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보육교사 살인혐의 택시기사, 항소심도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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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보육교사 살인혐의 택시기사, 항소심도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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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법, 검찰 항소 기각...11년전 사건 '영구 미제' 우려 
법원 "정황증거는 충분히 인정되나, 직접적 증거로 볼 수 없어"
▲ 21일 경찰이 지난 2009년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한 박모씨에 대한 영장실질 심사를 위해 박씨를 제주지법으로 압송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지난 2009년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던 박모씨. 사진은 지난 2018년 구속영장 영장실질 심사를 위해 법원으로 압송되는 모습. ⓒ헤드라인제주

11년 전 제주에서 발생한 어린이집 여교사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피고인에 대한 항소심에서도 또 다시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이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이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재판장 왕정옥)는 8일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51)에게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항소심에서도 박씨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결정적 증거는 채택되지 못했다. 

검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에 박씨가 운전한 택시로 추정되는 쏘나타 차량이 있었던 점, 박씨의 청바지에서 나온 미세섬유, 박씨의 사건 당시의 통화내용 삭제된 점 등을 제시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직접적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휴대전화는 4시 4분 종료됐고, 3시 24분에서 4시 45분 사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또한 피해자의 휴대전화가 종료된 시점에 사건 CCTV 영상에 나타나는 차량의 종류는 (박씨의 차량으로 추정되는) NF쏘나타라는 감정결과가 있으므로, CCTV 영상들은 피고인이 이 사건 범인임을 뒷받침하는 주요 정황증거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CCTV 영상들은 가로수 등에 의해 차량이 가려지고, 후미등이나 가로등 불빛으로 인한 빛의 반사 및 먼 거리에서 촬영돼 차량의 윤곽을 확인할 수 없고, 택시의 차종, 캡등의 점멸 여부 등을 알 수 없어서 CCTV 영상 자체 판독이 불가능하다"며 "CCTV 영상 및 분석결과만으로는 CCTV 영상에 나타나는 차량이 흰색 NF쏘나타 택시이고, 이 사건 택시와 동일한 차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미세섬유가 피해자 신체와 이 사건 택시에서 발견됐다"면서도 "국과수의 미세섬유에 관한 감정은 피해자의 신체나 이 사건 택시에 대한 전사 테이프에 있는 모든 섬유를 감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지정한 섬유(이른바 타겟섬유)와 일치하는 섬유가 있는지 여부를 비교·분석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는데, 만약 타겟섬유가 다른 섬유와 구분되는 고유한 성질을 가진 섬유가 아니라면 감정결과 그 타겟섬유와 유사한 섬유가 이 사건 택시나 피해자 신체에서 검출됐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인과 피해자가 반드시 접촉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 "수사기관의 택시 이동경로 분석은 피고인이 범인임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동물털, 미세섬유 증거 및 CCTV 등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 만으로는 피해자가 (박씨의 휴대폰이 종료된) 4시 4분 이전에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 이후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피고인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지만 모두 간접증거일 뿐"이라며 이러한 정황들만 갖고는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1심 재판에 이어, 이번에도 '결정적 증거'의 부족으로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검찰의 상고여부가 주목된다.

박씨는 항소심 선고공판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처음 시작이 다 억측으로부터 시작이 됐었고, 모든 과정 속에서 재판부나 언론이나 다 마찬가지로 다 저한테는 전부 다 족쇄같은 그런 존재들이었다"면서 "제 생활하는 데 있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잃게끔 하여튼 모든 상황들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은 2009년 2월 1일 새벽 귀가하던 어린이집 보육교사 이모씨(당시 26. 여)가 실종된 후, 일주일만인 2월 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숨진채 발견되면서 경찰이 수사본부를 설치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10년 넘게 미궁에 빠져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렸다.

경찰은 2018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돼 온 박씨를 살인혐의로 체포했다.

사건발생 당시 택시운전사였던 박씨는 실종당일인 2월 1일 새벽 제주시 용담동에서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에 탑승한 이씨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사건 발생 당시에도 유력 피의자로 지목됐으나, 당시 부검 결과에 따른 피해자의 사망 시점에 알리바이가 확인돼 조사 과정에서 풀려났다.

이후 추가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않으면서 수사가 장기화됐다.

그러다 2018년 경찰이 장기미제수사팀을 구성하고 동물 사체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사건 당시 나왔던 피해자의 사망 시점을 재특정하고 증거를 보강해 그해 5월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직접적 증거로 볼 수 없다며 기각한 바 있다.

이후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원의 재감정을 통해 피해자의 가방과 치마에 묻은 박씨의 바지 섬유증거를 추가 확보하고, 박씨의 차량 트렁크 등 3곳에서 피해자의 치마에서 나온 섬유질과 유사한 섬유증거를 추가 확보해 같은해 12월 21일 박씨를 구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법원은 박씨에 대한 증거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이번 항소심 재판에서도 무죄가 나오면서 이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게 됐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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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8 17:29:26 | 203.***.***.177
언젠가 수사 기술이 더 발달하면 잡힐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