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전 참혹했던 그날의 기억,'제주4.3'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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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전 참혹했던 그날의 기억,'제주4.3'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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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숙 작가, 청소년을 위한 '제주4.3' 발간

"죽은 자들을 위해서는 눈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제주의 거친 바람 소리는 그들의 통곡소리였을까."

제72주기 제주4.3희생자 추념일에 즈음해 대한민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의 참상을 다룬 '청소년을 위한 제주 4.3'(고진숙 글, 이해정 그림)'이 발간됐다.

'청소년을 위한'이란 수식어가 붙은 도서이지만, 기성세대들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야기 전개방식 자체가 기존의 4.3문헌과는 전혀 다르다.

마치 72년 전 그 시대의 등장 인물의 내면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하다. 책을 한번 펼쳐보면, 쉽사리 놓을 수가 없다.

"누군가 말했다. 제주 4.3은 3만여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하나 소중한 사람이 희생당한 3만 개의 사건이라고. 나는 그 하나하나의 이름을 다 말하고 싶었다."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인 제주의 긴박한 상황을 펼쳐보이는데서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의 해녀항일투쟁도 함께 엮어갔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그리고 인민위원회와 미군정. 
1947년 3월 1일, 피로 물든 3.1절 집회, 공포의 섬으로 변해가는 제주. 원인에는 관심없는 진압, 서북청년회, 반역의 세월, 학살.

"'석방이오.' 그것은 총살형의 암호였다. 그는 십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사라봉 소나무 밭에서 이유도 모른채 총살당했다."

"무차별 학살이 거듭되면서 9연대 병사들은 악마로 변해갔다. 제주읍 월평 마을 다라쿳 부근에서 잡힌 젊은 여인은 산 채로 가슴이 도려내어졌다. 그녀는 그 끔찍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땅바닥을 긁어대 손톱이 다 빠졌고, 부근에는 잔디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랑쉬굴의 비극.
"'물컹!' 흙을 얇게 덮어놓은 대변이 발에 밟혔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토벌대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여기저기 밥을 해 먹은 흔적이 있었다. 흔적을 따라가보니 굴의 입구가 나타났다. '너희들이 거기 있는 거 다 알고 있다. 자수하면 살려주겠다. 안 그러면 모두 죽이겠다.' 굴 안에서 부스럭거리며 젊은 남자가 나왔다. '나를 내려보내주면 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겠소' 군인들은 젊은 남자의 몸에 끈을 묶어서 안으로 보냈다. 하지만 아무도 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끈을 당겨보니 끊어져 있었다. '지독한 것들!' 잠시 후 동굴 속에서 청년이 뛰쳐나와 도망갔다. 민보단원들이 달려가 청년을 붙잡아 군인이 즉각 총살했다. 한참 동안 연기를 피웠지만 더 이상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군인들은 입구를 돌로 막고 그곳을 떠났다. '나가봐야 죽어요. 여기서 우리 함께 죽읍시다.' 굴 안의 사람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아들을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연기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다음 세상에서 만나요.'"

"12월 14일 밤은 달이 밝았다. 군인들은 향사 앞으로 사람들을 모두 모았다. '18살에서 40살까지 남자들은 옆으로 서시오.' 영문도 모른 채 줄을 선 젊은 남자들은 그 길로 표선 한모살에서 처형당했다. 여자들에겐 달을 보라고 했다. 군인들은 달을 보는 여인들을 두 줄로 나눴다. 어디론가 끌려간 그녀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다."

"'자수하면 양민증을 준대. 그것만 있으면 경찰이나 군인들 손에 죽지는 않을거야'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다퉈 함덕국민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오후 5시쯤 군인들이 청년들을 차에 태웠다. 나눠주는 주먹밥을 먹느라 차를 탈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며 분해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자수자 150명이 도착한 곳은 박성내라는 냇가였다. 잠시 뒤 냇가의 바위 위까지 끌려간 청년들은 묶인 그대로 열 명씩 세워졌다. 총구가 불을 뿜었고 냇가로 떨어진 시체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시체 위로 눈이 내렸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죽음의 예비검속. 

이 책은 큰 역사 속에서 제주 4·3을 볼 수 있게 ‘해방에서 분단까지’와 ‘제주 역사’ 코너를 본문과 함께 담았다. 10가지 작은 주제로 기획된 ‘해방에서 분단까지’만 모아 보아도 우리 현대사에서 제주 4·3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매 챕터마다 실존인물들이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들이 겪은 고통을 간접경험을 하게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작가는 꼼꼼한 사실 고증과 인과관계 구성을 통해 제주 4·3을 시간순, 주제별로 나누어 성공적으로 엮었다. 특히 작가의 고향인 제주도의 화산토와 바다 내음이 글에 배어 있어 제주 4·3의 비정함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청소년과 어른들이 두루 꼭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들에게 최고의 제주 4·3 역사 길잡이가 될 것이다." -박찬식 박사 서평.

저자 고진숙은 "4.3희생자 3만여 명의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는 마음으로 원고를 끝냈다"고 소회했다. 작가의 11번째 저서이다.

대학에서 천문기상학을 전공한 저자는 역사의 매력에 빠져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저서로는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 '우리 근대사의 작은 불꽃들', '역사를 담은 토기', '역사를 담은 도자기', '문익점과 정천익', '새로운 세상을 꿈꾼 조선의 실학자들' 등이 있다. 

한겨레 출판. 정가 1만2000원.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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