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수의 꽁트] (4) 희미한 옛 그림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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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수의 꽁트] (4) 희미한 옛 그림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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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이것은 어떤 시인의 유명한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나의 출신 대학인 **예술대학의 동기동창들이 만든 남산클럽 인터넷카페의 초기화면 간판에 걸려있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찾아서’라는 글귀도 아마 이 싯귀에서 따온 것이라 생각된다.

백 여명이나 되는 남산클럽 회원들 중에 보통 스무 명 정도가 월례 모임에 나타난다고 하며, 해마다 연말에 있는 송년회 겸 정기총회에는 반백 명이나 모인다고 한다. 인터넷카페를 이용한 온라인 소통의 효과가 오프라인 소통에까지 확산된 것이다. 나는 멀리 제주도에 살고있다는 핑계로 그동안 남산클럽의 모임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남산클럽 회원들 중 나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해 연말에 우리 남산클럽의 신임 회장인 한병주가 나에게 특별히 장거리 전화를 걸어서 송년회 참석을 권했을 때에도 나는 종전처럼 불참 의사를 표하였다. 그래 놓고서 며칠이 지나는 사이에 내 마음이 참석 쪽으로 기울어진 것은 한병주하고의 각별한 친분관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병주의 출신지는 거제도였다. 우리 두 사람은 변방의 섬에서 온 외톨이 신세이면서 가난한 고학생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동병상련의 교감이 오가는 동지였다. 일찍이 소설가로 등단한 한병주는 지금 중견작가 대우를 받는 처지여서 나로서는 부럽고도 존경스러운 친구였다. 한병주라는 그의 이름을 놓고 친구들끼리 ‘막걸리 한 병 주오’ 하는 식으로 놀려대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가 송년회 참석을 종용하는 두 번째 전화를 걸어왔을 때에는, 나에게 제주도문화를 테마로 하는 30분 짜리 교양강연을 부탁하였는데 이것이 나의 마음을 참석 쪽으로 돌려놓았다. 한병주 자신이 섬 출신이라서 그런 테마를 생각해 낸 모양이었지만, 하여간에 제주도에 관심을 가져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본토 문화와는 많이 다른 제주도 특유의 전통문화 담론 가운데에는 그네들의 흥미를 자아낼 화제도 많을 것 같았다. 동창회 이름으로 모여놓고서는 먹고 마시고 그냥 놀다가 헤어지느니 회원동지로부터 30분 짜리 교양강연이라도 들으면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 회원들 간에 의미있는 화제를 이어가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취지로 신임 회장이 내놓은 참신한 방침이라고 했다.

내 마음이 남산클럽 참석 쪽으로 결심을 굳히는 순간 나 자신의 쇠잔해져가는 기억력이 더욱 서글프게 느껴졌다. 내가 동창회에 나간다 해도 몇 사람이나 나의 얼굴을 알아봐 줄까 생각하니 나에게도 대학생 시절이란 게 있었던가 싶게 그 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워낙 작은 규모의 대학이어서 대학동창 중에 제주도 거주자는 한 사람도 없으니 나의 대학시절 기억을 일깨워주는 기회도 차단된 셈이다.

오래 전 대학 다닐 때의 기억이 깜빡깜빡 아슴프레한데 이런 현상은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구닥다리 컴퓨터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컴퓨터의 메모리 장치는 아무리 낡은 것이어도 한번 입력한 것은 지워지는 일이 없지 않은가.

살아 숨쉬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기억장치 못지 않게 확실한 망각장치가 작동하고 있음을 어찌하겠는가. 사람 마음의 메모리 장치에서는 새 정보의 입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오래 전에 입력된 묵은 정보를 강화하는 일이다. 그렇다. 나는 컴퓨터가 아니다. 어딘가에 숨겨져있을 나의 흐릿한 기억 속의 콘텐츠를 강화하기 위해서 과거의 시간과 장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내가 간직한 기억 수첩과 유사할 것 같은 다른 동료들의 기억 속 콘텐츠를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정체가 불분명한 고문서의 내용을 밝혀내기 위해서 이와 유사한 다른 이본(異本)들과 비교하고 대조하는 것은 상식이지 않은가. 나는 이만 하면 남산클럽 참석의 이유가 충분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모처럼 추억여행 떠나는 심정으로 서울나들이에 나섰던 것인데 제주공항에서 김포공항까지의 여정은 나의 의도를 크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내가 옛날에 대학 다닐 때에는 제주-목포 간 연락선의 3등선실에서 실컷 시달리고 나서 다시 목포-서울 간의 완행열차에서 열 다섯 시간을 시달려야 했는데, 그런 고생이 전혀 두렵지 않을 정도로 패기만만한 젊음과 체력이 있었다. 이제는 제주-서울 사이를 한 시간이면 비행기로 후딱 날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니 과거의 나 자신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생각이 다 떠오르는 것이었다.

김포공항을 나선 나는 옛날 나의 모교가 위치했던 남산 북쪽 기슭의 소나무 숲지대로 향하였다. 우리가 다니던 **예술대학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 모교가 있던 집터까지 그렇게 싸그리 달라진 것은 미쳐 몰랐었다. 기억 속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우리 모교의 캠퍼스 자리에는 우람한 고급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서 과거에 그곳이 어떤 자리였는지를 상상케하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쁘게 만들어진 어린이놀이터 미끄럼틀에 걸터앉아서 마침 그곳에 놀러나온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멋쩍게 물러나오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남산클럽 송년회 자리인 어느 관광호텔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나의 마음은 배신당한 기대감 때문에 울적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 옛날 학우들과 호텔 로비에서 간단한 인사를 나눈 끝에 나의 교양강연 장소인 이 호텔 소회의실로 들어가면서 나의 울적했던 기분은 많이 풀리고 새로운 활기가 솟아나고 있었다. 오래만에 만나는 그들의 얼굴이 친숙하다고 느껴진 것은 아니었으나 나하고 뭔가 공통된 과거를 갖고있는 얼굴임은 확실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사람얼굴이란 감정과 의지가 없는 물체하고는 다른 것이었다. 사람얼굴이 아니고 다른 어떤 물체였다면 30년 넘은 세월을 지나고도 과거의 흔적을 이렇게 확실하게 간직할 수 있었을까. 사람의 손이 가지 않는 산이나 강이든, 사람 많이 다니는 시가지의 풍경이든, 오랜 세월을 견디고도 이처럼 불변의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는 사람얼굴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눈빛과 표정이 있었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도 기본적인 바탕은 변하지 않는 저마다의 독특한 아우라를 이루면서 나하고의 어떤 교감이 형성되는 것 같았다.

내가 나의 연설 서두에서 작은 실수를 범한 것은 어쩌면 내가 옛날 친구들과의 교감을 너무 믿고 들어간 탓인 것 같다. 교양강연 연단에 올라선 나는 청중을 한번 둘러본 다음에 나에게 주어진 테마인 제주문화론으로 맞바로 들어가지 않고 나 자신의 신상 발언을 먼저 해버린 것이다. 우리 동창회의 인터넷카페에 게시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찾아서’라는 구절은 나에게 맞지 않으며, 나에게 해당되는 표현은 ‘희미한 옛 그림자의 사랑을 찾아서’가 맞을 것이라고 했다.

대학시절에 아름다운 추억꺼리가 많았던 사람의 경우에는 그 때의 일들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남아있을 것이지만, 나와 같이 떠올리고 싶은 추억꺼리가 없고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는 다정한 학우들이 없는 외톨이 신세로서는 다만 희미한 옛 그림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이런 말을 하고 나서야 나는 이것이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리에 처음 출석한 동창회원으로서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하면 족할 것을 무슨 대단한 자기변명이라고 심각하게 늘어놓았는가 싶었다. 청중들 대다수가 나의 발언을 듣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중에 몇 사람은 분명히 비호감의 표정을 드러냈고, 이를 본 나는 뒤늦게야 나의 실수를 후회하였다.

나는 급히 심기일전하여 나에게 주어진 연설테마에 집중하기로 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던 것은 제주도 전래의 신화 이야기였다. 그것은 제주도 출신 국어교사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테마였고, 나는 제주도 방언에 대한 연구와 병행하여 제주신화 연구를 틈틈이 해놓았던 것이다.

제주도 신화의 특징을 나는 기층민 원리, 평화의 원리, 여성원리 등으로 풀이하고 있었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청중들에게 제일 흥미 있을 것 같은 여성원리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마음 먹었던 차였다. 제주신화 이야기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강인하고 똑똑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그러면서도 남성과 여성은 주도권 다툼을 벌이기보다는 화목한 애정관계를 열어가며 이 같은 애정관계는 남자 한 사람과 여자 두 사람 간의 삼각관계에서 두드러진다는 것이 나의 발표 요지였는데 나는 구체적인 스토리를 예로 들면서 설명하였다. 제주도 토백이인 나 자신도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인데, 한 남자와 두 여자가 한 울타리 안에서 살림을 차리는 희한한 일부다처 사례가 나온다는 것이다. 어느 마을에 사는 남자가 자기 아내가 길 가다가 부정한 짓을 했다고 해서 멀리 마라도로 쫓아내버리는데, 새로 들어온 작은부인이 그런 내력을 듣고서는 ‘나도 어쩌다가 한눈 팔면 쫓아버릴 거우꽈. 내가 가서 성님을 데려오겠우다’라고 일렀고, 이렇게 당차고 너그러운 새 부인의 거중조정으로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는 원만한 애정삼각관계를 열어간다는 것인데, 이 같은 서사구조는 여러 가지 변형본들이 있으며, 비단 신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제주도의 전통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있었던 풍속도였다는 것이다.

나의 제주신화론 강연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조마조마하였는데 청중 중에 한 사람이 대뜸 손을 들고 질문을 하였다.

--선사시대는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여성상위 사회였다는데 제주도에는 아직도 선사시대 풍속이 남아있는 거네요.

강연이 끝나자 마자 질문을 하는 품이 마치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것을 묻는 것 같았다. 단정한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어서 특이한 인상을 주지는 않았지만, 질문하고 나서 살짝 웃음 짓는 표정이 나의 기억에도 초면의 인상은 아님이 확실하였다. 나의 대답이 금방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제주신화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언젠가는 여성상위 시대가 온다는 말들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제주도는 미래의 역사발전에 선도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주의 전통사회에서는 외형적인 법과 제도상으로는 남성상위였지만 가정생활과 애정관계의 내면에 있어서는 여성우위라는 것을 제주신화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호기있는 나의 발언에 대해 옳소, 우리 집 손녀딸은 제주도로 보내야겠네요, 등의 화답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아까 나에게 질문을 던진 여자를 다시 바라보았더니, 나의 기억 속에 점점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임을 알 수 있었다. 기억 속의 그 얼굴과 더불어 오래 잊혀졌던 대학시절 추억의 한 가닥도 분명히 생각나기 시작했다. 나의 강연이 있던 자리에서 정기총회 형식의 안건 처리까지 끝난 다음에 호텔식당에서 각자가 저녁식사 테이블에 자리를 찾아갈 때에 나는 이 특별한 기억 속의 여자가 나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동창회장인 한병주는 자기 좌석 옆에 내가 앉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나의 관심사는 자연히 우리 앞 자리에 누가 앉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 앞 자리로 다가온 여자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내가 점 찍은 여자가 아닌가. 부지런히 기억수첩을 더듬던 나는 드디어 그녀의 이름이 양미혜였음도 생각해 냈다. 양미혜는 앉자마자 다시 제주도 얘기를 꺼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 속에서 옛날 어떤 기억의 자취를 찾아보려는 마음으로 한동안 잠자코 숨을 죽이고 있었다.

--오늘 제주도 신화 이야기 참 재미있게 들었어요. 저의 집안도 원래 제주도 원주민이었다고 하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까 양미혜 씨와 양창수 씨는 같은 종씨네요. 고량부 삼성은 원래 제주도 원주민들 아닙니까.

자기 자신이 섬 출신인 한병주는 제주도 역사에 대해서도 뭔가 알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저의 얘기에 관심이 많으셨군요. 이거 정말 반가운 만남이네요. 오늘 제가 멀리서 비행기 타고 날아온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양미혜에게 던지는 인사치레를 한 다음에 좌중 담화의 기회를 동석한 사람들에게 넘기고 대학생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느라고 바빴다. 내가 그 당시에 얼마나 주변머리 없는 남자였는지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었다.

같은 양씨라는 사실이 양미혜와 나 사이의 화제 전개에 손쉬운 도입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 황량한 사막 가운데에 샘 솟는 오아시스가 있듯이 나의 삭막한 대학시절에도 아름다운 추억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었다. **예술대학 합창부에 한 축 끼여 노래 불렀던 추억이 아련하게 남아있고 그 당시 합창부 활동을 함께했던 양미혜의 얼굴이 이제야 똑똑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마냥 수줍은 나의 성미로 그 합창부에 가입한 것은 활동적인 한병주의 꼬드김을 받고서 가능한 일이었다. 예술대학 학생들답게 합창부원들의 노래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기억된다. 합창단원 대다수가 여학생들이었다. 이들 예쁘고 세련된 여학생들에게서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노래소리 가운데에 나 자신의 목소리가 섞여나온다는 것, 그것은 설렘이었고 두근거림이었고 황홀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야 했다. 나의 노래실력을 잘 알고 있던 나는 나의 목소리가 표나게 튀어나지 않도록 명심했던 것이다.

합창발표회 날에는 핑계를 대고 슬그머니 빠져버렸다. 그 날 합창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질 때 나는 객석 맨뒤 자리에 숨을 죽이고 앉았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귀를 기울여서 들었다. 그 당시 합창부에서 내가 배운 노래 중에 제일 강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을 편곡한 ‘보람이 옵니까’라는 노래이다. 비창 교향곡은 그리 쉽지않은 작품이지만 내가 지금도 이 교향곡의 한 소절만을 듣고서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대학시절 한 학기 동안 어설프게 합창부에 기웃거렸던 전력의 덕분이다. 이 곡을 들으면 요동치던 슬픔이 다소곳한 슬픔으로 변한다고나 할까, 대가들의 명곡과 명연주에 대응하는 맞울림 공명판을 나 자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다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오늘 모임에서 어떤 순서가 남았는지 궁금증이 커진다. 아마도 저녁식사가 끝나면 자리를 옮겨서 어떤 형태로든 뒷풀이가 있을 것이다. 나의 바람대로 마지막 뒷풀이 장소인 단란주점 노래방에까지 한병주와 양미혜와 그녀의 옆자리 친구까지 동행한다. 다른 사람들도 여럿이 동행했지만 나의 안중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노래방 동지들의 수가 확 줄어든다. 이것도 내가 바라는 바이고 양미혜만 있으면 된다 싶다. 틈틈이 마신 술로 취기가 슬슬 오르는데 이것도 내가 바라는 바이다. 동석자들이 마이크 잡고 노래하는 중에 기회를 보아 양미혜 옆자리에 앉기에 이른다. 그녀에게 물어본다. 옛날 우리 합창부에서 불렀던 ‘보람이 옵니까’ 기억나요? 대답이 영 시원치 않다. 술기운이 막 달아오른다. 노래를 못했던 나도 기억하는데 ‘보람이 옵니까’가 기억 안 난단 말이오? 옛날 **예술대학 합창부에서 낭랑하게 노래불렀던 거 잊어먹었남요, 이거, 정말 ……. <양영수 /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양영수의 꽁트>는...

양영수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헤드라인제주
양영수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헤드라인제주

바야흐로 영상시대라고 한다. 이야기문학을 감상하는 것도 문자매체보다 영상매체를 통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영상매체 속에서는 금방금방 장면이 바뀌는 스토리라인을 사람이 따라잡아야하기 때문에 깊이있는 사색과 음미가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 마음이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생체리듬과 심리적인 템포에 따라서 메시지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에는 문자매체를 이용하는 독서가 좋은 방법이다.

꽁트 연재를 통해 필자가 바라는 희망은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양영수 작가 

제주 태생의 소설가.  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 졸.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교수 정년퇴임.

그 동안 내놓은 작품들로는 단편집 '마당 넓은 기와집' (2008년), 장편소설 '불 타는 섬' (2014년,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복면의 세월'(2019)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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