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작가 선생님'이 된 팔순 할머니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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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작가 선생님'이 된 팔순 할머니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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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대어린이도서관 그림책학교 1기 졸업생 정순경 할머니
'내 나이 열여덟' 등 그림책 2권 출간 왕성한 활동
▲ 그림책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정순경 할머니.ⓒ헤드라인제주
팔순이 넘은 나이에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작가 선생님'이 된 할머니가 있어 화제다.

충만한 인생 2막을 위해 펜을 잡아 등단에 성공한 은퇴자의 이야기는 아니다. 학교 문턱을 넘어보지도 못한 채 평생 일만 해오신 한 어르신의 '늦깎이 공부'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제주 성산읍 신양리에 사는 정순경 할머니(87).

설 연휴를 앞두고 만난 정 할머니는 지난 2016년과 2017년 각각 한 권의 그림책을 펴낸 '작가 선생님'이다. 책을 펴내기 위해 할머니를 도운 도서관의 직원들도 할머니를 '작가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대한다.

지난달 27일에는 경기도 수원시의 한 문화공간 겸 사진관에서 낭독회를 갖기도 했다. 다른 곳에서도 낭독회 제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다 된 할망(나이가 많은 할머니) 이야기가 뭐 그리 볼 게 있냐"고 말씀하는 할머니의 그림책에서는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의 큰 줄기에서부터 해녀로 물질을 하고 만화책방을 꾸렸던 개인사까지 소중한 이야기가 담겼다. 거기에 제주어로 된 글과 직접 그린 그림은 더욱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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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순경 할머니가 펴낸 '내 나이 열여덟'과 '신양리 만화방 삼거리'.

할머니가 책을 펴내게 된 계기는 막내 딸의 권유로 다니게 됐던 제주설문대어린이도서관의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책을 짓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 했다. 할머니는 평생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는 무학자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 넉넉치 못한 집안에서 으레 그랬듯 장녀는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일찍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나마 글줄이나 떠듬떠듬 읽고 서툰 맞춤법으로 글씨를 끄적일 수 있는 건 어릴적 열흘 정도 야학에 다니며 배웠던 '가갸거겨고교' 덕분이라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서 식구 먹여 살리느라고 (나를)학교에 보낼 생각도 못했어요. 재산이 많이 있어서 부자로 살았으면 그런거 저런거 하지만(그게 아니었다). 그냥 임시로 벌고 입에 먹는 것만 생각했지. 어머니도 그렇게 살았고 나도 그렇게 살다보니까 그렇게 시집가고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이런 할머니였기에 처음 가는 그림책학교는 낯설고 재미를 붙이기 힘든 곳이었다.

할머니는 "처음에 7월에 학교에 와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몇개월씩 다녔는데 나만 처음이었다. 뚝허게 앉아서 어리둥절하고 뭐 할줄도 모르고.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그림을 착착 그리는데, '아이고 내가 이 사람들하고 어떻게 하지' 생각했다"며 처음에 막막했던 심정을 털어놨다.

이런 할머니의 창작욕에 불을 지핀 것은 도서관 선생님들이었다. 진득한 독려와 응원이 할머니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선생님들이 '그려보세요 그려보세요' 하니까 뭐를 그려야 좋을까 하다가 생각난 게 일출봉이었어요. 한번 일출봉이나 그려볼까 해서 그걸 그린 게 시작이었어요." 할머니는 아직도 그때 생각만하면 기분이 좋은 지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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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순경 할머니. ⓒ헤드라인제주

이때부터 그림책에 넣을 삽화를 위한 그림 연습이 본격 시작됐다. 그리다 보니 욕심이 생기고 더욱 의욕을 갖게 됐다. 처음 잡아보는 색연필과 사인펜으로 그리는 그림에 재미가 붙은 것이다.

할머니는 "길을 다니다 꽃이 보이면 꺾어다 그리고, 나무를 보면 나무도 꺾어다 그려보고, 멋진 집이 있으면 그것도 기억했다가 나중에 그려보고 했다. 전에는 무관심했는데 학교에 나가다 보니 밭에 난 곡식이나 여러 가지들을 살펴보게 됐다. 그런 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책에 담을 이야기를 생각하느라 작가로서의 숙명이라는 '창작의 고통'도 겪었다고.

"가장 힘든 건 이야기를 생각하는 거지. 뭔 이야기를 쓸까. 옛날 생각을 많이 했어요. 힘든 일도 있었고, 좋은 일도 있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머리가 아팠지. 근심이 났지. 도서관 선생님들이랑 많은 이야기를 했어."

학교가 저녁 시간대에 운영됐기 때문에 6시 내고향도, 연속극도 포기해야 했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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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순경 할머니가 자신의 첫번째 작품' 내 나이 열여덟'을 보시며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이렇게 탄생한 할머니의 첫 작품은 '내 나이 열여덟'. 18살 나이에 동갑내기 단짝인 봉애와 돈을 벌기 위해 육지부로 물질을 하러 갔다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던 이야기를 담았다. 8개월 간의 고생담이었다.

"일곱 사람이 노를 저어서 거제도 너머에 있는 '비지니' 마을에 가서 소라도 잡고 미역도 하고 물질을 했지. 처음엔 벌이가 안돼서 많이 힘들었는데 마침 이모가 나를 데리러 왔어. 이모랑 제주에서 같이 온 사람들 몇이랑 해서 다시 충청도에 있는 '삽지'라는 곳에 물질을 하러갔어. 배에서 살면서 천추(한천)를 따서 뭍에다 말리면서 생활하다가 이북에서 간첩이 내려왔다고 통행금지가 되면서 오도가도 못하고 고생도 많이 했지."

전쟁통에 맞닥뜨린 '이북청년'들이 총부리를 들이대며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도 있었다.

"어느 날 새벽에 이북청년들이 권총을 들고 와서 제주도에서 같이 온 전주아저씨를 위협하면서 자기들이 타고온 배를 육지에 가져오라고 했어. 아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하겠다고 했지. 권총으로 쏠까봐 무서워서. 달이 밝아서 50발쯤 수영을 해서 배를 가져다주니까 그제야 지나갔지."

피난촌에서 먹을 게 없어서 '둥글마'도 캐서 먹고, 도토리밥도 많이 먹었다. 물질을 해서 따온 소라, 전복을 쌀과 바꿔 먹기도 했다. 8개월을 그렇게 살다가 무사히 제주로 돌아오게 됐다. 

이듬해에 쓴 두번째 '신양리 만화방 삼거리'는 제주도에 돌아와서 시집을 간 이후 열게 된 만화방 이야기가 수록됐다. 돼지를 키우던 옛날 화장실을 개조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혼자서 직접 만들었던 이야기도 있다. 고생만 하던 어머니의 이야기도 담았다.

정 할머니는 '작가 선생님'이 된 이후 달라진 위상에 대해서도 뿌듯하다는듯 말했다.

"책 나온 걸 보고 동네 사람들이 다들 놀라더라고. 평생 촌에서 일만 일만 했는데 어떻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냐고 하면서 인사를 많이 들었지. 나를 한층 더 높게 보게 됐다고 하더라고. 뿌듯했지. 우리 또래 할머니들은 다 텔레비전이나 보고 잠이나 자는데 나는 그림 그리고 책 만들고 하니까. 정신이 흐리지 않고 맑다고 하더라고."

할머니는 앞으로 더 고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연습할 계획이다. 할머니의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사뭇 기대가 된다. 

다음은 할머니의 첫 작품 '내 나이 열여덟'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작가 후문.

"그림책 학교 오라보난 초담은 어중구랑도 하곡 아니 해 난 거를 호난 어떻허코 허난.(처음엔 갈피도 잡지 못하고 안 했던 것을 하니 어떻게 할까 했다) 해여가니까 재미도 있고 취미 붙여서 했습니다.(하다보니 재미도 있고 취미도 붙어서 했다) 선생님들이 너무 잘 칭찬하고 너무 고맙게 했습니다. 잘 한다고 칭찬했습니다. 아니 올려고 하다가 열심히 왔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다녔습니다. 너무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널날(오늘날)까지 오랐습니다(왔습니다). 앞으로도 다니려고 하면은 다니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오고 싶습니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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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의 첫 작품 '내 나이 열여덟'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작가 후문.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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