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의 제주 미래담론] (14)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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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현의 제주 미래담론] (14)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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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헤드라인제주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헤드라인제주

올 추석은 비대면이 일상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매년 추석 때마다 북새통을 이루었던 인천공항은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다. 개천절 날 기획되었던 광화문 시위도 사실상  코로나19로 인해 무산된 거나 다름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이제부터  연휴는 집콕이 대세가 되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드코로나의 비대면은 우리네 삶을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다. 

추석 연휴의 비대면 상황에서도 우뚝선 이가 있으니, 타칭 가황이라는 나훈아다. 54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나훈아는 유달리도 노래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심금을 들었다 놓았다한 대표적인 가수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대면 공연을 가졌는데, 기대 이상의 대박을 쳤다. 노개런티 공연라는 칭송과 시청율 29%라는 박수 세례가 총 30곡을 열창한 나훈아의 수고에 보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대한민국 어게인>이라는 온라인 콘서트를 통해 나훈아는 노래 못지 않은 촌철살인으로 시청자들에게 위안과 격려 그리고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세상이 왜 그래?'라고 소크라테스에게 묻는다고, 딱히 설득력 있는 대답이 올리는 만무하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네 민초들은 항상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세상인데, 코로나19는 설상가상이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하늘만 쳐다 볼 수는 없는 게 아닌가. 

나훈아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어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그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수준은 되어야 할 게다. 그만큼 보통 사람으로는 쉽지 않은 경지이다. 그러니 특정의 누구인가에 너무 기대지는 말자.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핍박할 거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차근차근 주위를 잘 찾아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목숨을 걸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국민과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는 정치인은 꽤 있으리라 본다. 뭉뚱그려  '한 사람도 없다'는 냉소로는 미래가 없다. 한 사람이라도 더 찾아내어 서로 격려하고 공유하는 데서 세상의 평온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킨 건 바로 국민 여러분'이라는 게 <대한민국 어게인>의  주제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나훈아의 입담에 덩달아 춤을 추는 정치권의 추태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언론과 정치권의 짝짜꿍에는  '코로나에 지친 국민을 어떻게 달랠까'의 지혜 모음은 전혀 없다. 정말 목숨을 건 정치인이 한 사람도 없다면, 그건 여야 모두에게 해당될 터이다. 언론과 정치권이 자숙하면서 책무를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게, 나훈이와 함께 한 우리네의 추석 민심일 게다. 

정치를 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치인과 국민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닐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악한 정치인과 착한 국민이라는 선악적 대비는 우리의 삶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정치인을 비하함으로써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그렇다. 정치인도 국민이다. 우리가 우리네 중에 선출한 장삼이사이다. 정치인이 특별한 사람이길 요구하는 도덕주의적ㆍ영웅주의적 접근은 정치에 대한 냉소와 인간에 대한 불신만 낳을 뿐이다.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의 원리를 담고 있어서 국민을 지존으로 소환하는 데 페 유용한 정치이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작동하는 민주정은 정당정치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다당제 정당정치를 의도하는 한, 현실의 정치인은 국민을 위한다면서도 파당으로서의 정당 메카니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정당 후보로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서 정치인은 정당인이라는 신분을 무시할 수가 없다. 소속 정당이 살아야 정당인으로서 선거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정당을 선택기준으로 삼는 투표행태가 유효하게 작동하는 한, 정치인에게 국민과 정당은 모두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정당의 생존은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와 지지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정당인은 항상 국민들을 향할 수밖에 없다. 그 정도는 모든 정당정치는 민주성을 담보한다.  이쯤되면 정당인은 국민에게 목숨을 거는 만큼이나 정당에도 목숨을 건다고 볼 것이다.

그래서 주권재민은 반만 맞는 원리가 되고 마는 게, 현실 정당정치의 민낯이다.

나훈아의 온라인 콘서트는 위드코로나 시대에 부응한 새로운 시도라 박수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정치를 영웅주의적 접근으로 회화화하는 발언은 콘서트의 취지를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세상이 왜 이런지 답답할수록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 지를 찾는 과정에서 정치인들에게 어떤 헌신을 요청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 의한 위대한 시대를 꿈꾼다면, 차라리 정치인에 대한 특별한 기대를 대폭 줄이고, 오히려 정치인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깨어있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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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2020-10-06 18:17:33 | 119.***.***.32
현 정치인들의 정당정치에 기대해볼게 없으니 결국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군요. 이 나라를 어려움에서 구한건 임금이나 대통령이 아닌 국민이 해냈다는 나훈아형의 말과 일맥상통...세상이 정말 왜 이래?

공감 2020-10-06 10:00:11 | 175.***.***.151
나훈아가 정치인 보다 훨씬 낫다

가왕 2020-10-06 09:39:26 | 39.***.***.120
와 !! 교수님의 센스가 만땅입니다. 추석연휴 15년만에 나타난 가황 나훈아의 테스형이 많은 이슈를 낳고 있는데, 적절한 비유로 핵심을 때리고 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