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생명수, 용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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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생명수, 용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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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53) 역사속의 제주농업 문화

모든 인류가 그러했듯이 예로부터 제주는 물을 이용 할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이 조성되었고 농업도 이루어 졌다. 화산섬 제주는 대부분 현무암으로 수분이 잘 빠지는 특성이 있어 물을 가둘 수 있는 수리시설 확보가 어려워 옛 제주 선조들의 삶의 근간은 용천수였을 것이다. 제주도의 용천수는 과거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제주도민들의 생활의 근거가 되고 있는 셈이었다.

물이 중요하여 제주의 용천수 중에는 마을의 설촌(設村)과 관련된 것들도 많고, 독특한 설화(說話)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것들도 많다. 당시 제주민들에게는 물은 생명과 생활의 원천이면서 매우 귀하게 여겨왔으며 농사일에 있어서 물 부족으로 인한 가뭄에 대한 우려로 하늘을 바라보며 기우제를 올렸던 게 당시의 현실이었다. 이러한 어려운 제주의 물 문제 해결을 위하여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지하수 관정을 이용한 상수원 개발이 추진되어 생활용수 및 농업용수 난 해결에 큰 역할을 하였다. 지하수 관정의 보급으로 1980년대 이후에는 상수도 보급률 전국 최고를 자랑하게 되는 지경에 이름과 함께 수천 년을 두고 부녀자들과 애환을 같이 해왔던 물 허벅은 역사 속으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마을마다 공동체 형성의 매개체가 되었던 용천수도 함께 사라져 가는 현실이다.

동식물의 기본적인 생활사를 보면, 식물은 잎의 기공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광합성과정을 거치며 탄수화물 축적과 함께 산소를 만들어 내며 성장해 간다. 거꾸로 동물은 먹이를 먹고 산소를 흡수하여 양분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축적하고 분비물과 탄소를 배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생명을 유지해 나간다. 이러한 생명 순환의 모든 과정에서 물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모든 생명의 원천이라는 표현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주인들의 물 공급의 근원은 용천수이다. 용천수는 제주 섬에서 대수층(帶水層)을 따라 흐르는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이다. 제주에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에 용천수는 제주도민들의 생명수 역할을 했다. 용천수는 용출하는 지역에 따라 크게 해안 지역 용천수, 중산간 지역 용천수, 산간 지역 용천수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수적으로 가장 많은 것은 해발 200m 이하에 분포하는 해안 지역 용천수이며, 이것이 오늘날 제주도의 마을이 해안 지역을 따라 환상(環狀)의 형태로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었다. 중산간 지역이나 산간 지역의 경우는 해안 지역에서 멀어질수록 용천수의 분포 비율은 낮아지며, 그에 따라 마을이나 거기에 거주하는 인구도 상대적으로 적다.

2000년 초 조사된 용천수는 911개 정도 였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총 911개소의 용천수 중 제주시에는 540개소가 분포하고 있고, 서귀포시에는 371개소가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다시 해발 고도를 전제로 구분한 지역별 분포 실태를 보면, 해발 200m 이하의 해안 지역에 841개소(92.3%)가 있어서 가장 높은 밀도를 보이고 있으며, 해발 200∼600m 사이인 중산간 지역에는 49개소(5.4%), 그리고 해발 600m 이상인 산간 지역에는 21개소(2.3%)가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배경은 제주도의 마을이 대부분 해발 200m 이하의 지역에 밀집하여 분포한다는 사실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이상과 같은 사실에 기초할 때, 해안 지역의 용천수는 다른 두 지역의 용천수와는 달리 제주도민들의 생활 기반을 이루는 모태가 돼 왔음을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중산간 지역이나 산간 지역의 용천수는 전체 70개소(7.7%)로 적게 나타나는데, 이와 같은 용천수의 분포 실태는 제주도의 지형 특성이나 지질, 토양 조건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제주도 용천수의 형성과 발달은 한라산으로부터 해안에 이르기까지 아주 완만하게 형성된 지형적인 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가 내리면 쉽게 지하로 스며들어 지하에 저장되었다가 해안 지역으로 흘러가는 지질적, 토양적 조건이 깊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바다로 흘러나가기 전의 일부 지하수를 이용하여 상수원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또한 ‘삼다수(三多水)’라는 먹는 샘물과 ‘삼다수 녹차’라는 기능성 음료수로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다. 제주도의 용천수는 기본적으로 지하수에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결국 제주도의 용천수는 과거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제주도민들의 생활의 근거가 되고 있는 셈이다.

용천수는 제주도민들에게 생명의 젖줄로 표현될 만큼 소중한 자연 자원임에 틀림없다. 용천수는 단순히 식수로만 사용해온 것이 아니라 목욕이나 빨래, 가축용 등 일상생활에서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효율적으로 이용해 왔다. 예로부터 제주도민들은 용천수의 용도가 다양한 만큼, 용천수가 솟아나는 장소에는 반드시 돌담을 쌓아 올려 가축의 출입을 막거나 또는 주변부로부터 오염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하였다.

왼쪽부터 수월봉의 화산재층의 용천수와 제주 최대의 용천, 논짓물
왼쪽부터 수월봉의 화산재층의 용천수와 제주 최대의 용천, 논짓물

지역별로 분포하는 용천수의 용도를 살펴보면, 해안 지역과 중산간 지역의 용천수가 주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산간 지역의 용천수는 일부가 등산객들과 사찰 등지에서 이용한다. 또, 일부는 지형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는 관계로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특히, 해안 지역의 용천수는 보통 바닷가의 조간대(潮間帶)나 해발 5m 이하의 지점에서 용출하는 것들이 많은데, 이들은 밀물 때에 거의 이용할 수 없는 용천수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조간대나 해발 5m 이하에서 용출하는 용천수들은 밀물 때에 쉽게 해수의 침범을 받아 담수(淡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용천수 중에는 마을의 설촌(設村)과 관련된 것들도 많고, 그래서 독특한 설화(說話)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따라서 용천수가 용출하는 위치나 물의 양에 따라 독특하게 이름이 붙여진 것들도 많다.

애월읍 유수암리의 ‘유수암천’, 애월읍 애월리의 ‘하물’, 애월읍 장전리의 ‘장수물’, 도두 2동과 용담 2동 등 여러 곳에 불려지는 ‘엉물’, 제주시 건입동의 ‘금산물’ 등의 그 예이며 이외에도 많은 용천수 들이 있다. 유수암천은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는 용천수로서, 고려 시대 때 유수암리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이 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하물은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용천수로 용출하는 물의 양이 많다는 의미의 제주 방언(‘하다’는 ‘많다’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수물은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에 있는 용천수로, 고려시대 때 삼별초 장수인 김통정(金通精)이 여몽 연합군에게 패배하여 도주할 때, 발을 내디딘 후부터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엉물은 해안이나 하천가의 큰 바위 밑에서 솟아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으로, 도두 2동과 용담 2동 등 여러 곳에 같은 이름의 용천수가 있다. 또한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용천수인 금산물은 원래 마을 안에 제터가 있는 산(山)이라 하여 평소 사람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의미에서 금산(禁山)이라 하였고, 금산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금산물’이라 불렀다.

물 문제는 기후변화 문제와 함께 전 지구적 환경문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전 세계적으로 깨끗한 물 한 모금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인구는 수십 억 명에 달한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는 뛰어난 수질을 자랑하는 지하수를 갖고 있는 지역으로 이제 물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해야 될 시점이 되었다. 실제로 제주용천수는 지질, 생태자원으로서의 가치도 크지만 문화유산의 측면에서도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의 지하수 난개발을 비롯한 중산간 골프장 고독성농약 문제, 최근 벌어진 양돈장 폐수 오염사건 등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함께 선조들이 삶의 터전이었던 용천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여 제주 농업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극대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제주를 가꾸고 유지하는 기본은 물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가꾸는 것이라는 생각을 전한다.

※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주도(2003), <제주도 수문지질 및 지하수자원 종합조사(III)>;  제주특별자치도 수자원본부, http://www.jejuwater.go.kr/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원 등을 두루 거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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