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불법군사재판 '억울한 옥살이', 72년만에 '재심' 개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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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불법군사재판 '억울한 옥살이', 72년만에 '재심' 개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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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4.3수형인 8명 제기 재심청구 수용 결정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 투옥..."재심 필요성 인정" 
재심을 청구한 제주4.3수형희생자와 유족들이 8일 재심 개시 결정에 따른 입장을 밝히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재심을 청구한 제주4.3수형희생자와 유족들이 8일 재심 개시 결정에 따른 입장을 밝히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72년 전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 불법 군법회의를 통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구순의 4.3수형인에 대한 재심이 개시된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는 8일 오전 10시 법원 201호 법정에서 4.3수형인들이 제기한 재심청구에 대해 모두 수용하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월 선고됐던 4.3수형인들의 1차 재심에 이어, 두번째 재심이 열리게 됐다.

재판부는 "재심제도는 피고인의 인권보호를 위한 최후의 법적 권리 보장 수단일 것"이라며 "김두황 할아버지 등 재심 청구인들이 4.3 당시 불법 구금이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공통되게 증언한 점, 수형인명부 기재에 의하면 두번의 군법회의로 2천여명이 군사재판을 받았다고 돼 있고, 그 짧은 시간에 수천명의 사람이 적법하게 구금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했다"며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어 "(피고인들의 경우) 70년이 넘은 과거의 일에 대해 재심개시의 사유를 엄격하게 따질 경우, 자칫하면 재심제도가 있는 이유나 정의의 관념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 일반재판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김두황 할아버지(92)에 대해서는 "당시 법이 정한 최대 구금일은 40일이나 이를 초과했고, 계산해 봐도 불법 구금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불법 구금이나 가혹행위 같은 범죄가 있었다"며 재심개시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날 재심 개시 결정문을 낭독하며, 재심 청구인들 가운데 일부가 재판 도중 별세한 것과 관련해 유감의 뜻을 표현했다.

재판장인 장찬수 부장판사는 "재판 종류를 불문하고 사유가 있는지 관한 여부 심리하는 것이 재심 청구 재판"이라며 "재판 도중 (일부 생존수형인이) 작고하신 것은 재판부도 마음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청구인 입장에서는 재심 결정이 늦어진 것이)게을렀다고 생각할수도 있을 것"이라며, 생존수형인의 별세 에 대해 "마음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에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진 수형인은 총 8명으로, 이중 7명은 불법 군사재판으로, 1명은 일반 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군법회의 피해 청구인은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의 김묘생 할머니(92)를 비롯해, 김영숙(90. 제주시), 김정추(89. 부산시), 송순희(95. 인천시) 할머니와 장병식(90. 서울) 할아버지, 그리고 지난 3월과 7월 타계한 고(故) 변연옥 할머니(향년 91세. 경기도 안양)와 고 송석진 할아버지(향년 94세. 일본 도쿄) 등이다. 

불법군법회의 사례의 경우 지난해 열렸던 1차 재심에서 모두 무죄취지의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진 바 있는 만큼 이번 재심에서도 무죄 취지 판결이 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함께 재심이 결정된 김두황 할아버지와 같은 4.3관련 일반재판 재심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할아버지의 경우에도 검찰이 "판결문이 존재하므로 유죄 확정 판결이 존재하고, 경찰관들로부터 불법구금, 고문을 당하는 등 수사기관의 불법체포 감금 또는 폭행 가혹행위의 존재가 입증되므로 형소법 제420조 제7호 등에 따라 재심사유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무죄취지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한편, 4.3당시 영문도 모른채 군.경으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최소한의 적법한 절차도 없이 불법적으로 행해졌던 계엄 군사재판의 '초사법적 처형'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제주도민 4.3수형인은 약 253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상부명령에 따라 집단처형(총살) 됐거나 행방불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번에 청구인 중 김묘생 할머니는 18살때인 1949년  표선면 가시리 마을 인근 동굴에 숨어있다가 잡혀 고문과 구타를 당하고 전주형무소로 끌려가 옥살이를 했다.

김영숙 할머니도 18살 때인 1948년 제주시 영평리에 부모님과 살다가 소개령으로 집이 불타면서 살 곳이 없어 제주시 남문통으로 내려왔다가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한 후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

김정추 할머니는 17살때인 1948년 서귀포시 하효 집에 있다가 동네 노인단장에게 끌려간 후 서귀포경찰서로 잡혀갔다. 조사과정에서 동네에서 해녀모집을 하면서 명단에 손도장을 찍은 것이 이유였다. 

고 변연옥 할머니는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출신으로, 19살때 산에서 겨울을 나면서 장티푸스에 걸렸고, 봄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합류에 산에서 내려갔다가 경찰에 붙잡혀 전기고문을 받고 전무형무소로 수감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고 송석진 할아버지는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출신으로, 22살때인 1948년 이유도 모른채 관덕정 쪽 경찰서로 끌려가 구금됐다가 목포형무소로 이송돼 수감됐다. 그는 배에 태우니 그때서야 형무소에 끌려간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순희 할머니는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출신으로, 23살때인 1948년 겨울 딸을 업고 시어머니와 산에 피신해 있다가 토벌대에 잡혀 끌려간 후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누명이 씌워진채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 

장병식 할아버지는 제주시 이도동 한짓골 출신으로, 1948년 집에 가던 중 서북청년단에 의해 끌려가 쇠파이프 등으로 구타를 당하고, 죄명도 모른채 인천형무소로 이송돼 수감됐다. 

일반재판 수형인인 김두황 할아버지는 스무살 때인 1948년 11월 16일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소재 집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조사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구타와 폭행이 이뤄졌고 심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그를 취조하던 경찰은 총을 겨눠 죽인다면서 협박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해 11월 30일쯤 일반재판이 열렸으나 판사는 질문도 하지 않았고, 그에게 진술할 기회도 주지 않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는 목포형무소로 이송돼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그의 판결문에는 '1948년 9월 25일 오후 8시45분께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면 난산리에서 김두홍의 집에서 김관삼 등 6명과 무허가 집회를 열고 폭도에게 식량을 주기로 결의됐다'고 적시돼 있다. 그러나 이번 재심청구 심리과정에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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