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오늘]<9> 여름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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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9> 여름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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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친구들과 같이 ‘차귀도’라는 섬으로 바다낚시를 갔었던 적이 있다.

배를 타고 나가서 낚시를 한다는 친구의 말에 처음 배를 탄다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파도도 치는데, 멀미해서 구토를 하지 않을까 하는 것 때문에... .

일요일 아침에 낚시할 준비를 다 하고서 친구들이 집에 왔다. 우리를 태운 차가 시내를 벗어나 외곽지를 달리자 창문을 열었다. 날씨도 내 마음을 아는 듯 따사로운 햇볕과 때마침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주니 이 삽상한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나는 출발하면서부터 계속 ‘멀미해서 구토하지 않아야 한다.’ 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는 친구들에게 내 속마음을 들킬세라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위장전술로 태연을 가장한 것이다.

차창 밖으로 넓고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햇살을 받아서인지 은구슬을 풀어놓은 것처럼 온 들녘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포구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자 짜고 비릿한 생선 내음이 내 코를 유난히도 자극시켰다. 친구들과 같이 가는데,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어서 와’ 하고 반겨주고는 힘찬 날갯짓을 하며 멀리 날아가 버린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미리 예약해놓은 배의 선주가 우리를 반겼다. 인근파출소에서 경찰관 한 사람이 나와서 안전상의 문제에 따른 간단한 주의사항과 인원 점검을 일러주고 돌아가 휠체어를 탄 친구를 제일 먼저 승선시키고, 그 다음 나를 올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비장애인 친구와 선주가 마지막으로 승선했다.

하얀 물살을 가르며 배가 앞으로 나아가자, 갈매기들이 무리를 지어 배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다. 이놈들이 벌써 먹잇감을 예감이라도 한 걸까. 파도가 없고, 물결도 잔잔해서 내가 처음에 걱정했던 일들이 모두 사라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주는 우리가 낚시할 만한 곳에다 닻을 내렸다. 나와 친구들은 각자 좋은 위치를 잡아 낚시를 시작했다. 비장애인 친구들은 낚시도구를 가져와서 하고, 나와 휠체어를 탄 친구는 선주의 시범을 따라하기로 했다. 조그마한 새우를 끼워 바다에 던져놓고 기다렸다가 손끝이 움직이면 재빨리 끌어올리면 된다고 했다.

낚싯줄을 잡은 내 손끝이 움직였다. 선주의 말대로 끌어당기자, 한 낚싯줄에 두세 마리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나의 첫 수확이었다. 나는 너무 신기해 하면서 두 번째 새우를 끼워 바다에 던졌다. 그랬더니 아무리 못 잡아도 한 마리 정도씩은 올라왔다.

그 다음부터는 줄을 던져 넣기가 바쁠 정도로 계속해서 올라왔다. 비장애인 친구들이 한 마리 정도 잡을 때에 나는 두세 마리씩 올라오니 그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여기 있는 고기 다 잡아버리는 거 아냐?”고 농담을 하면 “고기들도 내가 초보인 줄 알고서 잡혀주는 것 같다”며 한바탕 크게 웃기도 했다.

우리가 약속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낚싯대를 접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갓 잡은 고기를 즉석에서 배를 갈라 포를 떠서 다 같이 먹는데, 맛이 정말이지 일미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는데 그렇게 회를 실컷 먹고, 인근 식당에서 얼큰한 매운탕을 해먹고도 남아서 같이 간 친구에게 저녁반찬으로 해먹으라고 주었으니 내가 많이 잡긴 했나 보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했다.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 지난 번 그 친구들에게서 한 번 더 가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흔쾌히 승낙하고 준비를 했다. 지난번 같이 갔던 친구들에서 한 명이 더 늘었다. 장소는 같은 장소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지난번과는 정반대로 신통치 않아 손바닥 크기만큼 작은 치어들만 잡히는 거였다. 올라오면 다시 놔주기를 반복하였다.

오늘 처음으로 간 친구가 제법 많이 잡았다. 그걸 보니 “초보 낚시꾼을 알아보기는 하는 구나.”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낚싯줄을 드리워놓고 고기가 입질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 주위로 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한 여러 개의 촉수가 있고, 위에는 우산을 덮어 놓은 듯한 모양의 해파리가 물결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요즘 한창 많은 인파들로 붐벼야 할 해수욕장이 해파리 떼의 출현으로 발길이 끊기는가 하면 해파리의 독성에 쏘여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이러다 청정바다인 우리 제주도의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파리 떼의 소멸을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기수를 돌려 포구로 돌아오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높이 솟아 있는 이름모를 기암괴석들 사이로 해가 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카메라 앵글에 담아 두고 싶어서 연신 셔터를 눌렀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지치고 힘은 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내가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다 보니 바다낚시가 이렇게 재미있고, 즐거운 것인 줄 몰랐었는데, 내가 조금씩 낚시 마니아라도 된 것처럼 느껴져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헤드라인제주>
 

이성복님 그는...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6년 대한문학 수필등단 작품입니다.<편집자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이성복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이성복 객원필진/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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