작되는 '제주옹기'
"제주옹기에 깃든 공동체 문화는 후대에 물려줄 지속가능한 미래 가치"
왼쪽부터 부창래 도공장, 이윤옥 질대장, 고 고달순 불대장.ⓒ헤드라인제주
왼쪽부터 부창래 도공장, 이윤옥 질대장, 고 고달순 불대장. ⓒ헤드라인제주

'함께'보다 '혼자'가 익숙한 현대인. 혼밥, 혼술, 1인가구 등 많은 사람들은 생활 곳곳에서 혼자를 자처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정, 직장, 학교 등 일상 곳곳에서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제주에선 예부터 작은 옹기 하나를 만들더라도 최소 4개의 기능이 협력해야 했다. 굴대장(굴을 박고 관리하는 기능), 질대장(흙을 선별하고 고르는 기능), 도공장(기물을 성형하는 기능), 불대장(불을 때어 완성하는 기능)이 그들이다. 세련되고 편리한 옹기들이 공장에서 싸고 빠르게 생산되고 있음에도 제주전통옹기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보존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유중 하나가 옹기에는 협력, 공동체와 같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옹기에는 반드시 '제주'가 붙는다. 이유는?

제주옹기는 타 지역의 옹기와 달리 앞에 꼭 '제주'가 붙는다. 옹기가 제작되는 과정이나 환경이 육지의 것과 비교하면 여러 방면에서 독특하기 때문이다.

화산폭발로 생성된 화산회토가 지표면을 넓게 덮고 있는 제주도에서는 흙으로 그릇을 만들기 위해 점력이 좋은 흙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옹기를 만드는 질흙은 화산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생성된 비화산회토로 원토의 색깔이 '고양이 등가죽과 닮았다'하여 '고냉이 촌흑'이라 불리며 철성분이 풍부하다. 그래서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별도로 유약을 바르지 않아도 내용물이 그릇에 스며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다소 투박해보일 수는 있으나 그만큼 깊이 있는 느낌을 자아내고 뛰어난 보존력을 갖추고 있다.

노랑굴과 노랑그릇ⓒ헤드라인제주
노랑굴과 노랑그릇 ⓒ헤드라인제주
노랑굴 새끼허벅들ⓒ헤드라인제주
노랑굴 새끼허벅들 ⓒ헤드라인제주
노랑굴 큰불때기ⓒ헤드라인제주
노랑굴 큰불때기.제주도의 옹기굴은 '검은굴'과 '노랑굴'로 구분된다. 낮은 온도로 옹기를 굽는 검은굴과 달리 노랑굴은 1200도를 넘는 고온에서 그릇을 굽는다. 화산토는 높은 불의 온도에서 가지각색의 색과 모양을 띄게 된다. ⓒ헤드라인제주

제주 흙은 불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그릇을 굽는 온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제각기 개성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청자, 백자를 만드는 흙보다도 입자가 고운 것도 특징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제주옹기의 가장 독특한 면은 제주도민의 공동체 생활 방식에서 연유한다. 육지와 달리 제주도에서는 여럿이 철저한 협업과 분업으로 옹기를 제작했다. 허은숙(54) 제주전통옹기전수보존회 대표는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길도 맹목적인 제주 옹기의 보존, 전통의 계승이 아니다"며 "그 안에 깃든 선조들의 공동체 정신, 협력의 가치를 알리며 오늘날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분업과 협업, 신뢰와 존중으로 제작되는 제주옹기

제주옹기의 우수함은 제작 과정에서 이뤄진 철저한 분업과 협업의 영향이 크다. 제주도도 이 점을 특별하게 여겨 지난 2001년에 지정된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제주도 허벅장'을 2011년 9월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 14호 '제주도옹기장'으로 문화재 명칭을 변경하고 각 기능별로 전승 종목의 지정 범위를 확대했다.

현재 제주도옹기장으로 부창래 도공장, 이윤옥 질대장, 김정근 굴대장 등 3명의 기능장이 활동하고 있다. 불대장은 지난해 고달순선생이 별세해 기능장이 공석으로 남아 있으나 전수조교인 김서진씨가 뒤를 잇고 있다.

이들의 작업을 돕는 동시에 제주옹기 전수교육생을 양성하는 이도 있다. 제주옹기 전수조교인 허은숙 사단법인 제주전통옹기전수보존회 대표다.

허 대표는 제주전통옹기 부흥에 힘쓰는면서도 그것에 깃든 공동체 정신과 협업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옹기 일을 시작한지 10년째인 지난 2008년 사단법인 제주전통옹기전승보존회를 설립했고 이를 기반으로 2009년부터 매해 노랑굴 큰불때기를 중심으로 한 '제주옹기굴제' 행사를 개최하며 대외적으로 제주옹기를 알리고 있다. 옛 도공들이 직접 건네준 그릇들과 자료를 수집해 지난 2010년에는 제주옹기박물관도 공식적으로 추진.등록했다.  

허은숙 전수조교ⓒ헤드라인제주
허은숙 제주전통옹기전수회장 ⓒ헤드라인제주
ⓒ헤드라인제주
왼쪽부터 허은숙 제주전통옹기전수보존회 대표, 부창래 도공장, 이윤옥 질대장, 고 고달순 불대장. ⓒ헤드라인제주

<헤드라인제주> 취재진은 지난 4일 허 대표와의 대화를 통해 옹기 제작과정에서 어떻게 분업과 협업이 이뤄지는지, 제주전통옹기에 깃든 공동체 정신이 '혼자'가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보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제주옹기는 크게 네 가지 분야에서 분업이 이뤄진다. 허 대표는 "가마의 축조 기능을 가진 '굴대장', 흙을 선별하고 고르는 기능을 가진 '질대장', 옹기 성형기능을 가진 '도공장', 옹기를 굽는 기능을 가진 '불대장'이 각각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우선, 질대장이 황토와 회색의 고냉이흙이 섞여있는 점토층의 흙을 선별한다. 흙을 파내서 물을 붓고 좃메로 흙을 때리며 펼친다. 이후 욥매로 다시 흙을 때리며 뭉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옹기에 쓰일 흙을 준비한다.

도공장과 질대장이 한팀으로 그릇을 만들기 시작한다. 질대장이 덩어리 흙을 두들겨 얇은 흙판인 토래미판을 만들어 도공에게 건네면 도공은 물레질로 그릇을 만들어낸다 .허 대표는 "이때 도공장이 작업을 끝낼 때까지 질대장은 절대 그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옆에서 도공장의 일에 관여하는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공장이 어떤 의도로 어떻게 그릇을 만들 건 묵묵히 돕기만 한다. 도공장 역시 질대장이 만든 흙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며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협업하지만 고유영역은 서로 침해하지 않는 이 상호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옹기 제작 과정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윤옥 질대장ⓒ헤드라인제주
이윤옥 질대장 ⓒ헤드라인제주
부창래 도공장ⓒ헤드라인제주
부창래 도공장 ⓒ헤드라인제주
ⓒ헤드라인제주
왼쪽부터 이윤옥 질대장, 고 고달순 불대장, 부창래 도공장 ⓒ헤드라인제주

만들어진 옹기가 마르면 이제 그릇을 구워야 한다. 불대장이 마무리를 책임진다. 그릇을 굽기 전 다림불을 지펴 가마안을 건조한다. 그릇재임이 끝나면 불을 피워 연기로 습기를 제거하고 서서히 불씨를 키우는 족은불때기, 불꽃이 확실하게 일어나게 하는 중불때기, 큰불때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온도가 최고조에 오르면 잿불질로 노랑굴 큰불때기를 마무리한다. 옹기 제작에서 섬세함이 가장 요구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대장의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불심이 약한 흙이거나 성형이 조밀하고 튼튼하지 않게 이뤄졌을 경우 그 옹기는 깨지거나 모양이 주저앉을 확률이 크다. 이 때 발생한 일에 대한 책임은 누구 한명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작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가마굴을 박고 관리하는 굴대장의 역할도 중요하다. 제주도 가마는 독특하게 용암이 흘러 암석이 된 돌로 지어진다. 이 돌은 한번 구워진 상태고 다공질이기 때문에 내화재로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모든 돌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돌을 원재료로 하기 때문에 굴대장의 정확한 판단이 요구된다.

또 사시사철 급변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의 특성상 평상시 가마의 상태를 잘 유지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은 굴대장 혼자서 할 수 있는 규모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힘이 보태져야 한다. 허 대표는 "그래서 옛날에는 '굴계(굴제)'를 만들어 가마를 만들고 돌아가면서 관리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제주옹기는 어느 한 순간에, 특정인의 재량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숱한 시행착오와 오랜 소통의 과정을 거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제주 공동체 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제주옹기에는 제주인의 인간 중심 공동체 문화가 있다"

이젠 고지식하게만 여겨지는 협동과 공동체라는 가치. 하지만 제주옹기에 담긴 그것들은 우리에게 재미와 더불어 어떤 울림을 준다. 제주옹기의 맥이 가느다랗지만 결코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이유도 제주옹기전수자들이 이 점에서 특별한 무엇인가를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허 대표는 "옹기는 제주인의 삶을 이끌었던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며 "전통이란 관점에서는 옹기가 실질적으로 실생활에 도움을 주진 않지만 그것이 형성하는 인간 중심의 공동체 문화에는 주목할만하다"고 말했다.

이어 "속도와 개발의 흐름 속에서 공동체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제주옹기는 여전히 제주사람들의 삶을 지탱했던 공동체 문화의 가치를 잘 담고 있다"며 "보존과 계승으로 후대에 물려줄 지속가능한 미래 가치다"라고 설명했다.

ⓒ헤드라인제주
고 고달순 불대장과 전수조교 김서진씨 ⓒ헤드라인제주
기능장과 전수교육생.ⓒ헤드라인제주
기능장과 전수교육생.ⓒ헤드라인제주
제주옹기굴제 행사. 남녀노소 누구든지 참여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헤드라인제주
제주옹기축제. 남녀노소 누구든 참여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헤드라인제주

그러면서 "사회의 흐름이 가속화 될수록 옛것에 대한 지킴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잊혀진 제주옹기를 되살리는 일은 과정만으로도 고되다"며 "젊은 패기만으로 버텨내기에는 물론 한계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허 대표는 "그래도 전통은 시대에 맞게 재해석되고 재발견돼야 하는 것"이라며 "제주전통옹기전승보존회 설립, 올해로 13회째를 맞는 제주옹기굴제를 통해 노랑굴 큰불때기, 제주옹기장 공개시연, 제주옹기전시, 체험 등 다양한 볼거리로 여러 사람들에게 제주옹기와 그 안에 깃든 가치를 재밌고 쉽게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트랜드를 따라가는 새로운 상품 등도 연구해 신.구가 조화되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제주옹기의 근본인 협업의 공동체 확산은 따로 또 같이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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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2021-06-08 21:29:20 | 27.***.***.200
문화재로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생업중 하나로서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제주는 자연과 전통, 그 위에 품위있고 단아한 현대문물이 잘 융화된다면, 정말 멋진 곳이 될거라 생각되네요. 사진과 글 모두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