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이다. 그리고 아쉬움이 크다. 제주 성산 제2공항 추진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둘러싼 아전인수식 공방 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무모함 때문이다. 민의를 무시하고 본인들의 나르시즘에 빠져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면서 10년에 걸친 논쟁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직무유기가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한심하다. 애꿎게 도민들의 에너지만 소모되고 있을 뿐이어서, 더욱 그렇다.
여기서 성산 제2공항 논쟁을 다시 부연 설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세상은 변하고 생각도 변한다는 것.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애초에 제2공항을 원했던 10년전의 제주도민들의 생각이 변했다. 지난 10년간 제주의 관광 환경이 변하고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셰상은 크게 요동쳤다. 그 결과 성산 제2공항에 대한 도민의 생각이 많이 변했다. 그래서 현명한 리더라면, 도민 여론조사에 순응해서 일단 제2공항 추진은 그만 두는 게 맞다. 다시 10년이 지나 세상이 변하면 모를까.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해결되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도민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많은 데도 원지사는 성산 제2공항 추진을 밝혔다. 무모한 정치적 행보이다. 정치적 의도가 짙은 언명인 것. 같은데. 그다지 그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여론을 거스리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례가 있다. 그럼에도 성산 지역 주민은 찬성이 많다는 조사를 등에 업고 제2공항 추진을 천명하는 원지사는 이제는 성산읍 도의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주 출신으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하는 포부를 높이 평가하고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도민 의사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대할 줄은 몰랐다. 성산에 공항이 들어서면 득을 보게 되는 몇몇 주민들의 개발 욕구에 제주의 미래를 맡기려 하는 걸 보면서. 어이없음으로 실망만 가득하다. 인구 1.2 프로의 제주도민은 간 데 없고, 오직 30프로 정도로 추정되는 국민의힘 지지자들을 바라보면서 대선에 올인하는 몸부림만 나부낄 뿐이다.
원지사가 제2공항 추진을 재천명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이 무어냐며 거론한 것은 일면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제2공항 논쟁이 계속 불거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문재인 정부의 어정쩡한 입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민의 의견을 모아오면 그에 따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는 일종의 책임회피이다. 지난 4년간 제2공항 논쟁에서 청와대나 국무총리실이 보이지 않는다. 개발론자인 국토부에만 맡겨서는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도민의 여론을 듣기로 합의해서 그 결과가 나온 만큼, 이제는 소신이나 정치적 입장을 묻어두고, 제2공항 추진은 접는 것으로 최종 입장을 밝히는 게 맞다.
서귀포시 강정 해군기지 설치여부로 떠들썩 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직접 제주로 와서 해군기지의 불가피성을 개진하고 양해를 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다. 성산 제2공항은 박근혜 정부에서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 국정의 신뢰도와 안정성을 감안하면, 그냥 쉽게 제2공항을 없던 일로 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럼에도 지난 10년간 도민 수용성과 환경영향평가 등에서 더 이상 추진하기가 이렵다는. 걸 충분히 인지한 만큼, 도민과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면 된다.
제주 지역의 3분 국회의원도 각자든 합동으로든 제2공항 문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그게 도민을 대표하는 선량의 책무이다. 도민 여론조사에 대한 입장 표명을 명확히 해 주어야, 제2공항 문제가 보다 쉽게 해결되리라 본다. 제주도의회도 조속히 의회 차원에서 최종 정리된 입장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 무어가 두려운가.
본디 필자도 신공항 같은 대형 국책사업을 여론조사로결정짓는 게 합당한 가에 대해서는 100프로 수긍이 가지 않는다. 여론이라는 것이 그다지 장기적 안정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선거 때 후보단일화를 위해서 여론조사를 하는 데서 보듯이, 서로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면, 여론조사만큼 문제해결을 쉽게 해 주는 정치적 도구도 없다. 그래서 이번에 사실상 제2공항 추진 여부에 대해서도 도민 여론조사를 한 이유가 이제는 공방을 그만 종료시키기 위한 것일게다. 그렇다면 혹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게 민주시민의 도리이자 정치권의 책무이다.
이 점에서 원희룡 지사는 민주적 정치인이길 원한다면 큰 잘 못을 범했다. 도민의 의사를 듣고도이를 무시한다면, 앞으로 어느 도민이 제주도정에 의사를 전달하겠는가. 여론조사 결과에 아랑곳 하지 않고 본인의 소신을 밀어부치는 걸 자랑 삼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으로서 가장 경계할 자세일 것이다. 물론 지난 7년간 제2공항에 올인해 온 원지사의 노심초사와 그 나름의 비전을 하루아침에 저버리는 게 쉽지 않을 게다. 그럴거면 도민 여론조사를 하지 말고 계속 소신을 갖춘 도지사로서의 추진의사를 굳건히 고수하면 될 일이었다.
오히려 원지사는 제2공항 논쟁에서 손을 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도민과 함께 한다며, 논쟁을 종식시켜 나가는 괜찮은 리더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대신 원지사는 제2공항 추진 의사를 밝혀온 국민의힘의 입장에 계속 편승하면서 내년 제주도지사 선거 보다는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를 더 의식하는 데로 나아가 버렸다. 이제 원지사는 유연한 이미지의 개혁적 소장파 리더격 정치인에서 본인의 비전만 옳다고 생각하는. 고집스러운 대통령병 환자가 되어 버렸다. 원지사가 괜찮은 전국적 정치인으로 쭉 성장해 나가길 바라는 많은 제주도민에게는 실망이고 아쉬움이다.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여론으로 정치하고,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하는 정치지도자가 이상향이신가보네요.
그런 쓰레기같은나라에서 살고싶으면 다른나라가세요.
이런기사가 자꾸 올라오니까 이나라가 쓰레기 처리장같이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