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욕구와 환경이 배제된 보조기기 처방,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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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욕구와 환경이 배제된 보조기기 처방,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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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 김용조 / 제주장애인보장구수리지원센터
김용조/ 제주장애인보장구수리지원센터.ⓒ헤드라인제주
김용조 / 제주장애인보장구수리지원센터. ⓒ헤드라인제주

현재 재직 중인 제주장애인보장구수리지원센터에서는 장애인의 신체 기능을 보조하는 보조기기를 수리하는 일을 한다. 이일을 하다 보면 많은 보조기기 이용자들을 만날 수 있다.

최근 상담한 내용 중 제주시 애월읍에 사는 이용자는 수동휠체어를 타다 어깨에 점점 무리가 와서 전동휠체어 처방을 받기 위하여 병원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도수근력 검사 상 기준 이상의 근력이 있다는 이유로 전동스쿠터는 처방이 되지만 전동 휠체어 처방을 받지 못하였다. 이 이용자가 만약 전동 휠체어를 처방받게 되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바로 전동휠체어로 옮겨 탄 후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슈퍼마켓에서 전동휠체어로 손님의 물건을 찾아주고 물건을 배치하는 등의 업무를 할 수 있었지만 불가능해졌다. 이용자가 바랐던 소박한 일상이 사라졌다.

제주시 화북에 사는 또다른 이용자는 사회복지기금에서 지원받은 전동휠체어를 10여 년간 사용하다 더 이상 고칠 수 없어 전동휠체어를 처방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지만 위 사연과 같이 전동스쿠터를 처방받았다. 10여 년간 이용하며 몸에 익힌 보조기기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되니, 이미 전동휠체어를 처방받거나 지원을 받은 이용자들도 다시 전동휠체어를 처방받을 수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가 무엇이 다르기에 문제가 되는 것 일까?

전동휠체어는 모터가 2개로 회전폭이 좁아 좁은 공간에서도 사용 가능하며, 조이스틱과 버튼을 사용하여 조작하기 때문에 편리하고 실내 실외에서 모두 이용이 가능하다.

전동스쿠터는 모터가 1개로 회전 폭이 크고 조이스틱이 아닌 휠을 이용하기 때문에 조작도 어렵다. 회전폭이 크고 스쿠터의 크기 또한 크기 때문에 출입문, 엘리베이터, 화장실 등을 이용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지금의 처방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의 처방 조건은 아래와 표와 같다.

출처 : 장애인보장구 보험급여 기준 등 세부사항 [별표 2] 보험급여 지급 대상자 기준 중 지체장애 부분.
출처 : 장애인보장구 보험급여 기준 등 세부사항 [별표 2] 보험급여 지급 대상자 기준 중 지체장애 부분.

뇌병변장애, 지체장애, 심장장애, 호흡기장애 기타 중복 장애인으로 보행 장애로 100m이하 보행을 하지 못하여야 하고 양쪽 상지 중

▶ 전동휠체어는 한쪽 상지의 근력 등급이 0~3등급이 되어야 하며

▶ 전동스쿠터는 한쪽 상지의 근력 등급이 4~5등급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 급여 대상의 차이는 상지의 장애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상지기능이 일부 있으면 전동스쿠터를, 없다면 전동 휠체어를 지급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와 환경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일률적인 근력 검사로 처방이 되고 있다. 상지기능이 일부 있으면 실내에서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이 불가능한 전동 스쿠터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편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왜 더 고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서비스여야만 하는 것인가?’

‘왜 이미 사용하고 있는 전동휠체어를 다시 처방받지 못할까 불안해해야 하는 걸까?’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이 배제된 보조기기 처방 이대로는 안 된다.

# 당사자의 욕구와 환경에 대한 처방이 필요

보조기기는 장애인에게 ‘몸의 일부’이다.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 타는 자동차와 달리 보조기기는 편리를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필수품이다. 내가 원치 않는 보조기기를 처방받거나 이미 타고 있는 보조기기를 다시 처방을 받지 못한다면 ‘몸의 일부’를 잘라내는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현재 진행 중인 일률적인 처방이 아닌 장애인 당사자가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는지, 위험한 부분은 없는지 등을 체크하여 장애인 당사자에게 맞는 처방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며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전동휠체어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보조기기에도 같은 맥락의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보조기기를 처방하여 지원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 안전하게 이용하고 있는지, 불편한 것은 무엇인지 등의 모니터링과 지속적인 지원, 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안전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 개선을 통해 이용자가 더 이상 처방 때문에 마음 졸이며 살지 않고 당사자의 욕구와 환경에 맞는 보조기기를 이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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