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제주농업의 발전과 새로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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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제주농업의 발전과 새로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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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32) 역사 시대의 제주의 농업

8·15 해방은 제주농업에 있어서 제 길을 열어주는 중요한 계기이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이전 까지는 축적된 경제 기반이 없었고 농업과 축산, 수산업에 의존하여 생활하여왔다. 일제강점기에는 고구마, 맥주맥, 제충국, 박하, 담배 등 공업원료의 작물 생산에 중점이 두어져 식량작물 생산은 뒤로 밀렸고, 생산기술도 발전하지 못한 채 광복을 맞이했다.

광복 이후에도 4·3사건 등으로 인한 농지황폐화, 사회질서 유지 등 도정 우선시책 추진 등으로 자급자족의 농경 형태가 지속되었다. 제주 농업은 생계유지를 위한 보리 재배가 주된 작목이었으며 환금 작물인 고구마, 유채 등의 재배가 늘었다.

1957년 제주도농업기술원이 설립되었으며 1960년 이후 유채 재배가 대대적으로 이뤄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1960년대 중반까지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와 고구마였다.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농업기술원과 제주대학교 농학과 등 연구기관의 활발한 활동으로 감귤과 고구마, 유채가 경제 작물로 재배되어 제주 농업은 자급자족이 아닌 판매를 위한 상업적 농업의 시대를 알렸다. 특히 감귤을 중심으로 재배면적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농업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비료의 생산과 공급을 보면, 1960년대 들어서 비료의 수요는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행정적으로도 연도별 자급비료 생산계획을 수립하여 생산을 독려하여왔다.

1970년대가 되면서 도시 대자본이 제주도 감귤산업에 투자되기 시작하여,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규모가 30㏊ 이상 되는 대규모 농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고구마와 유채, 감귤 등이 경제작물로 정착되면서 제주 농촌 발전의 일대 전기가 마련된다. 특히 지하수 개발을 통한 농업용수가 확보되면서 다양한 작목재배가 가능해지며 이후 마늘, 감자를 비롯한 양배추, 무, 양파, 당근 등 월동채소가 중요한 재배작물로 자리 잡는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특히 비료의 생산과 공급 측면에서 보면 1975년 이후가 되면서 자급비료의 생산 독려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화학비료의 공급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1980년대가 되면서 제주도의 감귤산업은 최대 번성기를 맞으면서 제주농가 소득의 50~60%를 점유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때 제주도의 전통적인 식량작물인 보리 재배는 자취를 감추었다. 감귤산업이 제주도 농가소득의 50~60%를 점유할 정도로 제주의 농업과 경제는 감귤산업 단일 작물 하나로 집중되었다. 1980년대 후반 바나나 등 시설 재배가 농업 조수익의 9%를 점유하기도 하였으나 바나나 수입 자유화로 명맥은 이어지지 못하였다. 화학비료의 공급은 1988년 1월 판매자유화가 되면서 1990년 이후 비료 사용량을 급속하게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1990년대 들어 감귤산업은 최대 전성기를 맞으면서 제주 농업 조소득의 67%를 점유하게 된다. 이 시기에 제주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감자 재배를 시작하여 1991년도에는 농가 총 조수익의 4.4%를 차지하는 감귤 다음으로 농가 소득 작물로 등장한다.

제주도 농가 총 조수익의 67%를 점유하던 감귤산업은 2000년대 들어 점차 쇠퇴사업으로 전락하면서 농가 총 소득의 40% 이하에 이르렀다. 감귤산업을 위협하는 산업이 내부에 있지 않고 외부, 즉 외국 농산물의 수입에 있음은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었다.

이 시기에 감귤산업의 틈바구니에서 감귤 재배가 어려운 제주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하여, 감자가 제주도의 경제작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91년도에는 감자가 농가 총 조수익의 4.4%를 점유하여, 감귤 다음으로 제주도 농가의 소득 작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에는 제주 농업의 선도 작물이 사라지면서 대응작물이 출현되지 못했다.

다만, 감자의 비중이 13% 수준, 마늘이 7.7% 수준까지 이르기는 하였으나 많은 종류들이 조수익 구성비에서 평준화되어가는, 즉 다품목 소량생산 현상이 제주도 전체 농업의 현상이었다. 2000년에는 비료의 적정시비 교육과 유기농업이라는 관점이 등장하면서 비료 사용량은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기계 도입은 1966년 처음으로 경운기 6대가 보급된 것을 시발점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10년 후인 1976년에는 2,574대, 2000년에는 2만 6,598대가 보급되었다. 트랙터의 보급은 1971년 43대를 시작으로 2000년에 2,330대가 보급되었으니 2000년 기준 트랙터 1대당 25.4㏊, 경운기 1대당 2.2㏊, 동력분무기 1대당 2.7㏊를 관리하게 되어, 전국 평균치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동력분무기는 감귤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과수원을 개원하면 필수 농기계로 갖추도록 권장되었다. 1995년 이후에는 감귤 농가에 스프링클러의 보급이 이루어졌으나, 방제의 효율성이 낮아 많이 보급되지 못했고, 농가에 부담만 안겨주고 말았다.

제주도에서 식량작물은 맥류·조·쌀·두류가 주종을 이룬다. 1950년대 이후 1965년까지 식량작물의 생산은 점진적으로 증가했고, 이후 점차 감소하여 1995년 생산량이 1953년도 생산량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1965년도 전후는 제주도 식량작물 생산의 전환점이 되고 있으며 이는 곧 농업생산이 식량작물 생산에서 경제작물 생산으로 전환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식량작물의 주종을 이루던 나맥의 경우 1975년 이후 급격히 감소하여 1990년 이후에는 전체 식량작물의 생산량 비율에서 5% 이하가 되어 식량작물의 의미는 상실되었다. 1980년 이후에는 대맥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였는데, 이는 맥주원료로 판매되기 때문이고 식량의 의미는 전혀 없었다.

1960년대 감귤나무 결혼기념 식수 모습(왼쪽), 1970년대 절간 고구마 생산 모습.
1960년대 감귤나무 결혼기념 식수 모습(왼쪽), 1970년대 절간 고구마 생산 모습.

1960년도를 전후하여 특용작물로 고구마·유채 등을 생산하던 것이 무·양파 등으로, 식량작물에서 경제작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환의 매개는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개발된 지하수 관정을 이용한 상수원 개발로 농업용수 난 해결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때부터 원예작물이 경제작물의 대상으로 부상하였다. 제주도의 농업은 1980년대가 되면서 원예작물 중심으로 크게 바뀌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중반 제주도의 농업은 감귤이라는 단일작물로 집약되었다면, 1980년대에는 원예작물 생산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파인애플 생산과 바나나의 생산을 시도하여, 1988년도에는 농가 조수익 구성비에서 이 두 작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10.4%에 달하였다.

그러나 1991년부터는 그 비율이 2.8%, 5년 후에는 0.04% 이하로 낮아지면서 결국 제주 농업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농산물 개방과 우르과이라운드(UR) 협상이라는 국제적 개방환경에서 바나나와 파인애플은 1~2년 사이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바나나가 제주도 최대 경제작물에서 물러나면서 남기고 간 것은 철재 파이프 비닐하우스 시설이다.

제주도에서 화훼 재배는 역사가 매우 짧아 공식적으로는 1988년도부터 집계되었다. 화훼에 대한 연구와 소규모의 재배는 1980년경부터 양란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이어 백합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제주도에서 경제적 의미의 화훼가 생산·재배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시대의 제주농업은 관광산업과 함께 제주지역 경제를 이끌어 가는 양대 축을 형성되었고 이후 1차산업은 최근 그 비중이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3차산업에 비해 성장률도 둔화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제주 지역의 1차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귤이 시장 개방과 과잉 생산 등으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제주농업으로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 되고 있다.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 <제주농촌진흥 60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등을 두루 거쳐 현재는 제주도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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