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시대 제주도 선사인, 의.식.주 해결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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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 제주도 선사인, 의.식.주 해결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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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4) 선사 시대의 제주의 농업

인류가 발생하고 지금까지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의·식·주의 해결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사냥으로 얻은 가죽을 단순 가공하여 신체를 둘렀을 것이고 풍부한 야생의 먹거리, 이동 생활로 인해 정착생활의 필요성은 없었으며 이동생활을 하면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동굴에서 생활을 하였다. 

먹거리에 있어서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야생동물들을 수렵, 어획의 방법으로 획득하였고 자생 식물의 뿌리, 잎, 종자, 과실 등을 채취하여 먹거리를 이용하였으며, 계절에 따라 먹이를 따라 이동하는 생활을 하였다. 우리 나라의 구석기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70만년 전 까지 올려보고 있으며, 지역적으로 차이는 있으나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는 1만년 전 까지 영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인들은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 거주하면서 뗀석기를 사용하였으며 수렵, 어로, 채집 생활을 하였다. 제주 지역의 경우에도 이와 다르지 않으며, 제주시 애월읍 빌레못 동굴과 서귀포시 천지연 유적 등이 구석기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의 구석기 문화는 한반도 지역과 연륙되어 있던 빙하기에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은 서귀포시 생수궤 구석기 바위 그늘 유적이 있다.

구석기 시대에는 야생의 풍부한 먹거리가 많아 정착생활의 필요성을 터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제주에서는 화산 활동 등 계속되는 지질과 지형의 변화로 인해 당시 수렵인들에게는 다른 곳보다 불리한 생존 조건을 구비했다. 그렇기 때문에 30만 년 전 이전의 전기 구석기 유물이 확인될 가능성은 적을 것이다. 따라서 제주도의 구석기 유적은 극히 짧은 기간에 존재했을 것이다. 또한 계속되는 지질과 지형 변화로 인해 제주도의 대지는 당시 수렵인들에게는 다른 곳보다 불리한 생존 조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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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위성에서 본 한반도(왼쪽), 구석기 해안선 변화(오른쪽)
50만 년 전에서 30만 년 전까지 제주도 화산이 최성기였으며, 중기 구석기에서 후기로 이어지는 시기인 10만년에서 2만5천년에 기생 화산군이 제주도 전역에 걸쳐 만들어진다. 한편 제주는 여러 차례의 빙하기를 가치는 동안 한때 중국대륙, 한반도와 연결되어 있어 당시의 사람과 동물들이 육로를 통해 제주로 이동하기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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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레못 동굴 입구(왼쪽), 천지연 생수궤 유적지(오른쪽)

제주도에서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는 현재의 국사교과서에는 수록되고 있지 않지만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수록되었던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 빌레못 동굴 유적과 서귀포시 천지연 유적이 있다.

제주시 애월읍 빌레못 동굴에서는 기원전 10만년∼4만년 전에 살았던 갈색곰, 대륙사슴, 큰 노루 등 추운 기후에 살았던 동물뼈가 출토되어 그동안 제주도의, 더 나아가 대한 한국의 대표적 구석기유적지로 알려져 왔으며 그 유적은 6만 년 전의 중기 구석기 유적으로 보고 된 적이 있다. 

이 시기의 제주도는 화산활동이 매우 활발하였으며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은 대부분 10만년∼2만 5천 년 전에 형성되었는데 화산활동이 격심하여 제주의 지표면 전체가 들썩거리던 시기이다. 따라서 빌레못 동굴 유적에 대한 신빙성은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화산활동이 줄어드는 시기에 구석기인들이 제주에 들어 왔을 것으로 추정 된다. 

제주에서 발굴되었던 구석기 시대 유적을 토대로 제주에서의 구석기인들의 생활에 대해서 살펴보면 한반도에서 제주로 이주한 구석기인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그늘에 거주하며 사냥과 채집 생활을 영위하였다. 구석기인들은 각 종 뗀석기와 돌날, 좀돌칼 등을 이용한 석기를 생업도구로 사용하였다. 

최근 조사된 천지연 폭포 생수궤 유적에서는 돌날을 이용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음이 밝혀졌으며 제주시 삼화지구 유적과 외도운동장 부지 유적에서도 토양쐐기와 함께 구석기 제작 전통을 지닌 뗀석기들이 발견되었다. 구석기 문화는 한반도 지역이 가장 추웠던 2만8천년∼1만 8천년전 한반도에서 제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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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레못 동굴 유적 갈색곰뼈(왼쪽), 천지연 유적 돌날, 몸돌(오른쪽)

제주에서 발굴되는 구석기 유적으로 보아 당시에도 제주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화산활동이 심하고 빙하기로 대륙과 연결된 당시의 지형조건들, 이동생활을 했던 당시의 생활상들을 고려했을 때 구석기 시대의 선사인들을 제주의 선주민들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쉽지만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인류가 사회를 형성되기 위한 기본 전제는 정착생활이다. 다음 차에는 육지와 분리된 제주에서 우리 제주의 선주민일것으로 추정되는 신석기 시대의 제주의 선사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야기를 하도자 한다.

※ 참고자료: 이영권(2004), <제주역사기행>; 강용희(2018), <제주토박이의 섬·바람·오름>;  국립제주박물관 (2017),  <국립제주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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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돈 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등을 두루 거쳐 현재는 제주도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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