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장애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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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장애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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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 김목영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김목영 / 제주장애인인권포럼.ⓒ헤드라인제주
김목영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헤드라인제주

무서운 기세로 퍼져 나가던 코로나19가 주춤해지는가 싶더니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2차 유행까지 언급되며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과 개개인의 일상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진단 키트의 경우 독일, 프랑스, 헝가리, 폴란드, UAE,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수입하였고, 예방을 위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다른 국가와 비교해 일찍 시작하여 선제 대응이라 평가받았다. 마스크 못지않게 중요하게 시행되었던 것,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주었던 것은 단연 사회적 거리 두기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우리 ‘사회’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가?

코로나19의 예방 및 방역에 철저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현 정부의 장애인을 위한 대책을 살펴보면 이러한 의문을 품게 된다. 국가별 장애인을 위한 코로나19 대응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웹사이트 ‘AccessCovid19’를 구축한 장애 청년 김건호 ‘무의’ 협동조합 이사는 ‘한국은 코로나 대응에 있어서 앞서가고 있지만, 장애인을 위한 대응은 미흡하다’라고 지적한다.

면역체계가 없어 코로나19에 매우 취약함에도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지 않은 신장장애인의 경우 총 15명이 사망했고, 연이은 학교 휴교로 발달장애 및 중증장애인과 부모들이 위험한 수준의 고립과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생활패턴의 변화에 취약한 발달장애 자녀의 생활패턴이 코로나19 기간에 부정적으로 변화한 경우가 87%, 이로 인해 부모가 심한 돌봄 스트레스로 건강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73.7%에 이르렀다.

이렇듯 사회적 취약계층을 고려하지 않은 대응은 선제적이든 선진적이든 단기간의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며 국가가 반쪽짜리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보건복지부는 초기에 수어 통역의 부재가 논란이 되었을 시 빠르게 반응하여 며칠 지나지 않아 제공하기 시작했고, 장애인 대책 마련 요구에 응하여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 관련 조치에 대해 요약 발표하였으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장애인을 위한 감염병 대응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장애 감수성이 현저히 부족, 아니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전무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대응 가이드라인이 없는 게 왜 문제인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장애인이 겪은 다양한 권리 침해 문제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첫째, 코로나19의 예방 및 지역사회 전파 최소화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방역이었던 자가격리, 하지만 중증장애인 자가격리의 문제는 장애인의 생존권 침해가 얼마나 쉽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었다. 다행히 제주 지역사회 내에서는 자가격리를 해야 했던 중증장애인은 없었지만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경우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국민의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고려한 체계적 대책이 없는 중증장애인 자가격리는 일상적인 생활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생존권과 직결되는 폭력일 수 있다. ‘자가격리’라 함은 스스로 격리되어 추가 감염을 막는 조치인데 그렇게 할 경우, 기본적인 일상생활의 영위가 불가능하고 생존까지 위협받는다면 이건 또 다른 인권 침해인 것이다. 더불어 평소에도 쉽지 않았던 활동지원서비스는 받기가 더 어려워졌고 그만큼 가족의 부담은 가중되었다. 장애인거주시설 내 집단감염 시 봉쇄 조치 또한 감염병의 통제라는 이유로 질병에 걸린 국민이 적절한 의료서비스도 제공받지 못한 채 생존에 불안을 느끼며 갇혀버린, 생존권의 침해였다. 시설의 근본적 문제로 인한 탈시설의 필요성 또한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처럼 비장애인에게 자가격리는 일시적인 답답함과 불편함일 수 있지만, 장애인에게 자가격리는 사회적 고립의 심화이자 죽음의 공포이다.

둘째, 장애인 노동자, 뿐만 아니라 장애인 활동보조사의 노동권까지 위협받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다수의 기관 및 사업체가 휴업에 들어가면서 많은 장애인 노동자의 생계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시설 532개소 중 휴관을 시행한 시설은 462개 시설이며, 평균 휴관일은 22일이다(에이블뉴스, 2020년 4월 24일 자 기사). 직업재활시설 외 타 기관 및 일반사업체에 종사하는 장애인 노동자도 상당수 휴관 및 휴업으로 생계에 지장을 받고 있다.

일시적 휴업이라면 그나마 상황이 낫다. 장기간 휴업으로 실직의 상황에까지 놓이는 경우도 있다. 노동할 의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코로나19라는 재난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이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사회가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 말 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까?

보건복지부에서 코로나19 피해 기업 고용유지지원금을 모든 업종에 상향 조정하여 지원하고 있지만, 장애인고용장려금과 중복지원은 불가하다. 이 두 가지 지원의 성격에 있어서 도대체 어떤 부분이 중복일까? ‘장애인고용장려금’은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항상 받아야 하는 것이고, ‘고용유지지원금’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의 피해를 어느 정도 절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성격인데, 원래 받고 있던, 마땅히 받아야 할 고용장려금 때문에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 말라니. 고용장려금을 받으면 코로나19가 주는 피해가 비껴가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다행히 이러한 논란 끝에 「장애인고용법 시행령」이 중복 지급의 제한을 완화하도록 개정되었고 6월부터는 고용유지지원금과 장애인 고용장려금을 중복해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첫째,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늦었더라도, 미래에는 지금 마련한 대비책이 ‘미리’가 될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장애인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이 더 실망스러운 이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15년, 충분히 혹독하게 메르스(MERS)를 경험했다. 폐쇄적인 관리로 불신을 키웠던 당시 정부와 비교해 현 정부의 대책은 상당히 투명하고 신속하지만, 이전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전무하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장애인을 위한 감염병 예방 및 발병 시 대책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특히, 장애 유형별로 다른 맞춤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척수장애인, 뇌병변장애인, 신장장애인,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대책은 각각 다를 수밖에 없고 같은 유형의 장애인임에도 장애의 정도에 따라, 그리고 특수한 조건에 따라 필요한 예방 및 감염병 발병 후 처치의 매뉴얼이 다를 수 있다, 아니 달라야 한다. 형식적으로 만든 일괄적 가이드라인은 각기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둘째, 장애인 노동자와 활동보조사의 노동권을 원천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도 장애인 및 활동보조사의 노동권에는 이미 많은 문제가 있었다. 장애인의 경우, 비장애인에게도 OECD 하위권 수준이라 매년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최저임금조차 적용되지 않는다. 즉 코로나19로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휴업수당을 잘 해결해서 받는다고 해도 이미 저임금인 임금의 일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왜 장애인은 최저임금의 적용 제외대상이어야 하는가? 생산성 위주로 짜인 노동 임금 체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한 시기다. 급격한 시대의 변화와 산업 구조의 변혁을 맞이하고 있는 21세기, 노동 임금과 소득 분배 체계는 왜 정체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의 주장처럼 장애인이 노동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장애의 특성을 고려한 직무 개발, 그리고 사회적 공공 일자리 확충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고, 이와 더불어 생산성이 아닌 생산자, 즉 개별적 ‘인간’을 중심으로 한 노동 임금과 소득 분배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비단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미래에 다른 감염병으로 인한 재난은 언제든 닥칠 수 있고, 실업을 위시한 다양한 노동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하지만 실업난이 어제오늘 일은 아닐 것이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할 때도,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한다고 할 때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었고 우리는 그래서 ‘노동’, 특히 사회적 약자의 노동권과 일자리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활동지원사의 경우 이러한 장애인의 노동권 및 생활권을 위해서 그들 바로 곁에서 실질적인 조력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권은 코로나19가 아닌 이전에도 저임금, 이용자에 의해 노동 기간 및 지속성이 결정되는 등의 불안정성, 의무 휴게시간으로 인한 무급 노동 등의 문제가 많았고 이는 코로나19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지는 노동을 제공하면서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생계를 위협받아야 하는 현실. 따라서 활동지원서비스 제도를 이들의 노동권과 생계를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전국활동지원사지부에서 요구하는 바와 같이 월급제의 도입과 생활임금 보장(에이블뉴스, 2020년 5월 6일 자 기사) 등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셋째, 감염병 관련법을 장애포괄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인 대책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개정하여야 한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약칭: 감염병예방법)」을 보면 메르스를 포함, 수많은 감염병이 정의되어 있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의료인의 책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감염병 예방 및 관리 계획의 수립에 ‘장애’가 언급된 곳은 예방접종에 따른 피해의 국가보상 조항밖에 없다. 접촉자 격리시설 관련 조항에도, 예방 조치 조항에도 장애를 위한 대책, 그 법률적 기준은 없다. 그나마 제49조 2항이 ‘감염취약계층의 보호 조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특수한 조건을 고려한 가이드라인이라기 보다 ‘마스크 지급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라는 원론적 수준이다.

성인지적 정책 수립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대의 흐름과 같이 장애 인지적 정책 수립의 필요성 또한 강조되어야 한다. 더불어 의료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서 한국의 국민 1인당 의사 수가 적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의료진이 지역까지 이동해가며 환자들을 돌봐야 하는 국가재난 상황 속에서 한국의 인구당 의사 수는 OECD 평균의 66% 수준(파이낸셜 뉴스, 5월 7일 자 기사)에 불과하다. 따라서 감염병 전문인력을 포함한 의료진을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적 인프라와 더불어 긴급 재난 대비 시스템의 구축 및 강화를 통한 의료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의료진에게 과도한 희생을 요구할 순 없기 때문이다.

국가적, 세계적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과 사회적 취약계층의 생존권은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번 코로나19의 확산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더 극명하게 드러내며 우리가 그동안 사회적 취약계층의 생존권을 고려함에 있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코로나19가 인재인지 아닌지의 문제를 떠나서 이러한 재난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이러한 위기를 일시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언제든 대비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법과 제도의 개선 및 체계적 시스템의 마련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재난 안내 방송에 수어 통역 시스템을 형식적으로 끼워 넣는 데 그치면 안 된다. 수어 통역사의 통역 전달도 중요하지만, 카메라가 잠시라도 이를 비추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첨단 방송 시스템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방송 스태프가 그에 걸맞은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으며 동시에 장애 감수성도 항시 뛰어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사회가 온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다 해도 심리적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 안전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 김목영제주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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