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언론보도와 인권...'강남 모녀' 명명, 적절했나
상태바
코로나19 언론보도와 인권...'강남 모녀' 명명, 적절했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언론학회 '취재현장에서의 인권' 학술세미나
"고유정 사건, 일부 언론 도 넘은 선정적 보도 문제"
제주언론학회와 제주도기자협회, PD연합회 제주지부,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공동 학술세미나 '취재현장에서의 인권'.ⓒ헤드라인제주
제주언론학회와 제주도기자협회, PD연합회 제주지부,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공동 학술세미나 '취재현장에서의 인권'. ⓒ헤드라인제주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언론보도에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은 제대로 보호됐는가.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고유정 사건 보도에서 인권보도준칙은 어느 정도 지켜졌을까.

사단법인 제주언론학회(회장 최낙진)와 제주도기자협회(회장 박정섭), PD연합회 제주지부(지부장 김영미),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회장 홍창빈)는 7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 인권교육센터에서 '취재현장에서의 인권'을 주제로 공동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언론현장에서 언론인들이 경험하고 목도한 인권 침해 현장을 생생하게 들어봄으로써 인권 실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학술적으로 접근해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 감수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세미나에서 이승선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언론 밖에서 본 취재보도 대상으로서 사회적 소수자 인권의 문제' 주제발표에서 제주지역 일간지의 보도에서 나타난 인권 감수성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한국기자협회 등의 보도준칙 등을 기준점으로 해 제주 일간지 보도에서 나타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 편견 등의 인격권 침해 소지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기본권이 적극적으로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했다.
 
제민일보와 한라일보 보도기사를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 먼저 지난 1월 말 4박5일간 제주도를 여행한 후 귀국한 뒤 확진 판정을 받은 중국인 관련 보도에서 나타난 문제를 들었다.

이 교수는 "기사 제목에서 ‘우한폐렴’이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일부 기사에 여전히 ‘신종 코로나’ 대신 ‘우한폐렴’이라는 표현이 나타나기도 했다"면서 코로나19 확산초기 감염병 용어에서 '우한'이라는 지역명을 사용한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이미 WHO는 감염병을 보도할 때 ‘지역명’을 붙여서 보도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권해 왔다"면서 "우리의 재난보도 준칙이나 인권보도 준칙 등에서도 충분히 이를 숙지할 수 있고 이번 사안에서도 기자협회 등이 이 점을 호소해 왔다"고 강조했다.

또 "제주 언론은 중국인 관광객의 귀국 후 확진 판정으로 인해 제노포비아가 확산되고 있다거나 ‘혐중’ 정서가 확산되어 제주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우려가 크다는 내용의 기사도 전달했다"며 "이러한 내용의 기사에 중국인의 방문을 제한하거나 방문하지 말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써 붙인 상점들의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진 게재 기사가 언론이 주목하고 경계하려던 제노포비아, 혐중 정서의 확산에 의도하지 않은 ‘매개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제주지역에서 ‘혐중’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거나 ‘중국인 출입금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기사를 다룰 때 게재하는 관련 사진들이 오히려 선정성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증을 확산,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경계를 늦추면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제주도 1~3번째 확진자 보도에서는 '제주도 사람'이 아니라 '대구출신이거나 대구가 고향이거나 대구에서 내려 온 사람'이라는 성격을 부여한 것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이 교수는 "이들과 접촉한 제주도민에 대해서는 ‘택시기사 B씨’ 정도로 표현한 반면 첫 번째 확진자는 ‘해군 00대대에 근무하는 22살의 상병으로 대구출신 고향인 대구를 방문’했고, 두 번째 확진자는 '서귀포시 00호텔에 근무하는 0000으로 22살의 여성이며 대구출신으로 본가인 대구를 방문했다'고 기사화했다"고 지적했다.

또 "첫 번째 확진자에 대한 정보를 게시하면서 신천지 교회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등 ‘비(非)도민 1~3번 확진자-대구출신-신천지’ 등을 연상케 하는 기사정보를 구성했다"면서 "감염병의 예방과 관리, 치료를 위해 필요한 정보 이상의 과도한 사적 정보가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보도 원인은 질병관리기관이나 제주도 행정기관의 정보 제공 형태에 둘 수도 있으나 사회적 재난인 ‘감염병’의 취재보도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관행적으로 개인 신상정보를 처리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소위 '강남모녀' 등으로 명명됐던 제주도 여행 후 서울에서 확진판정을 받은 이들에 대한 보도의 문제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언론보도에서는 확진판정을 받은 서울 거주자 A씨 일행을 “강남모녀”라고 보도했다"며 "4명의 여행객 중 어머니인 A씨와 그의 딸 두 사람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특성이 있으나 이들을 ‘강남모녀’라고 명명하는 것이 언론보도에 적절했는가, 하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감염 위험에 대한 확인과 제거, 그러한 행정적 조치와 행정적 조치가 적절한가에 대한 언론의 감시보도는 이들을 굳이 ‘강남모녀’, 즉 서울의 부자동네에 사는 '철없는 딸과 철없는 딸의 어머니'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강남모녀’라고 호칭하지 않더라도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행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제주도 14번 확진자 관련해 "제주 언론들은 첫 보도를 한 5월 9일 밤부터 24일까지 보름여 동안 제주 언론은 ‘이태원발’, ‘이태원 클럽’, ‘이태원 클럽발’, ‘킹클럽’, ‘이태원 여파’, ‘이태원 방문’ 등의 제목을 붙인 기사를 내보냈다"면서 "이러한 표현은 ‘성적 지향’ 혹은 ‘성 소수자’에 관한 내용의 기사로 읽힐 수 있다는 점, 성적 지향을 암시한 이러한 보도가 방역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 방역보다는 성 소수자에 대한 호기심이나 편견,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 등을 신중하게 살펴야 했다"고 피력했다.

이 교수는 이와함께, "기사에 사용하는 사진, 자료가 보도 대상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하는지, 혹은 기사의 원래 의도와 달리 오히려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거나 보도의 선정성을 초래하지 않는지 늘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19 관련 언론보도에 있어서, 특히 여성 확진자, 이를테면 제주2번과 제주14번 확진자에 대한 제주 언론의 보도는 가혹하고 재난보도, 감염병보도, 코로나19보도, 인권보도 준칙 등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소수장의 인권 보장이 더욱 강화될 수 있도록 인권 감수성 제고를 위해 노력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이승선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언론 밖에서 본 취재보도 대상으로서 사회적 소수자 인권의 문제'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이승선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언론 밖에서 본 취재보도 대상으로서 사회적 소수자 인권의 문제'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고유정 사건 보도, '보도준칙' 제대로 지켜졌나

앞서 제1부에서는 언론인들이 현장에서 접한 인권의 문제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고상현 제주CBS 기자는 '고유정과 언론'이라는 주제발표에서 고유정 사건 언론보도에서 한국기자협회에서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을 무색케 하는 자극적이고 선정적 보도 등이 적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 대표적 사례로 한 중앙언론이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살해방법 등의 내용을 여과없이 거의 그대로 공개한 보도를 들었다. 그는 "단독 보도라는 이 기사의 내용은 경찰과 검찰이 피해자 유가족이 받을 상처를 염려해 공개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면서 "그럼에도 이 기사는 범행 당시 피해자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까지 적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중앙언론에서 내보냈던 <"고유정 카레에 수면제 섞어 182cm 전 남편 고꾸라졌다"> 기사도 부적절한 보도 사례로 지적했다. 

사건 초기 범죄 발생의 원인이 피해자 측에 있는 것처럼 기사를 쓴 사례도 문제의 보도 사례로 언급했다. 고유정측의 주장내용만을 근거로 해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중앙의 한 방송매체에서 보도했던 <[단독] 고유정 "전 남편이 성폭행하려 해 살해">라는 기사의 문제도 지적했다. 고 기자는 "이 기사는 도내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참석한 경찰 브리핑에서 나온 내용을 '단독'을 달고 내보낸 것"이라며 "더욱이 당시 사건의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유정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담았다"고 했다.

사건 본질과는 상관없는 내용의 보도사례도 제시했다. <고유정, 전 남편과 봉사동아리에서 만나 "결혼생활 중 흉기">, <[단독] 욕하고 걷어차...'친절한 유정씨'의 돌변, 집만 오면 악마였다>, <고유정 방식대로 카레에 졸피뎀 뿌려 먹어봤다>, <[단독] 범행도구 구입 후 술집에서 웃고 떠든 고유정> 등이 고 기자가 꼽은 문제의 기사들이다. 대부분 중앙언론에서 보도했던 기사들이다.

제주언론학회와 제주도기자협회, PD연합회 제주지부,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공동 학술세미나 '취재현장에서의 인권'.ⓒ헤드라인제주
제주언론학회와 제주도기자협회, PD연합회 제주지부,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공동 학술세미나 '취재현장에서의 인권'. ⓒ헤드라인제주
제주언론학회와 제주도기자협회, PD연합회 제주지부,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공동 학술세미나 '취재현장에서의 인권'.ⓒ헤드라인제주
제주언론학회와 제주도기자협회, PD연합회 제주지부,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공동 학술세미나 '취재현장에서의 인권'. ⓒ헤드라인제주

한편, 이날 고원상 제이누리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벌이지는 취재 대상자의 인권 소홀 문제, '우리가 쓰는 기사 속에 사람이 있는가?'를 주제로 해 발제를 했다.

송철민 JIBS PD는 '제작 현장에서 경험한 초상권 침해 사례'에 대해, 김찬년 제주MBC 기자는 '언론의 인권의식과 자정 능력'을 주제로 해 각각 발표했다.

이어 김경호 제주대학교 교수가 사회를 맡아 진행된 토론에는 강문숙 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제주중재부 위원)와 고명희 전 제주여성인권연대 대표, 고현수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위원,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이 참여해 언론보도에서 나타난 인권문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강만생 제주언론인클럽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2부 '언론 밖에서 본 인권의 문제'에서는 고호성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한숙희 ㈔누구나 이사장, 윤철수 헤드라인제주 대표가 참석해 토론을 벌였다. <헤드라인제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