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산상방목과 잣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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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산상방목과 잣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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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60) 역사속의 제주농업문화

탐라(耽羅)의 개국신화에 송아지, 망아지의 기록으로 보아 제주 선주민들은 소나 돼지를 그들의 생활공간에서 기르는 것을 좋아하여 소규모 목축이 농경보다는 유리하였을 것이다. 제주에서의 본격적인 목축은 고려 말 몽골이 '탐라목장'을 설치해 군마를 기른 것에서 시작된다. 조선시대 초에는 탐라목장을 개축한 '제주한라목장'을 설치해 지속적으로 확장했지만, 임진왜란 이후에는 운영이 부실해 지면서 숙종 30년(1704)에는 십소장(十所場)으로 개편됐다. 십소장으로 개편됐을 당시에도 말 2만여필이 사육됐던 것으로 추정되어 다른지방에 비해 목축업이 성행하였다.

각종 개발사업과 축산업 쇠퇴 등 영향으로 점차 그 규모가 축소되고 있지만 대표적인 목축문화로서 제주 목축업은 우선 상산방목, 방앳불 놓기 등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우선 육지부에서 상상을 못할 상산방목을 보면 예전 제주의 축산활동에 있어서 완만한 제주의 지형지물을 이용 하여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러한 산상방목의 역사적 흔적은 조선시대에 제주 지역의 중산간 목초지에 만들어진 목장 경계용 돌담인 잣성이다. 또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에서 매년 개최되는 들불 축제는 목축 문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

제주선인들은 험난한 자연환경을 인내와 도전 정신으로 극복하여 왔고, 또 자연에 순응하며 지혜롭게 역사를 일구어 오는 동안 제주만의 독특한 민속 문화를 잉태하여 왔다. 이러한 제주선민들의 옛 생활풍속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계승, 발전시킨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는 제주의 전통 민속이 살아 숨 쉬는 독특한 축제로, 국내 도시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중국 등 국제 자매도시가 함께하는 축제로 발전하였다.

제주의 중산간 마을에서는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가가호호 두세 마리 정도의 소를 기르고 밭을 갈아 왔으며, 농번기가 끝나면 중산간 지역 마을 공동목장에 소를 방목했다. 봄에는 마을마다 소를 기르는 가구들이 윤번제로 돌아가며 아침 일찍 소를 끌고 야초를 먹이러 다니던 풍습이 흔했다. 그런데 소를 모아 풀을 먹이려면 초지 관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제주선민들은 중산간 지역에 있는 양질의 목초가 자란 들판을 찾아다녀야 했다.

이를 위해 제주선민들은 중산간 초지의 해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늦겨울에서 초봄 사이 들판에 마을별로 불을 놓았다. 이렇게 불을 놓는 것을 ‘들불놓기’라 했으며, 제주어로는 ‘방애(화입) 놓는다’라고 했다. 화입을 하고 나면 목야지가 깨끗해지고 진드기 등 병충해가 없어질 뿐 아니라 불탄 잡풀은 재가 되어 그 해의 목초를 연하고 부드럽고 맛을 좋게 해 소와 말들을 살찌웠다. 이러한 목축업 행위가 드디어 1997년에 제주시(당시: 북제주군)에서 새해 첫 대보름날을 맞아 드넓은 목야지에 큰 불을 놓아 무사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조화 속에서 무한한 행복과 복을 염원하기 위해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선조들의 목축생활의 흔적과 요즘 세대의 기원 문화가 맞아 떨어져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는 문화관광부 지정 우수축제로 지정되면서 국내·외 관광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제주의 대표축제 '들불축제' 모습과 제주의 산상방목 목축문화 모습.
사진 왼쪽부터 제주의 대표축제 '들불축제' 모습과 제주의 산상방목 목축문화 모습.

제주들불축제는 가축 방목을 위해 중산간 초지의 해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마을별로 늦겨울에서 초 봄 사이 목야지 들판에 불을 놓았던 '방애'라는 제주의 옛 목축문화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현하여 관광 상품화한 문화관광축제이다.

대표적인 목축유산으로는 제주도민들이 잣 또는 잣담이라 부르는 잣성은 1970년대 제주도 지형도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용어이다. 고려시대 원 간섭기에 대규모 목마가 시작되었고, 조선 시대엔 최대의 말 공급지로서 부각되며 사람보다 말 중심의 ‘마정(馬政)’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 초까지 말을 키우기 위한 목장이 경작지가 있는 해안가 평야 지대를 비롯한 섬 전역에 흩어져 있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고 있었다. 이에 고득종(高得宗)이 한라산 중턱으로 목장을 옮기고 경계에 돌담을 쌓을 것을 건의하였다. 이 건의가 수락되어 1429년(세종 11) 8월 중산간 지대에 목장 설치가 착수되어 이듬해 2월에 완성되었다.

이때 목장을 10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하는 10소장(所場) 체계가 갖추어졌다. 그리고 국영 목장인 10소장 위·아래 경계에 돌담을 쌓았는데, 이를 잣성이라 한다. 잣성은 하잣성, 상잣성, 중잣성 순으로 건립되었다. 하잣성은 15세기 초반부터 축조되었고, 상잣성은 18세기 후반부터 축조되었으며, 중잣성은 축조 시기가 명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들 잣성들은 대체로 두 줄로 쌓은 겹담 구조이다. 축담 후에 말들이 장내가 좁아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없고 먹을 풀이 모자라 야위고 죽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담을 허물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말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목장 사이 돌담을 군데군데 허물었을 뿐 대부분 그대로 두었다.

잣성은 위치에 따라 제주도 중산간 해발 150m~250m 일대의 하잣성, 해발 350m~400m 일대의 중잣성, 해발 450m~600m 일대의 상잣성으로 구분된다.

하잣성은 말들이 농경지에 들어가 농작물을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상잣성은 말들이 한라산 삼림 지역으로 들어갔다가 얼어죽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잣성은 하잣성과 상잣성 사이에 돌담을 쌓아 만든 것이다. 잣성은 십소장에서 한라산 방면 상한선과 해안가 방면 하한선으로 구분돼는데, 기르던 말이나 소가 한라산 산림지역으로 들어가는 일을 막거나 농경지로 들어가 피해를 입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축조돼 현재까지 대부분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조선시대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국영 목장이 설치되었음을 입증하는 역사적 유물인 동시에 제주도의 전통적 목축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러한 제주의 잣성은 제주도에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역사 유물이자, 단일 유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선형(線形) 유적으로서 보존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목축 생활의 근거지가 되었던 마을공동목장이다. 제주도내 마을공동목장은 고려 말 몽골이 '탐라목장'을 설치해 군마를 기른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 초에는 탐라목장을 개축한 '제주한라목장'을 설치해 지속적으로 확장했으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운영이 부실해 지면서, 숙종 30년(1704)에는 십소장(十所場)으로 개편됐다.

십소장으로 개편됐을 당시에도 2만여필의 말이 사육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말 갑오개혁으로 공마제도가 폐지되면서 국마장(한라목장)은 폐장되면서 그 자리에 마을이 형성됐고, 일제강점기 우마증산 정책에 따라 1930년대 110여개의 공동목장조합이 마을단위로 설립됐다. 이후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지금은 50여개의 마을공동목장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 공동목장에서는 순환방목과 상산(上山)방목 등 제주의 전통방식의 목축문화가 이어져 왔다. 순환방목은 목장을 여러개의 구역으로 나눠 목초의 상태에 따라 구역을 이동하며 방목하는 방식이고, 상산방목은 여름철 진드기와 더위를 피해 한라산 백록담 남사면 초원지대까지 몰고가 서늘한 곳에서 방목하는 방식이다.

사진 왼쪽부터 제주 삼현도의 10소장 모습과 제주 목장의 경계 잣성 모습.
사진 왼쪽부터 제주 삼현도의 10소장 모습과 제주 목장의 경계 잣성 모습.

제주의 목축의 역사는 대표적인 목축문화인 상산방목, 방앳불 놓기, 대표적인 목축유산인 잣성, 목축 생활의 근거지가 되었던 마을공동목장 등을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제주의 목축역사 유형, 무형의 문화의 체계적인 보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세계유산자연본부(2017), <강만익, 한라산의 목축생활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원 등을 두루 거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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