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보리, 밀, 귀리 재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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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보리, 밀, 귀리 재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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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42) 재배작물 도입의 역사

제주에서 재배되는 맥류의 종류는 보리, 밀, 귀리 등이 있으며 쌀, 콩, 옥수수와 더불어 인류의 주요 식량작물이다.

보리(학명: Hordeum vulgare var. hexastichon (L.) Asch.L)는 벼목 벼과에 속하는 식용작물로 선사시대에 에티오피아와 남동 아시아에서 재배가 시작되어 기원전에 거의 전 세계로 퍼졌다. 기원전 10세기 경 부터 우리나라에서 재배가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 이전부터 중요한 식량작물이었다.

특히 논이 부족한 제주에서는 1980년 이전 까지도 보리가 주식이었으며 지금도 맥주용, 사료용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재배되는 보리는 겉보리, 쌀보리, 맥주보리로 나뉜다. 견과와 비슷한 맛이 나고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 있으며, 단백질, 칼슘, 인은 중간 정도, 비타민 B는 소량 들어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주로 식량으로 쓰며 그밖에 소주·맥주·된장·고추장을 만들고 있다.

우선 제주에서 보리종류는 겉보리, 쌀보리, 맥주보리였다. 보리는 1980년대 초반까지 제주농가의 주 소득 작물이었으며 제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서 지금의 감귤만큼이나 중요한 작물이었다.

1957∼1979년 쌀보리는 11,232∼24,533ha까지 재배되었지만 1970년 대 중반부터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유채 등 새로운 경제작물이 재배 되면서 쌀보리 생산은 점차 감소하게 되어 1980년에는 6,886ha까지 감소 하였다. 1990년에 급격히 감소하여 50ha미만까지 줄어들었으나 최근에는 건강 기능성 잡곡 소비가 늘면서 재배면적도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맥주보리는 1962년 11,477ha로 가장 많이 재배되었으나 이후 계속 감소하여 1974년에 2,000ha까지 감소하였다.

1974년 이후 맥주 원맥의 국산화 정책과 맥주소비 증가로 1975년 7,354ha로 다시 증가하였고 1980년에는 9,816ha를 재배하였다. 1980년대 이전 보리 수확기는 제주에서 가장 바쁜 농번기로서 주로 인력에 의해 수확작업이 실시되었으므로 일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여서 보리주산지 학교에서는 임시방학(일명, 보리방학)을 실시하여 집안일을 돕게 하였다.

하지만 1992년 이후 맥주보리 수매 물량이 줄어들고, 감귤, 감자 등 타 작물에 밀려 점차 감소하여 2,000년대에 들어 2,500ha 내외를 유지 하였는데 2010년 이후 1,000ha 내외로 재배면적이 줄어들었다가 2015년 월동채소 수급조절을 위해 맥주보리 수매가 지원되면서 1,500ha로 증가하기도 하였다.

왼쪽부터 1960년대 보리밭 춘경 모습과 최근 맥류 수확-탈곡 콤바인 모습.
왼쪽부터 1960년대 보리밭 춘경 모습과 최근 맥류 수확-탈곡 콤바인 모습.

밀(학명: Triticum aestivum L.)은 외떡잎식물강 벼목 벼과에 속하는 식물로 가장 오래되고도 중요한 작물 중의 하나이다. 원산지는 카프카스 남부의 아르메니아 지방으로 추정한다. 밀은 세계 3대 식량 중 한 작물로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재배 되었고 주로 서양에서 주식으로 재배되고 있다. 생육기간은 보통 90일이다.

크게 가을밀과 봄밀로 나뉘며 가을밀은 가을에 씨를 뿌리며, 봄밀은 대개 봄에 씨를 뿌리지만 겨울이 춥지 않은 곳에서는 가을에 봄밀을 심기도 한다. 기후와 토양의 종류에 별 상관없이 자라지만, 강수량이 30~90cm 되는 온대지방에 가장 잘 적응한다. 제분한 밀인 밀가루의 대부분은 빵의 원료로 쓰인다. 제주에서 밀재배는 보리 다음으로 많이 재배되어 제수용 떡, 국수 등을 만들어 보조 식량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밀가루 무상 원조와 값싼 밀이 수입되면서 재배면적이 점점 줄어들었고, 1970년대 분식 장려정책으로 오히려 밀가루 소비가 급증하여 밀의 수입 의존도는 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1982년 밀수입이 자유화되고, 1984년 국산밀 수매가 폐지되면서, 국내 밀 재배면적은 급격히 줄어 자급율은 1% 이하 까지 하락하였다. 제주의 밀재배는 1960년 1,444ha, 1965년 425ha에 재배되었으나, 쌀보리에 비하여 수량이 낮고, 밀가루 수입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1970년 이후에는 거의 재배가 이루어지지 않다가‘우리밀 살리기 운동’이후 2005년 56ha, 2010년 75ha까지 재배되었으나 이후 판로 확보가 어려워 면적이 감소하였다. 제주에서 밀 재배 시 보리보다 숙기가 늦고 깜부기병, 붉은곰팡이병 등 병 발생이 많아 면적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귀리(학명: Avena sativa L.)는 1,2년생 작물로 유럽 및 서아시아가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 귀리가 처음 도입된 것은 13세기경 고려시대에 원나라 군사들이 말사료 로 가져온 것이 퍼졌을 것이라 추측된다. 문헌으로는 세종실록을 보면 귀리를 시험 재배하였으며 강원도와 함경도에서는 재배하여 쪄 말린 후 방아를 찧어 밥이나 떡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맥류 중에서 내한성이 가장 약하여 남부지방과 제주도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다. 밑부분에서 모여 나는 줄기는 높이 60∼110cm 정도이다. 잎몸은 길이 15∼30cm, 너비 6∼12mm 정도의 선형으로 편평하다. 잎집이 길며 잎혀는 짧고 잘게 갈라진다.

4∼5월에 출수하는 원추꽃차례는 길이 20∼30cm 정도이고 가지가 돌려나며 다시 갈라진다. 영과는 내외영으로 싸이고 털이 있으며 한쪽에 홈이 파진다. 소수에 까락이 1개 있고 소화가 2개로 성숙하여도 탈락되지 않는다. 호영에는 털이 없고 까락이 있어도 짧고 곧추서는 것이 ‘메귀리’와 다르다. 종자는 식용과 사료용으로 쓰이고, 특히 말먹이로 많이 이용된다. 양조에 사용되기도 한다. 중부지방에서는 봄에 파종하여 사료용으로 이용한다. 귀리는 밀이나 보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재배가 그리 많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1960년까지 산간 화전지대에서 춘파 여름재배가 이루어졌으나 그 후에 중단되었다가 제주에서 추파 월동 재배가 가능하여 높은 지대에서 다시 재배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귀리 재배면적은 3,000∼3,500ha 정도이며 대부분 조사료로 이용된다. 국내에서 귀리 조사료 생산은 근래에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삼한 등이 재배 되고 있다. 식용으로 쓰이는 쌀귀리 주산지는 전라북도 정읍으로 2015년 현재 약300ha를 재배하고 있으며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는데 농식품부 향토산업 육성사업으로‘귀리 명품화 사업’을 추진하여 고소득 특산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제주에서는 1986년 처음 한국마사회와 계약재배로 37ha에서 경주마 사료용 생산을 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하여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말사료로 귀리가 많이 요구됨에 따라 재배가 증가되어 1995년에 재배면적이 530ha에 달하였다. 하지만 마주들이 제주 귀리보다 배합 사료를 선호하는데다 값싼 수입산 때문에 2006년 이후 수매가 중단되어 재배가 거의 이루어 지지 않고 있으며, 현재 일부 농가들이 15ha에서 조사료와 쌀귀리를 재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리, 밀, 귀리 등 맥류는 논토양이 부족한 제주지형 여건에 따라 건조지역에 강한 밭농사의 주요 농작물로 선택되어져 제주농업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하여왔다. 특히 토양이 척박한 제주에서는‘보리고개’라는 추억의 스토리텔링을 가슴속으로 소환되는 작물이이기도 하다. 앞으로 기능성 잡곡생산을 위한 신품종 보급과 잡곡 가공시설을 설치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며 기계화를 전제로 한 잡곡을 이용하는 등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전개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잡곡류가 건강 기능식품으로 각광 받아 입부 잡곡은 최근 선호 되고 있으며 현대인들의 건강과 제주의 스토리로 이어나갈 소중한 작목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남인희(1985), <제주농업의 백년>;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2016), <제주농촌진흥 60년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주특별자치도청(2019), 농축산식품현황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원 등을 두루 거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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