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업계 사측엔 '면죄부'...도정은 책임없다?
파업 하루 전 노사 양측의 대화를 통해 마지막 협상 중재에 나서야 할 제주도정이 노조측에 일방적으로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선전포고'와 같은 방침을 발표해 갈등중재력의 또다시 한계를 드러냈다.
전성태 제주도 행정부지사는 12일 오후 2시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파업에 대한 제주도의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13일 예고된 도내 버스 파업이 현실화 될 경우 행.재정적 제재와 함께 가능한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등 법적 대응을 통해 엄중히 처리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날 전 부지사의 발표문은 노조측의 파업 부당성 및 불법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일관됐다.
그는 "준공영제 실시 후 연간 1000억원에 이르는 예산 중 절반 이상이 운수종사자의 인건비로 소요되고 있다"면서, "도민을 볼모로 한 버스 파업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제주도내 운전자들의 임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파업의 정당성이 약함을 강조했다.
또 이번 파업에 대해서는 '불법'으로 규정했다.
제주지방노동위원회가 지난 6일 노동쟁의 조정신청의 3차 조정에서 '본 사건은 노동쟁의라고 볼 수 없으므로 조정대상이 아니며 노사가 성실히 교섭해 원만한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을 권고하는 행정지도 결정을 한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행정지도 결정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돌입한 것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위반한 것이라는게 전 부지사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실제 파업에 돌입할 경우 발생한 재정적 부담에 대해서 가능한 모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고 무단 결행에 대해서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1회당 100만원, 1일 최대 5000만원과징금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방침은 현재의 상황을 모두 노조측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측에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전 부지사의 논리는 노조측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경고성'이었던 반면, 운수업계 사측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도 언급하지 않았다. 제주도정의 '중재' 활동에 대한 책임 부분도 쏙 뺏다.
이 때문에 상황인식의 균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논리적 모순의 책임회피성 입장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실제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은 큰 논란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제주도는 지노위의 '조정대상 아니다'는 행정지도 결정을 근거로 해 이번 파업의 불법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 이의 법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는 노사 양측이 이미 11차례 단체교섭을 진행했으나 최종 결렬된 바 있고, 지노위에서는 3차 조정까지 갔다가 뒤늦게서야 제주도의 준공영제 의견을 받아들여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지노위의 '조정 대상 아니다' 결정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최초 1차 조정 때 이러한 의견을 제시하며 단체교섭을 추가로 진행할 것을 요구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파업 찬반투표 전날 이뤄진 마지막 조정에서 이같은 의견을 제시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또한 노동위원회 관련 규정에서는 쟁의행위 조정은 접수일로부터 15일 이내에 결론을 내야 한다. 이번 버스 노조의 쟁의행위 조정신청은 지난달 19일 접수됐고, 법적 처리기한은 지난 6일이었다.
당사자인 노사가 합의하면 조정기한 연장이 가능하나, 이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조정기한은 6일 종료된 셈이다.
그럼에도, 지노위는 마지막 날에 사실상 '각하'와 같은 성격의 행정지도를 내렸다. 한국노총 제주도지역본부가 지노위의 결정이 부당하고 편파적이라면서, 지노위 근로자위원에서 전원 사퇴하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제주도는 이를 근거로 해 '불법'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면서, 노사 대립 상황에서 균형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와함께 '준공영제 버스'를 강조하는 제주도가 이번 노사 분규 과정에서 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크다.
전 부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리한 것은 명분으로 삼고, 불리한 것은 말을 바꾸는 '엉성한 논리'를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11차례에 걸쳐 이어진 노사협상에서 제주도의 개입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노사협상에 행정이 법적으로 개입할 근거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제주도가 협상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업이 불법"이라는 주장을 했다.
도정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져나가면서, 노조의 불법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주도정이 협상에 개입하지 못한 부분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측 요구사항의 '파업 명분'과 관련해서는 마치 고임금을 받으면서 무슨 파업이냐는 듯한 논리를 폈다.
전 부지사는 "도내 운수종사자 근무 여건은 준공영제를 도입하면서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며 "2018년 기준 1년차 임금 4,300만 원으로 도 단위 지역 시내버스 중 제주도가 시간당 임금이 가장 많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이뤄진 막대한 공적자금 지원은 운전자들의 권익 향상보다는 결국 운수업계만 배불린 격이 된 것 아니냐는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정은 사측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도 묻지 않으면서 '사측 편들기'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번 노사 분규와 파업사태로 2017년 8월 대중교통체계 개편과 더불어 시행된 '버스 준공영제'는 2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한편, 제주도내 8개 버스회사 노조는 11차례의 단체교섭이 결렬되고 지방노동위원회의 3차례 조정에서 합의조정이 실패하자 지난 7~8일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해 96%의 찬성률로 파업을 결정했다.
노조측은 △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 도입에 따른 근무체계 개선 △복리후생 문제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측은 사측이 '준공영제'를 핑계로 한 불성실 교섭이 위기를 불렀다면서 이번 파업의 책임이 사측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