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수의 꽁트] (10) 골프장 가는 길
상태바
[양영수의 꽁트] (10) 골프장 가는 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민호 씨가 골프장 가는 길을 오래만에 본 것은 지난 봄이었다. 사방으로 낮으막한 구릉지대와 널찍한 평원지대가 연이어 있고, 크고 작은 잡목숲이 틈틈이 자라고있는 수려한 경관이었다.

이 도로를 바라보는 이민호 씨의 감회가 남달리 깊은 것은 그의 화려했던 과거의 추억이 담긴 곳이기 때문이다. 그의 출세가도가 순항을 거듭할 때에 이 백록골프장은 그에게 불퇴전의 기백을 길러주던 곳이었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초선의원에서 재선의원, 3선의원으로 타이틀이 바뀔 때만 해도 그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그의 성공을 후원하고 축하해 주는 이 지역의 저명인사들과 친교를 다지던 곳이 바로 이 골프장이었다. 제주도의 오랜 역사가 담겨있는 곰솔나무를 이 도로의 가로수로 선정하도록 만든 것도 바로 그였다.

이민호 씨의 정치운명이 쇠락한 다음에도 그의 명예와 자부심만은 추락하지 않았던 곳이 이곳 백록골프장이었다. 연거푸 세 차례 낙선이라는 불명예를 안고있으면서도 3선 국회의원으로서의 자부심과 품격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민호 씨의 좌우명이었고, 이곳에 출입하는 골프꾼들은 3선 관록이 붙은 그의 영광을 인정해 주었다. 세 차례 낙선이었던 것도 매번 아슬아슬한 차점 낙선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동정과 존경을 산 점도 있었다. 차점 낙선은 골찌 낙선보다도 더 억울하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았다.

연이은 실패가 탄탄했던 그의 자부심과 가산을 거의 고갈시킬 무렵에 그는 척추관협착증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 질환을 가진 사람은 골프채 같은 것은 던져버리고 그 대신에 날마다 한두 시간씩 평지에서 걷기운동을 해야 한다는 담당의사의 엄명이 그의 행동반경을 제한했다. 이민호 씨가 바람 부는 해안도로에서 걷기운동에 습관 들인 지 10년이 넘으면서 백록골프장에 대한 그의 추억은 가물가물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의 기억을 되살려준 것은 지난 봄에 있었던 공동묘지 나들이였다. 작고한 친척네 장의차를 따라 공동묘지에 가고오는 길이 백록골프장 가는 길과 같았던 것이다. 그의 화려했던 추억이 점점이 박혀있는 그 길을 다녀오면서 재방문의 결심을 했던 것인데 이제 초가을이 되어서야 그 때의 결심을 실천에 옮긴 것이었다.

그날에야 백록골프장으로 가는 길을 찾아나선 것은, 그 전날 밤에 바로 그 골프장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제주도의 대표적인 골프장 몇 곳을 소개하는 방송을 보다가 잠을 잔 것이 그런 꿈을 꾸게 한 모양이지만, 그런 꿈자리가 추억 속의 그곳을 찾아나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날은 하필 일요일이었지만, 만원버스 타지 않으려면 일요일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구름이 많이 보인 것이 어떨까 했지만, 햇빛이 나서 무더운 날씨보다는 이런 날씨가 더 좋을 것도 같았다. 아직은 초가을의 초입이어서 여름 등산복으로 차려 입은 이민호 씨는 늦은 점심을 먹고나서 집을 나섰다. 일요일이라 손주녀석 준식이하고 같이 점심을 먹는가 해서 기다렸지만, 그 녀석은 아침부터 친구집에 가있다는 며느리의 말을 듣고는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서귀포 가는 버스를 탄 이민호 씨는 백록골프장 가는 길과 접속되는 지점에서 하차하였다. 거기에서 서쪽으로 반 시간 정도 걸어가면 골프장 입구에 닿게되니 그곳까지의 왕복 구간을 오늘의 걷기운동 코스로 삼기로 하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걸어가면서 둘러보는 사방의 경치는 옛날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살려주었다. 그가 좋아했던 곰솔나무 가로수가 잘 자라준 것이 특히 반가웠다. 사람이 손 댈 필요도 없이 소나무는 자라는 가운데 저절로 운치있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행인들은 별로 없었지만 승용차 통행은 꽤 많은 편이었다. 그하고 같은 방향에서 오는 차량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그를 향해 마주 달려오는 차량들인 것이 웬일인가 싶었는데, 이들 차량의 출발지점이 골프장과 공동묘지 두 군데이기 때문이었다. 골프꾼이나 벌초꾼이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시간이었는데, 승용차의 출발지가 골프장이냐 공동묘지냐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골프장에서 돌아오는 차는 모두가 고급차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 같았다. 반면에 공동묘지에서 돌아오는 차는 거의가 중소형차였고, 가족단위 행차인 경우가 많았다.

어느 틈엔지 이민호 씨의 시선은 골프꾼들의 자가용차로 향했다. 골프채를 싣고 이 도로를 달리던 옛날 생각이 나서 시선이 향했던 것이지 그 안에 탄 사람이 자기를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반대방향에서 차를 몰고 오던 사람들이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의 얼굴을 어떻게 알아봤는지 몰던 차를 멈추고는 차창문을 열면서 뭐라고 인사말을 건네왔을 때 그는 마치 오래 전 옛날의 어떤 장면을 꿈 속에서 보는 듯하였다. 반 시간도 안 되었는데 그렇게 인사를 걸어오는 사람이 셋이나 되었다. 어떤 사람은 차를 내려서 허리를 깍듯이 굽히고 인사했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여 만족스러운 응대를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였다.

여기 인적이 드문 한라산 기슭 노상에서 골프꾼들의 인사를 받다니, 이민호 씨는 가슴이 뿌듯하였다. 백록골프장은 이 지역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사교장이지 않은가. 오늘 나에게 인사한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 골프장에 출입했던 사람들일 터이니 그들은 잘 나가던 시절 나의 명망이 어땠는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명망있는 사람에게 인사할 수 있으려면 자신도 명망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저들은 나에게 인사를 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과시하려고 했을 것이다.

만단의 정회를 품고 걸어가던 이민호 씨는 걸음을 뚝 멈추었다. 도로변 소나무숲 공원에서부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날 걷기운동 코스의 반환점에 거의 닿았을 때였다. 공원 입구에는 제주시내의 어떤 유치원 이름이 박힌 노란색 소형버스가 세워져 있었다. 소나무숲으로 들어가 봤더니 캠핑장 같은 공터에서 스무 명 가량의 유치원 아동들이 무슨 게임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 좋은 구경꺼리를 만났구나 싶은 이민호 씨는 아이들과는 얼마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앉았다. 유치원 아이들이 가을 소풍을 온 모양인데, 어린 아이들이 이리저리 돌아가며 자기네들끼리 웃고 떠들고 마냥 재미있어 보이는 모습이 그의 시선을 끌었다.

이민호 씨는 문득 집에 있을 손주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금년에 초등학교 3학년인 그 녀석의 유치원 시절이 어땠는지, 이 아이들처럼 활발하고 명랑한 유치원 생활을 했는지 기억나는 것이 없자 무슨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양 느껴진다. 공부 잘하라는 둥 엄마의 등쌀이 심하여 아이의 기를 죽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공부 잘 하는 아이보다 활발한 성격을 가진 아이가 장래성이 있다는 것이 험한 세상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생각인데 아이들 교육에 관한 한 할배의 발언권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이 문제 때문에 아이 엄마하고 신경전을 벌이고 온 심정이 아직도 착잡하다.

아이들 노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구경하던 이영호 씨는 일어서서 앞으로 다가갔다. 그냥 아이들 얼굴이나 한번 둘러보고 자리를 뜰 생각이었는데, 유치원 선생이 뜻밖의 개입을 해옴으로써 그는 졸지에 무대 위 연기자가 된 기분이 되었다. 아이들은 한창 진행하던 놀이를 멈추고는 자기네 선생의 선창에 따르는 우렁찬 합창으로 그에게 만남의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오.

이민호 씨는 얼결에 뜻밖의 인사를 받고 당황스러웠지만, 용케도 순발력을 발휘하여 답례 인사를 해주었다.

---예쁜 어린이 여러분도 안녕하세요오.

아이들하고 소통이 되는 것 같은 기분에 고무된 그는 앞자리에 서있는 한 아이에게, 넌 이름이 뭐니, 하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러자, 네, ***입니다, 하는 똑 부러진 대답이 나왔는데, 그 옆에 서있던 다른 아이에게서도 꼭 같이 우렁찬 인사말이 나왔다.

---네에, 저의 이름은 ***입니다아.

이민호 씨는 청하지도 않은 말대답을 건네는 기특한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까지 하고는 자리를 떴다. 똑똑한 제자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선생이 존경스러웠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확실한 자기주장의 기초 훈련이라는 것이 유치원 선생의 생각일 것 같았다. 이민호 씨는 손주 녀석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그 녀석도 낯선 사람 앞에서 저처럼 똑똑하고 당찬 인사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소나무숲 공원을 나온 이민호 씨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였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 색깔이 더 어두워진 것 같았지만, 골프장 입구를 둘러보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시 걸음을 떼어놓는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아직도 걸려있는 것은 오늘 아침에 며느리하고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인 일이었다.

다툼의 원인은 손주녀석 준식이의 교우관계 문제였다. 준식이의 같은 학급 친구인 웅철이와 민석이 두 아이 중에서 민석이를 집에 데려오는 것이 좋다고 말한 며느리에게 그가 노골적으로 타박한 것이었다. 두 아이 모두 준식이하고 허물없는 사이여서 서로 돌아가면서 친구네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을 정도가 되었는데 며느리는 아들의 친구 선택 기준을 음식 먹는 버릇에서 찾는다는 말을 오래 전부터 해온 터였다. 부잣집 아들인 웅철이는 자기네 집에서 잘 차려 먹는 탓인지 먹고싶은 것만 골라 먹고 싫은 것은 손도 대지 않는 모습이 밉상스러운 반면에, 집안이 넉넉지 못한 민석이는 먹성이 좋아서 아무거나 주는 대로 맛 있게 잘 먹는다는 얘기였다.

오늘 아침에는 그동안 참았던 말을 며느리에게 다 털어놓은 셈이다. 민석이처럼 누가 내놓는 음식을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것은 자기 나름의 취향이나 소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가 자라나면 얼마나 줏대없는 인물이 되겠나, 웅철이 같은 아이라야 자기주장이 확실한 통 큰 인물이 될 것이고 준식이는 웅철이하고 친구가 되어야한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어떤 주장이나 요구를 해도 무조건 따른다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이민호 씨는, 며느리에게 너무 다그친 것만 같았다. 동거중인 막내아들네 내외 앞에서는 목소리를 낮춰야하는 그의 처지가 딱하였다. 위로 3남매를 키우고 교육시킬 때는 3선 국회의원의 위세가 당당하였지만, 막내아들 하나를 키울 때는 연거푸 세 번 낙선의 고배를 마시느라 자식들 교육 같은 건 돌아볼 경황이 없었다. 그 여파로 막내아들은 지금 빠듯한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이고, 늘그막의 그는 그런 막내에게 얹혀 살아야 하는 신세이다. 잘 키운 3남매는 모두 서울로 가버렸는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뜻밖의 상처(喪妻)를 만난 결과로 맞게된 말년의 불행이었다.

골프장 입구가 저만치에 보이는 곳에서 걸음을 멈춘 이민호 씨는 길가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기로 한다. 아들네 집에 얹혀 살아야 하는 신세이니 며느리의 눈치를 보아야 하지만, 손주 녀석에게만은 떳떳한 할배가 되고 싶은 것이 이민호 씨의 심정이다. 할배가 손주에게 신뢰를 얻는 길이 뭔지를 궁리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요즘은 세상 변하는 것이 너무 빨라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고, 뭐라고 한 마디 하려고 하면 꼰대라는 말을 들을까 저어된다. 내가 쓸 용돈이 궁한 마당에 아이에게 쥐어줄 돈도 없다. 이래저래 뾰족한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만치 길가 소나무에 반쯤 가려진 덤불이 그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오래만에 보는 산딸기나무이다. 곧바로 그쪽으로 걸어가 봤더니 불그스레 잘 익은 산딸기가 탐스럽다.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손주 녀석 준식이가 이걸 보고 좋아하는 모습이다. 주저할 것도 없이 산딸기를 부지런히 따면서 그 옆을 살펴보니 산딸기나무는 여러 개가 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었지만, 이곳을 지나는 것은 자동차 뿐이고 행인들이 없으니까 이상할 것도 없다. 견물생심으로 욕심껏 따넣다 보니 등산복 양쪽 주머니가 수북하다.

빗방울이 우두둑 떨어지면서 이민호씨는 부랴부랴 돌아갈 채비를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싶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데 버스 타는 데까지는 도보 반 시간의 거리인 것이다. 문득 생각나는 것은 그에게 차창을 열고 인사를 했던 골프꾼들이다. 나를 보면 제꺽 편승을 시켜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손을 들고 차를 멈추게 하리다 마음 먹고 대뜸 길 한가운데로 나선다.

그러나, 오늘 따라 멈추는 차가 없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겠지만 너무 실망스럽다. 공동묘지에서 온다고 생각되는 차 앞에서는 아예 손을 흔들지 않는다.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에게 인사하기 위해 멈춘 중소형차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대치 않았던 작은 차가 그에게 편승기회를 준다. 작은 차 뒤에 큰 차가 뒤따르는 것을 본 그는 뒤에 오는 큰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앞서 오던 작은 차가 세워준 것이다. 차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벌초연장들이 가득 차있어서 비좁기는 했지만 비에 젖은 몸을 앉히기는 좋다.

얼마 후 큰 봉변은 피하고 집에 돌아온 이민호씨, 며느리에게 오후 나들이의 전말을 대충 전한 다음에 허탈하게 한 마디 한다.

---늙은이라고 괄시해서 태워주지 않는 건지, 야속하더라. 널찍한 좌석인데도 말이지.

---고급차 타는 사람들, 있는 척하는 건 젊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집디다. 아버님은 옷까지 젖었는데 태워줄 리가 있겠습니까. <소설가 양영수>

<양영수의 꽁트>는...

소설가 양영수. ⓒ헤드라인제주
소설가 양영수. ⓒ헤드라인제주

바야흐로 영상시대라고 한다. 이야기문학을 감상하는 것도 문자매체보다 영상매체를 통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영상매체 속에서는 금방금방 장면이 바뀌는 스토리라인을 사람이 따라잡아야하기 때문에 깊이있는 사색과 음미가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 마음이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생체리듬과 심리적인 템포에 따라서 메시지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에는 문자매체를 이용하는 독서가 좋은 방법이다.

꽁트 연재를 통해 필자가 바라는 희망은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양영수 작가 

제주 태생의 소설가.  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 졸.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교수 정년퇴임.

그 동안 내놓은 작품들로는 단편집 '마당 넓은 기와집' (2008년), 장편소설 '불 타는 섬' (2014년,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복면의 세월'(2019) 등이 있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쓸쓸함 2020-03-09 09:54:09 | 39.***.***.65
자본주의 시대 가장 숭배받는 건 결국 돈입니다. 돈누로 권력도 살 수 있고 명예도 살 수 있고 목숨도 연장할 수 있고..참으로 쓸쓸하고 씁쓸함이 묻어나는 이야기네요. 현실을 적나라하게 직시하기엔 너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