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무형 문화 유산, 수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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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무형 문화 유산, 수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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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68)역사 시대의 제주의 농업

제주 농업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지금까지 우리 제주의 선조들은 화산회토, 강한바람, 잦은 외부의 침탈 등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한 제주인의 삶의 방식으로 ‘수눌음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제주에서 농업이라는 행위가 이루어진 지 1000여년이 지났다. 이후 현대 기술문명, 정보화 및 시장의 세계화의 추세에 제주농업를 이끌어 왔던 수눌움 가치를 보듬아 보고 계승해 나갈 필요성을 느낀다.

수눌음의 언어적 의미는‘수눌어간다’는 뜻이 명사화된 제주의 말로 함께 품을 교환한다는 의미이다. 사전적 정의는 ‘품앗이의 제주 방언’, ‘제주지방에서 농사일이 바쁠 때 이웃끼리 서로 도와 일하는 풍속’, ‘제주도에만 있는 특수한 형태의 품앗이’ 등으로 해설된다. 이러한 정의들은 수눌음을 제주방식의 품앗이로 이해하게 하고 있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수눌음은 제주에서의 농업생산 공동체에서 행하는 관습으로 단순한 협업 노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제주 사회문화인 ‘수눌음’을 이해하기 위해선 제주도라는 시공간에서 형성된 특유한 제주인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간과하면 이해하기 힘 들것이다. 수눌음의 발생배경으로는 제주의 자연 환경과 국가 사회적 현상을 들수 있는데 특히 제주는 삼재도(三災島)로 수재(水災), 풍재(風災), 한재(旱災)로 흉년이 지속되었으며 돌이 많고 물이 지표 속으로 쉽게 스며들어 복류하는 화산섬이어서 논농사 중심의 집약적인 농업 양식은 적합하지 않았다. 대부분 화산토 경작지로써 밭농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농업 조건이었으며 밭농사의 특성상 여성이 적극적으로 많은 일을 하다시피 했다. 특히 농사일에서 제주도는 돌이 많고 물이 지표 속으로 쉽게 스며드는 화산섬이어서 논농사 중심의 집약적인 농업 양식은 적합하지 않았다. 대부분 화산토 경작지로써 밭농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농업 조건이었는데 홀로된 과부라 할지라도 옆집의 남성이 밭을 갈아주면 그에 상응하는 정도로 그 남성네의 밭에 김을 매주는 형식으로 수눌음이 행해졌다.

제주도의 각 마을은 몇 개의 소집단으로 나누어 서로 도우며 일하는 수눌음이라는 공동체 조직이 자발적으로 구성되어 운영되었는데 마을에 힘든 일이 있으면 일시적으로 집단이 형성되어 순번을 정하여 일을 돕는다. 집을 지을 때, 초가지붕을 올릴 때, 농번기에 김을 맬 때, 산에서 큰 나무를 끌어내릴 때, 방앗돌을 굴릴 때, 밭을 밟아줄 때, 마을길을 닦을 때와 같이 일시적인 공동의 일이나 농사일에 힘을 합하여 협조하는 모든 것을 흔히 ‘수눌음’이라 부른다.

이처럼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큰 태풍이 지나가도 제주의 밭담은 흔들리지 않듯이 제주의 공동체는 수눌음이라는 삶의 방식의 문화를 일구어 왔다. 제주의 밭담이 돌 각자가 제자리를 지키면서 돌의 이웃과 의지하고 서로 버티어 내는 연결체의 특성과 맞아떨어진다. 특히 제주에서 행해지는 밭농사는 힘을 요하는 밭갈이를 제외하면 남성 없이도 가능한 일들이 많다. 여성들은 수눌음을 통하여 여성 혼자서도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할 수 있었다. 마을에 힘든 일이 있으면 일시에 집단이 형성되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돕는다. 열 사람이 각자 자기 밭에서 열흘 동안 매야 할 일을 한데 모여서 매면 닷새 만에도 모든 밭을 맬 수 있다. 홀로된 과부라 할지라도 옆집의 남성이 밭을 갈아주면 그에 상응하는 정도로 그 남성네의 밭에 김을 매주는 형식으로 수눌음이 행해져 왔다.

이처럼 예전의 제주사회는 ‘수눌음’이라는 활동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마을 공동체를 운영하여 왔으며 수눌음으로 힘든 일은 서로 함께 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왔다. 수눌음은 일손을 함께 하는 협동노동을 넘어 마을 공동체가 개인의 안전망을 책임지는 역할도 하였던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수눌음을 바라보면 각자를 인정하는 공감과 배려,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하는 제주인의 정신이었고, 척박한 땅 제주도에서 서로의 삶을 지탱해나가는 버팀목이었고, 억압의 삶에서도 제주의 역사를 지켜 낼 수 있었던 몸부림의 실천이었다. 따라서 수눌음 정신은 제주 고유의 문화이며, 품앗이의 다른 명칭의 개념이 아니라 제주인들의 삶의 문화 개념일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령의 인구비울이 늘어나는 고령화,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양극화, 자기주장이 강하게 표출되는 개성화 등 사람들 간의 협력 관계를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한마디로 세상살이가 점점 더 각박해져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제주의 아름다운 문화인 제주의 수눌음 공동체는 요즘 발생하는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수눌음 정신을 계승한 공동체의 형성 및 유지는 사회구성원 간 소통의 부재로 발생하는 작금의 인권의 문제들을 극복 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 제주의 수눌음 문화는 지금의 시점에서 오래된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제주에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눌음 정신이 있었으며 우리 제주인 마음속에는 조상대대로 내려왔던 수눌음 유전자는 여전히 내재하여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인구가 팽창하며 각박해져가는 작금의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네 일과 내 일 선을 긋지 않고 함께 나가는 제주의 수눌음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초가지붕 올리기 수눌음 모습과(사진 왼쪽), 마늘수확 수눌음 활동 모습.
초가지붕 올리기 수눌음 모습과(사진 왼쪽), 마늘수확 수눌음 활동 모습.

최근 들어 수눌음의 가치가 새롭게 계승되어지고 있다. 수눌음은 농사 뿐 아니라 제주인들의 생활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마을에 큰 일이 있으면 일시에 집단이 형성돼 순번을 정해 도우면서 정서적 연대로 이어졌다. 지금도 농촌 경조사에서는 마을 주민 모두 십시일반 돕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수눌음은 단순한 노동력 교환, 협업 이상의 의미를 지니면서 제주 공동체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수눌음은 철저하게 사적 소유가 강화되고 임금노동 체제로 전환된 현대 농업 시스템으로 인해 과거처럼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현대에 와서 수눌음은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사회적 연대로 재해석되면서 제주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국가적 재난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수개월째 전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으로 제주에서는 동남아 등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지연되면서 제주 농촌지역이 인력난을 겪는 과정에서 수눌음 실천이 이어졌으며, 농업인들의 자율적 감귤 열매솎기 등 농업분야 만이 아니라 사회의 현대화로 한한 육아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마을별 육아 프로그램 공동 운영, 마을 정원가꾸기,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기 위한 성금과 구호물품 기탁, 자원봉사 등도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어려움이 생길 때 제주인들에게는 수눌음 DNA가 발현되는 것 같다. 우리에게 각인된 수눌음 정신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주위를 살펴주고 배려하는 마음의 긍정적인 힘을 믿게 한다.

인터넷, 스마트톤, 인공지능 등 진화된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대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사람 사이의 진정성 회복의 가장 좋은 예방과 치료제가 제주의 전통 공동체 문화인 ‘수눌음’으로 제주 농업의 무형 유산으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제주의 전통 협업문화 수눌음의 계승·발전은 사회 갈등의 문제들을 해소 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생활속에서 수눌음 문화를 접목시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수눌음의 불씨를 다시 살려 키워내야 한다.

또한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중요한 제주의 무형문화 유산이다. 우리들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수눌음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를 가르쳐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원 등을 두루 거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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