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 대응 속 대화 열어둔 文…광복절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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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 대응 속 대화 열어둔 文…광복절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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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언급, 美 관여 유도 구상…협상 진전 따라 8·15 메시지 수위 결정

일본 정부가 2일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 내 한국 배제를 골자로 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 2차 경제 보복을 단행함에 따라 한일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운 최악의 국면에 빠지게 됐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양국 갈등의 촉발점이자 과거사와 연결된 8·15, 광복절로 쏠리게 됐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늘 한일관계의 바로미터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긴급 국무회의를 주재해 일본을 향해 강경하게 맞서겠다면서도 여전히 대화의 문은 열어뒀다. 개정안 발효일인 오는 28일까지 25일 이상 남아 있는 상황인 데다 미국의 관여가 본격화될 조짐이 보이자 한일 간 관계 회복에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한일 관계 향배에 따라 대통령 광복절 메시지 수위도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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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뉴시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으며, 이번 조치는 우리 정부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의 성격임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외교적 해결 노력을 외면하고 상황을 악화시켜온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는 것이 명확해진 이상,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책임도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했다.

또 "일본 정부의 조치 상황에 따라 우리도 단계적으로 대응조치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이미 경고한 바와 같이, 우리 경제를 의도적으로 타격한다면 일본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외교적 해법의 필요성도 놓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지금도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을 원치 않는다"며 "멈출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일본 정부가 일방적이고 부당한 조치를 하루 속히 철회하고 대화의 길로 나오는 것"이라고 다시금 촉구했다.

단호한 대응을 천명하면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은 데에는 여전히 한일 갈등의 진로를 결정할 여러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본 각의가 개정안을 의결했지만 시행까지는 나루히토(德仁) 일왕 명의의 개정안 정령(政令) 공포와 21일간의 발효기간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오는 28일부터 이 같은 조치가 시행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발효일까지 25일 이상 남은 시점에서 섣불리 대화 창구를 닫아버릴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그것을 선호한다"며 여전히 여지를 남겨뒀다.

아울러 미국의 역할도 또 하나의 변수다. 미국이 한일 정부에 '현상동결협정'(standstll agreement) 체결을 요청하며 관여 의지를 나타낸 상황에서,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일본도 이를 명분 삼아 출구 전략을 마련, 일방적 보복 조치를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은 이날 각의 결정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의 중재안 요청을 언급, "안보를 위한 수출관리 제도의 적정한 운영에 필요한 재검토"라며 "침착하게 절차를 진행해 온 결과"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이에 따라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들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단계적 대응조치' 중 하나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에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는 한편 미국에게는 적극적인 관여를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우리에 대한 신뢰 결여와 안보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와 과연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포함하여 앞으로 종합적인 대응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한일 양국이 갈등을 완화하는 길을 찾기를 희망한다"며 한일 관계 악화에 우려를 또 한 번 표명한 상태인 만큼, 한미일 안보 체계를 건드리게 되면 미국이 향후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정부는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개입이 본격화 돼야만 일본이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이날 이례적으로 공개석상에서 미국의 중재안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일정한 시한을 정해 현재의 상황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협상할 시간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미국의 제안에도 응하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의 일방적 거부 입장 표명도 공론화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지난달 29일 미국으로부터 '현상동결협정' 요청을 제안 받았고, 같은 날 일본 측에도 동일한 제안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제 시선은 광복절로 향한다. 오는 28일 개정안이 공식 발효되기에 앞서 예정된 8·15 광복절은 한일 관계의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일 메시지를 발신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일 간 물밑 대화 진전에 따라 메시지 강도도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도 과거사를 언급하며 "이제 와서 가해자인 일본이 오히려 상처를 헤집는다면, 국제사회의 양식이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일본은 직시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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