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의 역사, 제주의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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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30) 역사 시대의 제주의 농업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했다. 8·15 해방으로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한 건국준비위원회가 전국적으로 조직되었다. 이러한 자율적인 움직임과 함께 제주도에는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미군정은 도청과 경찰의 요직에 일제 때의 관리를 그대로 기용하면서, 우익인사들을 조직화시켜 인민위원회에 대항할 세력을 키워갔다.

미군정의 정책은 도민의 반대에 부딪혔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중첩되면서 3·1사건과 4·3사건으로 도민들의 불만이 표출되었다. 광복 직후 제주사회는 6만여 명 귀환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의 창궐, 극심한 흉년 등으로 겹친 악재와 미곡정책의 실패, 일제 경찰의 군정 경찰로의 변신, 군정 관리의 모리(謀利) 행위 등이 큰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다.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 참가했던 이들의 시가행진을 구경하던 군중들에게 경찰이 총을 발사함으로써 민간인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3·1절 발포사건은 어지러운 민심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에 남로당 제주도당은 조직적인 반경찰 활동을 전개했고,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민·관 총파업이 이어지는 4.3항쟁이 발발한다. 4·3의 인명 피해는 2만 5천~3만 명으로 추정되고, 강경진압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으며, 가옥 39,285동이 소각되었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제주 사회는 또 한 번 격변하였다. 4·3의 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제주에는 엄청난 수의 피난민과 중공군 포로가 밀려들었다.

4·3에 이은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제주도민은 권위주의적인 반공국가체제하에서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의식과 함께 국가의 물리력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게 되었다. 4·3으로 인해 제주지역 공동체는 파괴되고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었으며, 무엇보다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참혹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4·3특별법 공포 이후 4·3으로 인한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21세기를 출발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마침내 2005년 1월 제주도는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다.

제주의 행정을 보면, 미군정시기인 1946년 제주도가 도(道)로 승격되었고, 1955년 9월 1일 제주읍이 시로 승격되었다. 1962년 1월 1일에 14개 동의 행정동이 설치되었고, 1979년 5월 23일에 일도동이 일도1동·일도2동으로, 이도동이 이도1동·이도2동으로 오라동이 오라동·연동으로 분리 되었다. 1983년 10월 1일에 삼도동이 삼도1동·삼도2동으로, 1985년 10월 1일에 용담동이 용담1동·용담2동으로 분리되었다. 2006년 7월 북제주군을 통합하면서 일도1동 등 19동, 한림읍 등 4개읍, 한경면 등 3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조선시대까지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특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던 제주도는 1948년의 이른바 제주 4·3사태 등 현대사의 아픔을 겪으면서 취락의 구조 등에도 변화가 초래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변모는 1960년대 이후부터 이루어져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관광지로, 감귤 등의 상품작물의 재배지로 지역의 특성이 변모되었다.

4.3 평화공원의 비문이 없는 비석(왼쪽),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4.3 평화공원의 비문이 없는 비석(왼쪽),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본격적인 제주의 변모는 1960년대 이후부터 이루어져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관광지로, 감귤 등의 상품작물의 재배지로 지역의 특성이 변모되었다. 특히 1990년대부터 제주도 개발의 기본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장기계획을 수립하여 제주도 고유의 향토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키고 있다. 또한, 자연 및 자원을 보호하고 산업을 육성함과 동시에 관광여건을 조성함으로써 도민의 복지향상과 발전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도들과는 달리 지속적인 인구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70년대에 35만 여 명이던 인구는 2010대 들어 60만에 돌입하여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대도시를 제외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촌 지역들이 1960∼1970년대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이촌향도 현상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제주도가 지속적인 인구증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이후 바나나·감귤 등 상품작물의 성공적인 재배로 농가소득이 증대된 것과 더불어, 관광·서비스산업의 진흥에 따라 외지인들이 유입된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도내 인구 분포 양상을 보면, 제주시의 계속되는 인구증가와 나머지 지역들의 인구 절대감소현상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1970년대 초반에 제주도를 본격적인 국제관광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특급관광호텔과 쇼핑센터, 그리고 각종 위락시설이 밀집해 있어 연일 국내외 관광객들로 붐빈다. 지금까지 제주도 개발은 중앙정부에서 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하는 하향식 개발이 주를 이루었다. 이후 여러 차례 유사한 개발계획이 논의되거나 수립되었는데, 하향식 개발의 문제점과 한계가 부각되면서 1991년 말에는 제주도민이 개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하에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정·공포되었다.

1990년대에는 「제주도개발특별법」에 근거해 수립된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을 토대로 각 부문별로 개발이 진행되었는데, 시장개방에 대응해 제주농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관광거점을 확대해 제주도를 국제수준의 관광지로 조성하며, 개발과 보전이 조화를 이루는 지역 및 산업의 발전, 그리고 독특한 향토문화 창달과 도민의식의 선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사업들을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제주의 고유한 특성과 발전 잠재력, 그리고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광, 의료, 교육, 청정 1차산업에 IT·BT 등 첨단과학기술 산업을 접목시켜 내고 있다. 2006년 7월 1일부터 특별자치지역으로 전환되어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독자적인 자치권을 갖는 제주특별자치도로 새로 출발했다. 자치 입법권 강화, 자치조직·인사 자율성 강화, 의정활동 강화, 주민참여 확대, 자주 재정권 강화, 교육자치 강화, 자치경찰제 실시 등 자치기능이 확대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함에 따라 기초자치단체인 시군을 폐지하고 제주 단일 광역체제로 전환되어 2행정시, 7읍·5면·31동으로 개편되었다. 지금까지의 국가 주도의 성장과 개발 중심에서 탈피해 지역과 지역, 중앙과 지역이 함께 연대하고 협력하면서 유연하고 스마트한 제주를 가꾸어가기 위한 제주의 새로운 미래상이 제시 되고 있는 가운데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 2009년 세계문화유산 지정, 2010년 세계지질공원 인증 등 제주도 전체가 유네스코 등재유산인증 받으면서 인류 문화 유산의 보고가 되고 있다. 또한 2013년에는 제주 밭담이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해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인정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앞으로 제주는 ‘평화의 섬’을 지향하는 제주의 현장은 살아 있는 역사 체험 현장이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현대사의 제주도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만나는 요충지였기에 주변 열강 세력들의 지각 변동 있을 때는 전선의 역할을 하여 한민족 역사의 현장이요, 세계 역사의 현장이다. 제주는 또한 역사적, 학술적, 문화적, 생태적, 경관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제주에는 제주 사람들의 얼과 혼이 서려있고 역사의 숨결이 흐르고 있다. 1차산업과 관광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함으로써 제주지역 산업구조를 개편하며, 지역주민의 기초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활권을 조성하고 각종 개발혜택을 지역화 함으로써 장소의 번영이 아니라 주민의 실질소득증대를 높이는 방향과 함께 자연경관 및 환경보전체계를 확립하여야 한다. 제주농업의 원류를 찾아내어 제주농촌에 흐르는 역사와 전통을 밝혀내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등을 두루 거쳐 현재는 제주도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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