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로 돌아보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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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로 돌아보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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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현민재 / 서귀포시 표선면사무소
표선면 현민재ⓒ헤드라인제주
현민재 / 표선면사무소. ⓒ헤드라인제주

과거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그 방법은 한 유대계 장교를 스파이 혐의로 몰아 전쟁에서 패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법적 절차는 지켜지지 않았고, 각종 의문점들은 정부 차원에서 조작되어 은폐되었다. 그렇게 그 유대계 장교는 영화 ‘빠삐용’으로 잘 알려진 악마의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이후 이 사건은 장교의 이름을 빌려 ‘드레퓌스 사건’으로 알려졌다.

한 개인을 조작적으로 억압한 이 사건이 유명해진 계기는 프랑스의 유명한 비평가이자 저술가인 에밀 졸라 덕분이다. 당시 그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서한으로 프랑스 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 후, 편파적인 수사를 한 수사관들을 고발했고 홀로 재판에 서서 부당함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이에 반대 세력은 그에게 온갖 협박을 했고, 살해까지 하려고 했었다. 그는 결국 다른 나라로 망명을 선택했고 떠나면서 이러한 말을 남겼다. “내가 유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 프랑스는 나라의 명예를 구해준 나에게 감사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고독한 싸움을 6년을 지속했고, 그가 죽은 지 4년 뒤에야 드레퓌스의 무죄가 입증되면서 에밀 졸라가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졸라의 고발로부터 12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드레퓌스와 같이 개인을 핍박하는 사례가 수 없이 많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공직생활을 하면서 그러한 상황을 목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상황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고 상대가 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개인이 무참히 짓밟힐 때 부당함과 맞서 싸운 에밀 졸라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설령 지금 당장에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에밀 졸라의 역사가 증명했듯이 우리가 지나갈 세월을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나 또한, 전체가 개인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부당함을 마주했을 때 수년 전 에밀 졸라가 보여주는 용기를 되새기며 공직생활을 해나가겠다. <현민재 / 서귀포시 표선면사무소>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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