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중증장애학생들과 수업하며 마주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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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중증장애학생들과 수업하며 마주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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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이야기] 고은경/ 제주장애인야간학교
고은경/ 제주장애인야간학교 ⓒ헤드라인제주
고은경/ 제주장애인야간학교 ⓒ헤드라인제주

대학에서 아동생활복지학을 전공한 후 제주장애인야간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전공이 아동과 관련된 전공이다 보니 아동을 대하는 듯한 말투와 행동이 나도 모르게 배어있었고 야간학교에서 처음 일할 때도 성인 중증장애학생에게 그런 말투와 행동이 그대로 나왔다. 그래서 제일 먼저 지적받은 것이 ‘아동을 대하는 듯한 말투와 행동을 바꿔’보라는 것이었다. 야간학교에 다니는 중증장애학생을 그 무엇도 아닌 동등한 ‘한 인격체’로 보고 대하라는 의미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엔 멍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저 익숙한 말투지만 성인 중증장애학생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 다른 문제는 교육자료에도 있었다. 야간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맡았던 수업이 장애인 평생교육 중 성인문해 수업이었는데, 성인 중증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아동교육포털사이트에서 자료를 받아서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동교육포털사이트에서 받은 수업자료로 수업을 진행해보니 성인 중증장애학생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빨리 끝내주라는 뉘앙스의 말을 건네곤 했다. 그러다 한 학생이 “너무 쉬워요”, “이건 재미없어요~”라고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니 그땐 정말 아동용 교육자료가 성인 중증장애학생에게는 맞지 않는구나 깨닫고 다른 자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어떤 자료로 공부하는 게 좋은지에 대하여 학생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양한 방식의 수업을 고민했다. 책으로 진행하는 수업, 영상 수업, PPT 수업, 그리고 외부활동 중에 무엇이 좋은지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랬더니 영상 매체를 이용한 수업, 그리고 PPT 자료를 활용한 수업, 마지막으로 외부활동이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다. 따라서 직접 PPT 자료를 만들어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관련 영상을 찾아 함께 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한 달에 한 번은 외부로 나가서 주제에 맞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성인중증장애인 교육은 자립생활의 관점에서 고민하고 계획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중증장애인의 실생활에 필요한 교육으로 접근하여 교통안전교육을 한 달간 운영했다. 먼저 PPT와 영상을 통해 안전한 보행방법과 교통안전 표지판에 대해 학습했다. 이후 직접 안전하게 길을 건너보고, 신호등과 교통안전 표지판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직접 경험 이후에 교통안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학생들은 더 많은 정보를 기억했다. 실제적인 경험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된 계기였다.

늘 수업 준비를 하면서 장애인평생교육을 위한 교육자료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운영 중인 생활문해과목의 수업교재는 비장애인 성인 문해학습자를 위한 교재다. 성인문해교재는 성인중증장애인의 특성에 맞지 않아 장애특성과 정도에 맞는 교재를 선정하여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성인중증장애인을 위한 교육은 체계화되지 않아 성인중증장애인을 위한 교육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걸 항상 느낀다.

이러한 나의 경험을 통해 장애인평생교육 운영 시 개선할 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성인중증장애인의 장애특성과 정도를 고려하여 대상의 수요를 조사하여 맞춤형 교구, 교재를 개발해 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성인중증장애인 중 발달장애학생은 쉬운 글과 그림을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따라서 성인 중증장애학생을 대상으로 한 그림 위주의 교재 개발의 필요성을 느낀다. 더불어 직접 경험이 힘든 성인중증장애인이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시청각자료의 다양화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둘째, 장애인평생교육을 위한 충분한 예산지원과 강사양성이 필요하다. 장애인평생교육은 장애영역별 프로그램 예산과 지원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할 것이며, 또한 성인 중증장애학생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지도할 수 있는 강사의 양성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장애인 평생교육을 위한 환경 및 편의시설 개선이 필요하다. 성인중증장애인의 학습은 접근성과 편의시설이 확보된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승강기와 경사로, 장애인용 주차장, 그리고 장애인용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이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통학용 특장차량을 이용하는 등 성인중증장애인의 통학을 위한 적절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학습의 권리는 누구나 동등하게, 그 어떤 차별 없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성인중증장애인에게도 학습의 자유와 권리가 완벽하게 제공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고은경/ 제주장애인야간학교>

<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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