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碑文)은 말이 없지만 사실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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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碑文)은 말이 없지만 사실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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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의 옛 스승인 '명도암 선생 유허비'를 찾아서 (2)
明道菴先生遺墟碑.
明道菴先生遺墟碑.

○明道菴先生遺墟碑(명도암 선생 유허비) 解說(해설)

[일러두기] 정확하고 알기 쉽게 하기 위하여

① 한문은 ( )속에 한글 음(音)을 달았습니다.

② 한글 또한 원문에 충실하기 위하여 비문대로 쓰고, 현행 맞춤법에 틀린 글자는 ( )안에 현행 맞춤법에 맞추어 표기하였습니다.

③ 원문은 네모 박스 속에 넣어서 해설과 분리하였습니다.

※ 遺墟碑란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에 그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를 말합니다.

南溟(남명)의 靈峰(영봉)인 漢拏山(한라산)의 儲精(저정)이 뻗어 그 東北(동북) 기슭 六十餘里(육십여리)에 明道菴兀音(명도암올음)을 이루었으니 水石(수석)이 幽邃(유수)하고 秀氣(수기) 감도는데 冽泉(열천)을 사이에 둔 이곳 安胎田(안태전)은 바로 先生(선생)이 居處(거처)를 卜(복)하여 養德尙志(양덕상지)하신 遺墟(유허)이니라.

[해설] 남쪽의 큰 바다에 신령스런 한라산의 정기가 뻗어 그 동북 기슭 6십여 리에 명도암 오름을 이루었으니, 산천경개가 그윽하고 맑아 빼어난 기운이 감도는데 차고 맑은 샘(조리샘이)을 사이에 둔 이곳 안태전은 바로 선생이 거처를 정하여 덕을 쌓고 뜻을 숭상하며 살았던 터이니라.

·거처를 卜하여는 거처를 ‘자세히 헤아려 정했다’는 뜻입니다.

‘卜하여’에서 ‘卜’은 길거리에서 보는 점(占)이 아니라, ‘상고(詳考)하다’는 뜻으로 거처를 자세히 살펴보고 정했다는 뜻입니다.

삼가 살피건대 先生(선생)의 諱(휘)는 晉鎔(진용)이요,

字(자)는 晉叔(진숙)이며, 先生(선생)이 明道菴(명도암)에 隱居脩道(은거수도)하시매 世人(세인)이 敬慕(경모)하여 明道菴先生(명도암 선생)이라 일커렀다(일컬었다)

[해설] 삼가 살피건대 선생의 이름은 진용이요, 字는 진숙이며,

선생이 명도암에 은거 수도하였기에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모하여 명도암 선생이라 일컬었다.

·諱; 돌아가신 분의 생전 이름을 높여서 이름 앞에 붙였던 글자

·字; 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 붙이는 이름

※이 단락의 기록에 의하여 「명도암(明道岩, 明道菴) 마을」과 「明道菴 先生」의 유래에 관하여 잘못 알려지고 있는 내용은 1편에 설명하였습니다.

先生(선생)은 光山金氏(광산김씨)로서 麗朝門下侍中(여조문하시중) 諱台鉉(휘, 태현)을 中始祖(중시조)로 都染領同正(도염령동정) 諱逸(휘, 일)을 入海始祖(입해시조)로 모시니 이로써 耽羅의 文物敎化(문물교화) 자못 刷新(쇄신)된 바 있더니 先生(선생)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儒家(유가)로서 일찌기(일찍이) 뜻을 聖賢(성현)의 學(학)에 두고 硏學尙志(연학상지)로 能히 荒蕪(황무)를 旣除(기제)하니 南方(남방)의 敎化蔚然(교화울연)히 이룩되어 드디어 萬人崇仰(만인숭앙)의 儒宗(유종)이 되시니라.

[해설] 선생은 광산 김씨로서 고려조 문하시중이셨던 諱台鉉을 중시조로 도염령동정 諱逸을 입도시조로 모시니 이로써 탐라의 문물교화가 훨씬 쇄신되더니, 선생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유학자로서

일찍이 뜻을 성현의 학문에 두고 그 학문을 탐구하고 뜻을 높임으로서 능히 거칠고 조잡함(미개한 풍속)을 없애니, 탐라의 敎化가 성대하게 이룩되어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높이 우러러 보는 유종이 되시니라.

·中始祖; 宗派로 나눠질 때 시조와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함

·都染領同正; 고려시대 염료의 제조와 염색을 맡던 관청의 직원

·逸; 입도시조인 胤祖의 다른 이름, 入海始祖=入道始祖

·敎化; 가르치고 이끌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

·儒宗; 선비들이 스승으로 높이 우러르는 학자

※ 광산김씨는 시조를 흥광(興光)으로 현재 5대파(문정공파, 문숙공파, 양간공파, 낭장공파, 사온직장공파)로 분류하며, 台鉉(15세)은 문정공파 파조가 되시고, 태현(台鉉;15세)의 3남 광재(光載;16세)께서 문간공파의 파조가 되십니다. 문간공 光載의 차남 윤조(胤祖;17세)가 제주의 입도시조가 되시므로, 윤조를 윗대로 둔 괸당은 모두 문간공파가 되는 것입니다. (윤조는 입도시조이지 문간공파의 파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先生(선생)은 李氏朝鮮(이씨조선) 宣祖(선조) 乙巳(을사)에 降生(강생)하시니 天性(천성)이 高明(고명)하고 才質(재질)이 特出(특출)하여 幼時(유시)에 謫居中(적거 중)인 艮翁(간옹) 李瀷先生(이익 선생)에게 受學(수학)하시다. 仁祖(인조) 乙亥(을해)에 司馬(사마)에 오르셔 泮宮(반궁)에 出遊(출유)하시고 肅寧殿參奉(숙녕전참봉)에 敍(서)함을 입자 辭(사)하고 歸鄕(귀향)하니 本志仕宦(본지사환)에 있음이 아니러라.(아니어라)

[해설] 선생은 조선왕조 선조 38년 을사(1605년)에 태어나시니 타고난 성품이 고상하고 현명하여 재주와 바탕이 남보다 특별히 뛰어나서 어린 나이에 유배 중인 간옹 李瀷 선생에게 학문을 배우셨다. 인조 13년 을해(1635)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유학하시고 숙녕전에 참봉 벼슬을 받자 사임하고 귀향하니, 본래의 뜻이 벼슬길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으려고 했음이 아니었다.

·李氏朝鮮은 식민사관에 의한 표기임으로 지금은 그냥 「朝鮮」 또는 「朝鮮朝」, 「朝鮮王朝」로 써야 합니다.

·司馬에 오르셔; 생원과 진사를 뽑는 小科에 급제하여, 즉 여기서 ‘오르셔’는 벼슬길에 올랐다가 아니라, 과거에 급제하였다는 뜻임

·泮宮; 조선시대 성균관을 이름

·參奉; 조선 시대 여러 관아에 속했던 종9품의 벼슬

·敍함을 입자; 敍는 관직을 주는 것이고, ‘입자’는 주는 관직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즉 ‘관직을 제수 받자’의 뜻임

※‘泮宮’(반궁; 성균관) 두 글자가 제가 명도암선생 유허비에 대하여 글을 쓰게 만든 글자입니다. 즉 원문은 「泮宮에 出遊하시고」인데,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에는 「판관에 출유(出遊)하시고」로 기술되어 있는데... 명도암 선생은 ‘판관’ 벼슬을 한 적이 없으므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비문의 원문 글자를 하나하나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爾來俊才(이래준재)를 모아 聖賢(성현)의 길을 講(강)하며 育英(육영)에 힘써 오시더니 孝宗(효종) 戊戌(무술)에 晩悟(만오) 李公襘(이공괴) 牧使(목사)로 到任(도임)하자 于先(우선) 興學(흥학)을 첫 事業(사업)으로 삼고자 先生(선생)께 條規方略(조규방략)을 諮訪(자방)하매 先生(선생)이 더부러(더불어) 經綸(경륜)하여 學舍創建(학사창건)에 이르니 이것이 藏修堂(장수당)으로 오늘의 五賢壇(오현단)이 바로 그 由緖地(유서지)요 耽羅庠校(탐라상교)의 嚆矢(효시)라.

[해설] 찾아오는 뛰어난 인재를 모아 성현의 길을 가르치며 인재를 교육하여 길러냄에 힘써 오시더니, 효종 9년 무술(1658)에 晩悟 李襘가 목사로 도임하자 우선 교육사업을 일으킴을 첫 사업으로 삼고자 선생께 일반적인 조목과 규범, 그리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방법과 책략을 방문하여 상의함에, 선생이 더불어 큰 포부를 가지고

계획하여 학문을 갈고 닦는 건물을 세움에 이르니 이것이 장수당으로 오늘의 오현단이 바로 그 전하여 내려오는 까닭과 내력이 있는 곳이요. 탐라에 학교의 시초이다.

·晩悟; 이괴 목사의 호

※ 이괴 목사의 이름에 대하여는 제주도> 역사 인물란에 ‘연안이씨 족보에는 이괴(李襘)로 되어있다. 항렬(行列) 글자로 모두 옷의(衣)변으로 된 외자 이름을 쓰고 있으나, 종래의 모든 사전에는 이회(李禬)로 쓰고 있어 혼돈을 피하기 위해 종전대로 쓰기로 한다.’라고 되어있지만, 김석익(金錫翼) 선생의 「탐라기년」과 비문에는 이괴(李襘)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단락에서 보면 장수당의 건립은 이괴 목사가 도임하여 진용 선생과 상의하여 건립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1660년 이괴 목사 자신이 쓴 藏修堂記(장수당기)를 보면 장수당은 진용 선생의 건의하여 건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敎學(교학)이 興隆(흥륭)하고 人才輩出(인재배출)이 이루 헤아릴 바 아니니 先生(선생)의 功(공)은 靑史(청사)에 길이 傳할지어다. 癸卯(계묘)에 逝去(서거)하시니 享年五十九(향년 오십 구)라.

[해설] 이로 말미암아 교육과 학문이 성대히 일어나고, 인재가 배출됨이 이루 헤아릴 수 없으니, 선생의 공적은 역사에 길이 전할지어다. 현종 4년 계묘(1663)에 돌아가시니 향년 오십 구세이다.

純祖(순조) 壬辰(임진)에 牧使(목사) 李公禮延(이공례연)이 先生(선생)의 遺德(유덕)을 欽仰(흠앙)하고 士林의 要望(요망)도 있어 永惠祠(영혜사)에 從享(종향)하고 憲宗(헌종) 癸卯(계묘)에 知州(지주) 李公源祚(이공원조)가 따로 鄕賢祠(향현사)를 세워 高靈谷得宗(고령곡 득종)과 幷享(병향)하여 왔으나 高宗(고종) 辛未(신미)에 大同撤享(대동철향)되더니 癸巳(계사)에 士林(사림)이 모여 鄕賢祠遺墟碑(향현사 유허비)를 건립하였도다.

[해설] 순조 32년 임진(1832)에 목사 이례연이 선생의 후세에 남긴 덕을 공경하고 우러러 사모하고 물론 사림의 바라는 바도 있어 영혜사에 배향(위패를 모심)하였는데, 헌종 9년 계묘(1843)에 목사 이원조가 따로 향현사를 세워 고령곡 득종과 함께 모셔왔으나, 고종 8년 辛未(1871)에 모두 철폐되더니 계사년(1893)에 사림이 모여 향현사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知州; 목사의 다른 호칭

·大同撤享;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전국의 서원을 모두 철폐한 사실을 이름

이제 또 先生(선생)의 後孫(후손)들이 모여서 遺墟碑(유허비)를 세워 先祖(선조)의 遺德(유덕)을 顯揚(현양)코자 하니 참으로 感激(감격)할지어다. 噫(희)라 先生(선생)은 일찌기(일찍이) 山林(산림)에 隱居(은거)하면서 硏學(연학)과 育英(육영)으로 生涯(생애)를 마치신 분으로 耽羅(탐라)의 海荒(해황)을 깨치시고 鄕土(향토)에 獻身(헌신)하여 그 敎化(교화)는 婦孺(부유)에게까지 미치게 되니 참으로 거룩하시도다.

[해설] 이제 또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서 유허비를 세워 선조가

후대에 끼친 덕을 세상에 높이 드러내고자 하니 참으로 감격할지어다. 아! 선생은 일찍이 산림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탐구하고 인재를 가르치고 길러내는 것으로 생애를 마치신 분으로 탐라의 거친 풍속을 깨치시고 향토에 헌신하여 그 교화(가르침에 감화됨이)가 부녀자와 어린아이에게 까지 미치게 되니 참으로 거룩하시다.

길이 그 遺志(유지)를 繼承(계승)하여 先生(선생)의 偉業(위업))을 보람 있게 할지니라.

文學博士(문학박사) 延安(연안) 李崇寧 譔(이숭녕 찬)

安東(안동) 金忠顯(김충현) 書(서)

先生嶽降之六周(선생악강지6주)乙巳(을사)十月(시월)日(일) 立(입)

[해설] 길이 그 살아서 남긴 뜻을 이어받아 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보람 있게 할지니라.

문학박사 이숭녕이 비문을 짓고, 서예가 김충현이 글을 쓰다. 선생의 탄신 여섯 번째 회갑을 기념하여 1965년 시월 일 비를 세우다.

·嶽降; 신령스런 산의 정기를 타고 났다는 뜻, 성현의 탄생을 이름

김정호씨 ⓒ헤드라인제주
김정호씨 ⓒ헤드라인제주

·六周는 여섯 번째 회갑을 말하며, 여기에서 周는 ‘周甲’을 줄인 말로 六十甲子(60)을 말하는 것입니다.

※‘1965년 시월 일 비를 세우다’는 선생의 출생년도(1605년)에 六周(60× 6회갑= 360)를 더하여 1965년 10월 일 세웠다는 뜻임.

 

2020년 庚子(경자) 3월, 명도암 선생의 묘제를 앞두고.

<글쓴이; 광산김씨 大橋洞派(대교동파) 37世 正虎(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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